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3화 : 포용 씨의 의자
드디어 여름 방학식을 했다. 아이들은 4교시 수업 후 하교했다. 담임 혼자 텅 빈 교실에 남았다. 1학기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장면 장면 영화 포스터가 되어 영화 광고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한 학기 동안 많이 성장한 아이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교실 정리를 시작했다. 방학식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가정으로 가지고 가야 할 개인 물품들을 조금씩 나누어 가지고 갔다. 전날 아이들이 신나게 방학 맞이 대청소를 한 덕분에 담임이 크게 정리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교실에 남은 물건 중 버릴 것은 버리고, 재활용 물품은 분리 배출했다. 아이들이 정리해 놓은 책상 속과 사물함 속까지 구석구석 확인했다.
청소 도구함 정리 OK. 쓰레기통 비우기 OK. 태블릿 보관함 전기 차단 및 잠금장치 OK. 사물함 비우기 OK. 책상 속 비우기 OK. 교실 뒤쪽부터 하나하나 점검하던 중 아이들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 등받이 뒤에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느 녀석이 의자에 낙서를 붙여놓았어? 낙서를 방학식 날까지 안 떼는 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가까이 가보았다.
“의자 물어보지 말고 쓰세요.”
오우~~ 세상에! 낙서가 아니었다. 포용 씨가 꾹꾹 눌러 쓴 글씨, 자기 의자를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허용의 메시지였다. 물어보지 않고 써도 된단다. 항상 누구라도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포용의 마음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사람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친구 물건으로 장난을 치거나, 허락 없이 사용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얼른 주워 주인을 찾아주고, 망가지면 함께 낑낑거리며 고쳐주었다. 혹시 다른 사람 의자를 써야 할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허락을 구했다.
“○○씨~ ○○씨 의자에 앉아도 될까요?”
“□□씨 의자 좀 써도 될까요?”
예쁜 말로 허락을 구하니, 안 된다고 거절의 대답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어서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포용 씨는 그 허락마저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포용 씨는 항상 그랬다. 너그럽게 친구들을 감싸주고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크게 드러내거나 선행을 티 내는 법이 없었다. 자기 일을 빨리 끝낸 뒤 묵묵히 친구들을 도와주었다. 항상 학급을 위해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스스로 찾아 실천했다. 칼림바 정리, 모둠 활동 뒷정리, 작품 게시, 교실 청소 등 언제 등장했는지 슈퍼맨처럼 짜잔 나타나서 이미 봉사하고 있었다.
“선생님께 감사하다. 그냥 청소하고 있었는데, 칭찬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칭찬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
포용 씨의 행복 일지에는 이런 내용이 자주 등장했다. 담임은 포용 씨의 봉사와 선행을 많이 칭찬했다. 그런데 포용 씨는 자신이 한 일을 칭찬받을 만한 대단한 행동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냥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담임의 칭찬에 기뻐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포용 씨의 마음이 담긴 의자 쪽지에 담임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의 의자 메시지를 본 친구들의 마음도 담임의 마음과 같았을까? 이 메시지를 보고 몇 명의 친구들이 포용 씨의 의자를 마음 편히 사용했을까? 도대체 포용 씨는 언제 이 쪽지를 의자에 붙여놓았을까? 담임은 왜 이것을 이제야 발견했을까?
몇 시간만 일찍 발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에 포용 씨를 칭찬했어야 했는데. 포용 씨의 너그러운 마음을 알아줬어야 했는데. 포용 씨의 친구를 향한 선행을 알렸어야 했는데.
포용 씨 의자에 붙은 쪽지를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3주간의 방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개학식 날 꼭 포용 씨를 칭찬하리라 다짐했다. 포용 씨의 의자는 1학기 마지막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여름 방학 기념으로 담임에게 남기고 떠난 선물 같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식 날이 되었다. 포용 씨 의자 쪽지는 방학 동안 안녕히 잘 있었다. 개학식이 끝나고 포용 씨를 칭찬하기 위해 물었다.
“여러분, 포용 씨 의자 등받이를 보세요. 쪽지가 붙어 있지요? 뭐라고 적혀있나요?”
“‘의자 물어보지 말고 쓰세요.’라고 적혀있어요.”
대답하는 아이들 표정에 놀라움이 없었다.
“여러분, 이 메시지 알고 있었어요?”
“네.”
아뿔싸! 담임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포용 씨의 마음을.
“선생님은 여름 방학식에 포용 씨의 의자 쪽지를 발견하고 정말 감동이었답니다. 포용 씨, 쪽지 언제 붙여놓은 거예요?”
“한참 되었어요.”
“왜 붙여놓은 거예요?”
“그냥 친구들이 제 의자 편하게 썼으면 해서요.”
포용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의 말에는 항상 ‘그냥’이 붙었다. 그냥 청소하고, 그냥 도와주고, 그냥 봉사했다. 포용 씨의 일상은 그냥 자연스럽게 허용이고 배려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포용 씨의 쪽지를 보고, 포용 씨 의자 마음 편하게 사용했나요?”
“네. 점심시간에 포용 씨 옆 친구와 이야기하러 가서 편하게 앉았어요.”
몇몇 친구들이 포용 씨 의자 사용 후기를 전했다. 포용 씨는 자신의 마음을 그냥 당연하게 뚝 표현했고, 친구들은 그 마음을 그냥 물 흐르듯이 톡 받았다. 좋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포용 씨의 맑은 선의를 받은 친구들도 깨끗한 마음 줄기 많이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