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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Oct 23. 2024

슬픔은 나누면 위로하는 힘이 된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2화 : 실행 씨가 된 슬픔 씨

슬픔은 나누면 위로하는 힘이 된다.


슬픔 씨가 5교시 한 시간 내내 울었다. 수학 단원 평가지를 받자마자 시험을 너무 못 봤다고 울기 시작하더니, 단원 평가 풀이 하는 동안 계속 울었다.   

  

수학 평가지를 받아본 슬픔 씨는 하늘이 무너진 듯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이 되었다.

“점수가 이게 뭔가? 시험을 이렇게 못 봐서 어쩌나? 훌쩍훌쩍~!”

“슬픔 씨, 시험 못 봐서 슬프군요. 누구나 시험 못 보면 슬프지요. 괜찮아요. 다음에 잘하면 돼요.”

시험 못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담임은 공감하며 울고 있는 그를 달랬다.    

 

슬픔 씨는 계속해서 울었다. 구슬프게 울었다.

“이 많은 걸 오답 정리를 다 어떻게 하나? 흑흑흑~!”

“슬픔 씨, 속상한 마음 알아요. 그런데 오답 공책이 걱정되면 그만 울고, 지금 선생님이 풀이해주는 것 잘 보고 틀린 문제 다시 풀어야지요. 우는 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픔 씨가 계속 울고 있으니, 문제 풀이를 원활하게 이어갈 수 없었다. 그만 울었으면 했다.  

   

슬픔 씨는 멈추기는커녕 이제 아예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 콧물 다 쏟아졌다.

“엄마한테 무지 혼날 텐데…엉엉엉~!”

“슬픔 씨, 엄마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더 화가 나시겠어요. 이제 뚝, 그만 울어요.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콧물 풀고 오세요.”

슬픔 씨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수업 방해였다. 잠시 분위기 환기를 위해 슬픔 씨에게 화장실에 다녀올 것을 제안했다. 

    

세수하고 돌아온 슬픔 씨는 조금 진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그의 울음이 시작되었다. 숨이 넘어가게 울었다. 이번엔 자책까지 했다.

“재시험은 또 어찌 보나? 이 바보 멍청이. 꺼이꺼이~!

아! 이제 담임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슬픔 씨, 학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내 감정은 내가 통제해야지, 누가 대신해줄 수 없어요. 슬픔 씨 울음소리를 한 시간 내내 듣는 친구들 생각은 안 하나요? 이건 친구들 수업권 침해에요. 당장 울음 그쳐요.”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단원 평가 풀이를 제대로 한 것인지,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풀이를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 교직 경험에서 오는 판단에 따라 그때그때 대처하지만, 담임의 학급 운영 매뉴얼 대로 즉시 해결되지 않을 때 오는 당혹감은 경력이 쌓여도 여전했다.   

<출처 : seth_Haussler_photograthy>

  

쉬는 시간에도 슬픔 씨의 슬픔은 계속되었다. 우리 슬픔 씨의 울음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20년 차 초등 담임 매뉴얼에 ‘시험 못 봤다고 한 시간 내내 우는 5학년 학생 쉬는 시간에 달래기’ 항목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이제 담임은 그를 달래기엔 지쳤다.   

  

다른 아이들은 이 혼돈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의 울음소리를 한 시간 내내 듣고 괜찮을 리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텐데. 빨리 담임의 정확한 문제 풀이를 듣고 오답 공책을 정리하고 싶었을 텐데. 그들도 답답하고 짜증이 났을 텐데. 묵묵히 친구의 울음소리를 견뎠다. 참 착한 아이들이었다. 담임보다 훨씬 인내력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이해심 충만한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슬픔 씨에게 다가갔다. 휴지를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슬픔 씨, 시험 못 봐서 속상하지요? 우리도 시험 못 봐서 속상해요.”

“슬픔 씨, 우리도 지금 오답 정리하고, 재시험 보기 힘든데, 참으면서 하는 거예요.”

“슬픔 씨, 할 수 있어요. 울지 말아요.”

“슬픔 씨, 공부해서 다음에 시험 잘 보면 돼요.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의 공감 위로는 효과가 있었다. 슬픔 씨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6교시에도 그는 슬펐지만,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진정된 상태로 하교했다. 3월의 어느 목요일 혼돈의 오후 시간이 지나갔다. 슬픔 씨는 그 후에도 툭 하면 울었다. 거의 매일 울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1학기를 보내며 신기하게도 슬픔 씨가 우는 횟수가 서서히 줄었다. ‘거의 매일’은 ‘자주’가 되고, ‘자주’는 ‘종종’이 되었다. ‘종종’은 결국 ‘거의 울지 않음.’으로 바뀌었다. 슬픔 씨는 자신의 슬픈 상황을 받아들이고, 우는 방법 대신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 대신 할 일을 실천했다. 

     

2학기가 되자 슬픔 씨는 더 이상 슬픔 씨가 아니었다. 담임이 말하는 무엇이든 “네!” 씩씩하게 대답하고 바로바로 실행했다. 실행 씨가 되었다. 할 일을 바로 완료하니, 슬플 일이 없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시험 결과가 나와도 울지 않았다. 

“선생님, 저 오답 정리 벌써 다 했어요.”

“실행 씨, 이거 계산이 틀렸어요. 다시 한번 풀어볼래요? 이건 단위를 안 썼어요”

“아하! 그렇군요. 제가 실수했네요. 다시 할게요. 재시험에서는 실수하지 않을 거예요.” 

    

슬픔 씨가 실행 씨가 되기까지 본인이 스스로 참 많이 노력했다. 거기에는 담임의 관심과 가정에서의 물심양면 학습 지도 및 사회성 지도가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슬픔 씨를 실행 씨로 변화시킨 힘은 친구들이었다. 슬픔 씨가 울 때마다 친구들은 기다려주었다. 듣기 싫은 소리, 참기 힘든 순간을 잘 참아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울고 있는 슬픔 씨에게 다가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슬픔 씨는 친구들의 인내와 사랑으로 감정을 통제하고 실행하는 힘을 얻어 실행 씨가 된 것이었다.  

   

10월의 어느 오후, 실행 씨가 제2의 슬픔 씨에게 다가갔다. 제2의 슬픔 씨는 여러 번 오답 공책 검사를 맡았으나, 번번이 담임에게 틀린 계산을 다시 풀어오라는 지적을 받았다. 원래 당당함 씨였던 그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계산하라는 담임의 말에 방금 제2의 슬픔 씨가 되었다.     

실행 씨는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빼서 제2의 슬픔 씨 이마에 대며 말했다.

“제2의 슬픔 씨, 많이 슬프지요? 이것을 이마에 대고 있으면 슬픔이 사라질 거예요.”

“그게 뭔데요?”

제2의 슬픔 씨가 물었다. 

“이것은 경주 여행 갔을 때 엄마께서 선물해주신 염주인데, 슬픔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 염주를 하고 있으면 슬프지 않아요.

지금은 제2의 슬픔 씨가 슬프니까 이거 하고 있어요. 제가 빌려드릴게요.”    

<출처 : Pexels Alexey Demidov>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실행 씨는 친구들의 응원과 위로로 슬픔을 극복했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슬픈 친구의 슬픔을 달래며 되돌려 주었다. 주변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감정대로 행동하던 실행 씨가 이제 친구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슬퍼 본 사람이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 위로받아본 사람이 위로를 줄 수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더 나아가 슬픔은 나누면 위로하는 힘이 된다.     

담임은 슬픔을 통제하는 마법의 염주를 27개 만들고 싶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손목에 한 개씩 채워서 더 이상 슬픔 씨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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