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9화 : 함께 할수록 커지는 마음
“조사 끝난 사람은 태블릿 정리해 주세요. 여러분, 태블릿 함에 태블릿 넣을 때 전원 버튼이 위를 향하도록 넣어야 합니다. 아래로 하면 전원 버튼이 눌려서 충전이 안 되거나 고장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태블릿에 충전 잭 연결해서 충전시키세요. 그래야 다음번 사용에 지장이 없습니다.”
태블릿을 이용해 사회 조사 학습을 실시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과제로 해야 가능했던 조사 활동이 이제 학급에서 필요할 때 언제나 가능해졌다. 고학년을 우선 대상으로 학생 수만큼 보급된 태블릿이 각 교실에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태블릿 보관이었다. 단체로 보급된 태블릿이 고사양이 아닌 데다가,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고장이 잦았다. 담임은 태블릿 사용 후 매번 보관 시 주의 사항을 당부했다.
반복되는 담임의 잔소리에 대부분 태블릿 보관법을 잘 알고 실천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소수 몇몇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태블릿을 사용한 뒤 태블릿 함을 보면 몇 대의 태블릿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태로 꽂혀있었다.
“태블릿 정리 1인 1역 누구인가요? 쉬는 시간에 태블릿 정리하세요.”
보통 담임의 지시에 태블릿 정리 담당자가 역할을 해야 태블릿 정리가 끝났다.
사회 조사 활동을 마친 쉬는 시간, 정리 여왕 씨가 태블릿 함 앞에 서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1인 1역, 마침 정리 여왕 씨가 태블릿 담당이었다. 그러나 태블릿 담당이 아니어도 그녀는 같은 시각 태블릿 함 앞에 있었을 것이다. 정리 여왕 씨는 1인 1역과 상관없이 교실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삐뚤어진 물건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리가 안 된 물건을 보면 불편하다고 했다. 정리 본능이 발동하여 정리 여왕 씨의 손길이 닿은 물건은 자로 잰 듯 반듯반듯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 여왕 씨는 쉬는 시간도 반납한 채 태블릿을 정리했다. 전원이 켜진 태블릿 전원을 끄고, 태블릿 번호대로 순서를 맞추었다. 위아래가 뒤집혀 꽂힌 태블릿을 바르게 꽂고, 충전 잭을 모두 연결했다.
그런데 정리 여왕 씨가 태블릿을 정리하는 내내 태블릿 함 여닫이문이 계속 열려 있는 것이 신기했다. 교실에 있는 태블릿 함은 한 번 문을 열면 계속 열려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분실 주의 품목이라서일까? 여닫이문을 앞으로 오픈한 다음 손을 떼면 자동으로 즉시 닫혔다. 태블릿을 차례로 꺼내 갈 때마다 아이들은 태블릿 함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다. ‘띠띠띠~삐~’ 소리가 27번 났다.
정리 여왕 씨가 태블릿을 정리하는 쉬는 시간 동안 ‘띠띠띠~삐~’ 소리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은 태블릿을 꺼냈다 넣었다 반복하느라 분주했는데도 말이다. 발로 문을 받치고 있는 것일까? 서 있는 정리 여왕 씨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 맙소사! 자상 왕 씨가 정리 여왕 씨 아래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태블릿 함 문을 말없이 잡고 있었다. 자상 왕 씨는 친구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자신의 주특기인 자상함을 내뿜었다. 정리 여왕 씨가 태블릿을 정리할 때 태블릿 함 문이 닫혀 불편할까 봐,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을 실천했다. 정리 왕 씨도 쉬는 시간을 반납했다.
자상 왕 씨는 평소에도 친절을 잘 베풀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업에 사용한 학습 준비물 정리를 도맡아 했다. 자신만의 쓰레기통을 만들어 청소 시간에 쓰레기통을 들고 다녔다. 친구들 쓰레기를 자상 왕 쓰레기통에 다 모았다. 원래 친절함을 장착한 친구라 할지라도, 쉬는 시간까지 반납하며 순수하게 친구를 도울 목적으로 가만히 앉아 문을 잡아주고 있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자상 왕 씨의 선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멈. 춰. 라!”
담임의 주문에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우스운 동작과 표정을 지으며 일동 얼음이 되었다.
“태블릿 함을 한 번 보세요. 정리 여왕 씨가 쉬는 시간에도 계속 태블릿을 정리하고 있어요.”
“역시 우리 정리 여왕 씨!”
친구들은 정리 여왕 씨에게 엄지 척을 날리고 물개박수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래를 보세요. 자상 왕 씨가 앉아서 태블릿 함 문을 잡고 있어요. 문이 닫혀서 정리 여왕 씨 힘들까 봐 도와주는 거예요.”
“와! 역시 우리 자상 왕 씨!”
친구들은 이번엔 자상 왕 씨에게 엄지 척을 날리고 손뼉 치며 환호했다.
태블릿을 잡고 얼음 상태인 정리 여왕 씨와 태블릿 함 문을 잡은 채로 얼음인 자상 왕 씨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담임의 칭찬과 친구들의 인정 속에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의 예쁜 마음은 함께 할수록 커진다.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점점 실행력이 높아지며, 점점 섬세해진다. 아이들의 서로를 향한 칭찬은 함께 할수록 강력해진다. 점점 인정해 주고, 점점 다양해지며, 점점 최고를 향한다. 예쁜 마음을 실천하는 아이들도, 그 모습을 칭찬으로 인정하는 친구들도 점점 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다.
아직도 완전히 얼음 상태를 풀지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손뼉 치는 학급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담임은 전체를 향해 두 손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역시 우리 반!”
“얼음 땡!”
모두 마음껏 움직이며 박장대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