<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4화 : 학년 높임말 프로젝트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학생, 학부모, 교사, 관리자 등 복잡한 인간관계의 결정판이다. 사람으로 인해 보람을 느끼지만, 사람으로 인해 힘들기도 하고 황당한 일도 겪는다. 때론 짜증도 나도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 맞는 동료 교사와 함께라면 학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은 해소되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특히 동 학년 구성과 옆 반 선생님과의 관계는 교직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교육관이 잘 맞는 동 학년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한두 해 하는 교직이 아님에도 이런 행운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바라보는 교사의 전형적인 모습은 정해져 있다. 비슷비슷할 것 같은 교사의 모습과 일상은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교사 집단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그해, 나에게는 동 학년의 행운이 찾아왔다. 신설 학교라 점점 학급 수가 늘어나는 저학년에 비해 6학년은 3 학급뿐이었다. 전년도에도 6학년 부장이었던 똑순이 캐릭터 학년 부장님, MZ 세대 총각 선생님, 전형적인 40대 아줌마 선생님이 모였다. 셋은 이전에 전혀 교류가 없었다. 공통점이라곤 같은 학교 소속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동 학년이 되기 전 학년 부장님의 이미지는 굉장히 냉철한 차도녀 느낌이었다. 전년도 부장 회의에서 보았던 모습이 전부였기에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녀는 현실적이고 효율성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세상 따뜻하고 정감 있는 모습이 숨어있을 줄이야. 역시 사람은 겪어보아야 안다. 그녀는 ‘겉바속촉’이었다.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주변 사람을 알뜰살뜰 챙기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있었다. 학년 교육 과정, 수업 및 평가, 학급 운영의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겉바속촉 선생님은 천생 초등학교 학년 부장이었다.
30대 젊은 에너지의 위즈덤 선생님은 아이들 성장에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옆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가정의 관심을 못 받고 학습에 어려움이 많은 학생을 따로 일찍 등교하게 하여 매일 아침 소리 내어 책 읽는 훈련을 시켰다. 단원 평가 실시 후 풀이 과정을 직접 손 글씨로 써서 담임표 정답지를 만들어 배부했다. 아이들이 정확한 풀이 과정을 다시 공부한 뒤 재시험을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온라인 알림장에 의도적으로 오타 글자를 적고, 아이들에게 틀린 글자를 찾아 댓글 달기 미션을 주었다. 아이들이 알림장을 정독하게 하려는 현명한 담임의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게맛살, 대파, 버섯은 맛과 색깔이 다르다. 그러나 이것들이 꼬치에 끼워지는 순간 꼬치전으로 변신하여 찰떡궁합의 맛과 색을 낸다. 우리가 그랬다. 겉바속촉 선생님, 위즈덤 선생님, 그리고 나, 분명 달랐다. 그러나 환상의 팀이 되었다. 꼬치에 차곡차곡 끼워져 단단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연결해 주는 꼬치는 ‘희망의 교육관’이었다. 우리는 교사의 작지만 꾸준한 노력이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고 결국 큰 성장을 만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1년 동안 학급 운영 및 학습 지도 방법을 공유하며, 같은 방향으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었다. 학급의 일이 곧 학년의 일이었다. 함께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 생활 지도를 고민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같은 맛이 나고 점점 더 같은 빛깔을 띠었다.
삼색 꼬치 전 환상의 호흡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는 ‘6학년 높임말 프로젝트’였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40대 아줌마 선생님은 학년 전체 높임말 사용을 제안했다. 학급에서 하는 활동을 학년으로 확대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서로 다른 학급 아이들을 일관되게 지도하기도 어렵지만, 우선 학년 선생님들이 활동 목적을 이해하고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년 전체가 높임말로 대화하려면 교사가 먼저 아이들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동료 교사의 언어 습관을 바꾸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높임말 사용의 무궁무진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 겉바속촉 선생님과 위즈덤 선생님은 선뜻 높임말 프로젝트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아이들 지도뿐 아니라, 교사가 먼저 높임말 사용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 해 환상의 삼색 꼬치의 지도하에 6학년 높임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교사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희망 꼬치’가 6학년 담임들을 꿰뚫어 연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최고 학년이 된 순간 일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굉장히 거세진다. 또래 집단 문화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본능적이고 부정적인 색을 띨수록 전파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진다. 단 하루도 생활 지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6학년 담임들의 운명이다. 자신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세력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최고 학년 형님들. 그들이 모두 높임말로 대화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고운 말로 서로를 높이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일상의 대화가 곧 생활 지도이요, 인성 교육이었다.
학생들에게 높임말 쓰는 교사도, 친구들과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도 처음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6학년 높임말 프로젝트는 어느 순간 정착되어 1년 내내 잘 운영되었다. 특히 높임말 쓰기 당위성을 부여하기에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새로운 활동을 제안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다른 반도 하나요?” 아이들은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우리 반만 하는 상황을 싫어한다. 꺼리는 활동을 하게 하려면 담임은 반드시 이유를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 기준에서 납득하고 충분한 당위성이 있어야 움직인다. 6학년 높임말 프로젝트의 목적은 굳이 여러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반도 높임말 쓰나요?”
“네. 6학년 전체가 높임말로 대화합니다. 올해 우리 학년은 ‘높임말을 통한 바른 언어 사용 프로젝트’를 실시합니다.”
모두 다 한다는데. 나도 하고, 친구도 하고, 선생님도 다 한다는데. 아이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삼색 꼬치 담임들은 합심하여 바른생활을 지도했다. 우리 반, 남의 반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높임말을 쓰도록 했다. 학급 내에서 언어로 인한 갈등과 상처는 거의 없었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어렵지 않았다. 보통의 6학년 담임이 느끼는 생활 지도의 어려움, 삼색 꼬치전 담임들에게 큰 고충은 없었다. 각 담임들의 학급 경영 노하우와 열정, 지도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상대를 높이는 존중의 언어를 통해 학년 전체가 정돈되고 질서가 잘 유지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높임말이라는 공통의 규칙은 초등 최고 형님들에게도 큰 힘으로 작용했다.
높임말로 대화하며 아이들은 긍정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깎아내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응원하는 학년 분위기가 형성되고, 아이들 스스로 언어순화 효과를 톡톡히 느꼈다. 평소엔 차분하다가도 체육 시간 경쟁이 과열되어 발생하는 문제도 해결되었다. 높임말이 안정화되면서부터 체육 시간 흥분해서 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6학년 생활 지도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학생 간 서열화이다. 서로 존중하는 언어는 6학년 학생들의 서열화를 최소화했다고 삼색 꼬치 담임들은 확신한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고마웠던 점은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높임말을 습관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높임말로 대화하며 이토록 자신감 넘치고 예의 바른 6학년이 세상에 또 있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우리 학급에서만 실시하던 높임말을 통한 인성 지도를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뜻깊은 해였다. 좋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년 높임말 프로젝트를 함께 해준 겉바속촉 선생님과 위즈덤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하다. 아직도 삼색 꼬치 환상의 팀은 만남을 유지하며, 서로를 응원한다. 오랜만에 만나도 할 말이 그렇게 많을 수 없다. 방학을 맞이하여 이들을 만나야 다음 학기를 살 에너지가 생긴다. 이 글의 원고를 쓰던 날 깜짝 놀랐다. 우리 만날 때가 되었다며, 약속 날짜를 잡자고 겉바속촉 선생님과 위즈덤 선생님의 연락이 왔다. 글을 쓰며 하루 종일 삼색 꼬치 높임말 프로젝트의 추억에 빠져있었다.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 틀림없다. 텔레파시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