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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Oct 13. 2024

선생님, 사랑합니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0화 :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

선생님사랑합니다.  

   

“야! 너도 해 봐.”

“지금 하라고?”

“어. 지금이야. 너도 해 봐.”

“네가 먼저 해 봐.”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설 때였다. 옆 반 학생 두 명이 서로 해보라고 상대방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무엇을 해보라는 것일까? 왜 옆 반 선생님을 저리 의식하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한 명은 누군지 알아보겠다. 그제와 어제 급식실에서 나에게 인사했던 친구였다.

“선~생~님, 사~사랑~사랑합니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배워 처음 발화하는 아기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던 친구.

“선생님도 사랑합니다.”

대답했더니, 환하게 웃던 그 친구였다.  

   

알겠다. 옆 반 학생 둘이 서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담임이 손으로 검지를 세워 ‘1’를 나타낸다. 우리 반 학생들이 차렷 하며 선생님을 바라본다. 손가락 3개로 ‘3’을 표시한다. 학생들이 배꼽 손을 한다. 담임의 ‘4’ 표시에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담임도 공수하고 화답한다.

“우리 반, 사랑합니다.”

     

우리 학급의 하교 시간 풍경이다. 아침 등교 인사는 ‘가위바위보’, 하교 인사는 ‘선생님, 사랑합니다.’이다. 3월 첫날 하교 시간 인사법을 알려주니, 아이들은 몹시 부끄러워했다.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라니, 황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1년 동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보지요. 단점도 좋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우리도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좋은 점만 바라보며 행복한 1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말대로 된다.’라는 말을 믿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과 선생님이 오늘부터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1일입니다.” 

    

아이들은 담임이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때는 분명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담임이 하라고 하니, 그것이 규칙인가 보다 의무감에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인사했다. 큰소리로 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크게 외쳤다. 그리고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담임의 고백도 매일 들었다.   

   

며칠이 채 지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서로 장점만 바라보기 위해 애썼고, 발견하는 즉시 칭찬했다. 부끄러워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학교가 떠내려갈 듯 ‘선생님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하교할 때뿐 아니라 수시로 사랑한다는 애정 표현을 했다.




4학년을 맡았던 해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은 4교시 후 급식 먹고 일찍 하교하는 날이 있었다. 급식실에서 점심밥을 다 먹은 우리 반 아이들은 차례로 아직 식사 중인 담임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각자 교실로 올라가 가방을 챙겨 하교했다. 급식실에 내려오기 전 교실에서 하교 인사를 했건만, 아이들은 또 사랑 인사를 했다. 처음 한두 사람이 하니, 반 전체가 하게 되었다. 수요일 하교 인사는 교실에서 단체로 한 번, 급식실에서 개인적으로 또 한 번 하는 것이 우리 반 루틴이 되었다.    

  

급식실에서 밥 먹는 담임에게 다가와 사랑 고백을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은 진풍경이 되었다. 다른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신기해하는 시선에 창피할 법도 한데, 우리 아이들의 사랑 인사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밥 먹으면서도 공공연히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담임은 너무 행복했다. 어깨가 으쓱했다. 역시 큰 소리로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 씨, 선생님도 사랑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내일 만나요.” 

    

매주 수요일 두 번씩 사랑 인사하던 귀엽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헤어진 다음 해, 성숙하게 사랑스러운 6학년들의 담임이 되었다. 점심시간 급식실 앞에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섰다. 5학년이 된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반대편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담임에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아이들,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손을 흔들었다. 전 담임을 저리 반가워하다니, 정말 고마웠다. 

    

5학년 자리에서 밥을 다 먹은 작년 우리 반 애정 씨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퇴식구로 가려다가 방향을 바꾸어 전 담임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오, 세상에! 선생님에게 인사하려고 일부러 온 거예요?”

“네. 선생님, 맛있게 드세요.”

더 이상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작년 담임에게 일부러 찾아와 사랑 인사를 해주는 애정 씨의 사랑 덕분에 온몸이 감동으로 가득 찼다.  

   

애정 씨가 다녀간 다음 추억 씨가 인사하러 왔다. 추억 씨 다음으로 그리움 씨가 사랑한다고 했다.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줄줄이 와서 ‘선생님, 사랑합니다.’ 인사를 하고 갔다. 전 담임에게 하는 사랑 인사는 매일 급식 시간마다 이어졌다.   

  

어느 날 나와 가까이 앉아 점심을 먹던 그 해 5학년 담임 선생님 중 한 분이 궁금해했다.

“이상해요. 저 아이들이 현재 담임한테는 인사를 저렇게 열심히 하지 않거든요. 래포 형성이 덜 되었나 봐요. 왜 선생님에게는 저렇게 인사를 잘해요? 작년에 뭘 어떻게 하셨어요?”

“글쎄요. 작년에 뭘 어떻게 했을까요?”  

   

선생님, 작년에 우리는 사랑했습니다. 매일매일 서로를 사랑한다고 외쳤지요. 그랬더니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1년 내내 사랑했습니다. 

    

점심시간 사랑 인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6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담임에게 왔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인사를 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우리의 사랑 고백은 6교시 마치고 집에 가기 전 교실에서 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굳이 급식실에서도 했다. 우리 반만 주고받는 줄 알았던 사랑 고백을 5학년 동생들도 하니,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이유가 뭐 중요하겠는가?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을. 점심시간 밥 먹다 말고 수십 명의 사랑 고백을 받는 교사가 이 땅에 또 있을까? 높임말 쓰는 특이한 담임은 사랑을 반찬으로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급식실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가 되었다.  

출처 : TibiPO3


2학기 중반이 되었다. 작년 아이들과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사랑 인사를 할 때마다 옆 반 친구 한 명이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내가 식판을 들고일어날 때마다 그는 머뭇머뭇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선~생~님.”

“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사~사랑~사랑합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우리 반 아이들이 하는 사랑 인사가 좋아 보였나 보다. 그리고 도전해보고 싶었나 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옆 반 6학년 남학생의 사랑 고백. 정말 짜릿했다.

     

옆 반 친구는 며칠 동안 사랑 인사를 계속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옆에서 밥 먹던 친구에게도 사랑 인사 도전을 권했다. 그리고 같은 반 다른 친구에게도. ‘옆 반 선생님에게 사랑 인사하기’가 챌린지처럼 되었다. 옆 반 친구들은 내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인사를 했다.  

   

하루는 급식실에서 밥을 다 먹고 일어나던 다른 학년 선생님 한 분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개구쟁이 같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평소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내게 사랑 인사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던 선생님이었다.  

   

예쁜 말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퍼진다. 열심히 사랑한다는 말을 외치던 우리 학급 아이들, 사랑 고백에 도전한 옆 반 친구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들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많이 사랑했다. 말이 주는 위대한 힘이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출처 : phtolism_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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