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8화 : 버스 자리 정하기
아이들에게 생태 습지 공원으로 떠나는 생태 탐방 소식을 전했다. 아무리 흥분을 자제시켜도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에 드러난 ‘나 신났음.’은 감출 수 없었다. 온종일 가는 현장 체험 학습이 아니었다. 학교 인근 생태 습지 공원에 가서 오전 활동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 짧은 코스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이 둥실둥실 뜰 수밖에 없었다. 1학년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를 맞이한 안타까운 5학년 학생들에게 생태 탐방은 사실상 친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버스에서 어떻게 앉아요?”
생태 탐방 안내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생태 습지 공원까지는 차로 20분 남짓 거리였다. 그 잠깐의 시간 누구와 앉든 무슨 상관이랴? 어른은 그렇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것은 상당히 첨예하게 중요한 문제이다.
“버스에서 안전띠 절대 풀지 않고 조용하고 안전하게 잘 간다고 약속한다면….”
담임의 입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까? 기다리는 아이들 두근두근 마음이 책상을 뒤흔들 기세였다.
“안고 싶은 사람과 앉게 해 주겠습니다.”
“와! 우리 선생님, 최고!”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렇게도 좋을까? 담임은 그 순간 어떤 아이돌 스타도 부럽지 않았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순수한 팬들의 확실한 애정 공세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 행복의 여세를 몰아 버스 자리 정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일단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이야기하며 함께 앉고 싶은 사람 두 명씩 짝을 지으세요. 갈등이 생기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선생님이 자리를 정해줄 거예요. 반드시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합니다.”
신나서 버스 짝꿍을 정했다. 단짝 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눈빛 한번 착 교환하고 바로 두 손을 맞잡고 방방 뛰었다. 그러나 쭈뼛쭈뼛 짝꿍을 적극적으로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 단짝은 없지만, 용기는 장착한 아이도 있기 마련. 용기 있는 자가 용기 내어 한마디 하면 짝꿍 해결.
“○○씨, 저랑 버스에서 같이 앉으실래요?”
“이제 선생님과 모두 함께 가위바위보를 할 거예요. 선생님을 이기는 사람에게 짝꿍과 앉을 버스 자리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면 짝꿍과 나와서 원하는 버스 자리에 이름을 쓰면 됩니다.”
담임은 칠판에 버스 자리표를 붙였다.
선생님과 가위바위보 해서 내가 이기거나 짝꿍이 이기면 된다. 그러면 버스에서 원하는 친구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반드시 담임을 이기겠다는 결의에 찬 눈빛이 발사되었다.
“선생님을 이겨라. 가위바위보!”
최초로 담임을 이긴 사람이 쾌재를 부르며 짝과 함께 칠판으로 나와 빈 버스 자리표 앞에 섰다. 45인석 중 담임이 안전을 위해 앉으면 안 된다고 X 표시한 좌석을 제외하고, 수많은 자리 중 어디에 앉을까 짝꿍과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사이 다음 선택받은 자를 선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계속 이어갔다.
아이들에게 첨예하게 중요한 문제인 ‘버스 좌석 결정하기’는 까딱 잘못하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하면 모두 즐겁게 원하는 사람과 내가 선택한 자리에 앉게 된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학급 인원이 홀수인 경우이다. 올해가 그랬다. 총인원이 25명. 한 명이 짝을 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통로로 이어지는 제일 뒷좌석에 세 명을 앉힐 수는 없다.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할 수 없이 1명은 버스에서 짝꿍 없이 혼자 앉기로 했다.
그 한 명이 누가 되느냐가 또 중요한 문제가 된다. 꿋꿋 씨, 이해 씨, 따뜻 씨가 남았다. 세 사람 모두 난처한 표정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은 담임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앉을 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주사위를 굴려야 할까? 상처받는 사람 없이 훈훈하게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꿋꿋 씨가 말했다.
“제가 혼자 앉을게요. 이해 씨랑 따뜻 씨가 같이 앉으세요. 저는 혼자 앉아도 괜찮아요.”
꿋꿋 씨는 평소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냈다. 그래도 특별한 날인데, 왜 친구와 앉고 싶지 않겠는가?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꿋꿋 씨가 참 고맙고 기특했다. 자기가 희생하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꿋꿋 씨를 크게 칭찬했다.
“꿋꿋 씨, 고맙습니다.”
이해 씨와 따뜻 씨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꿋꿋 씨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중요한 버스 좌석이 결정되었다.
미리 정한 버스 자리에 앉아 안전하게 습지 생태 공원에 도착했다. 생태교육 전문 강사님과 함께 다양한 생태 체험을 했다. 막대 놀이, 루페로 식물 관찰하기, 하늘 거울 보기, 숲 밧줄 놀이 등. 화창한 날씨까지 도와주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요. 다음에 가족들과 또 올 거예요.”
“선생님, 즐거운 활동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모든 활동을 마쳤다. 아이들이 예쁜 피드백을 들려주었다.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치열한 경쟁 뚫고 프로그램 신청하길 잘했다.’
급식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버스 탑승을 위해 줄을 섰다. 따뜻 씨가 담임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버스에서 자리 바꾸어도 될까요?”
한 번 정한 규칙은 쉽게 변경하지 않는 담임을 잘 알 터였다. 따뜻 씨는 왜 자리를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왜요?”
“꿋꿋 씨가 올 때 혼자 앉았잖아요. 갈 땐 제가 꿋꿋 씨 옆에 앉으면 안 될까요?”
“오~우리 따뜻 씨!”
따뜻 씨는 버스에서 혼자 앉은 꿋꿋 씨가 신경 쓰였다. 갈 때라도 버스 짝꿍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이해 씨는요?”
이해 씨를 바라보았다. 활짝 웃고 있었다. 자기는 혼자 앉아도 된다는 신호였다. 따뜻 씨와 이해 씨는 담임에게 허락받기 전 이미 상의를 마친 상태였다.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 어찌 허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를 생각하는 따뜻 씨, 이해 씨 마음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두 사람을 칭찬했다. 열심히 생태 놀이 하느라 벌겋게 상기된 두 사람의 얼굴이 태양 빛보다 더 환하게 빛났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엉뚱한 생각, 이상한 생각, 재미있는 생각. 아이다움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가끔 어른을 능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따뜻한 생각, 달콤한 생각, 말랑말랑한 생각. 이 역시 놀라운 아이다움이다. 어른은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꿋꿋 씨와 따뜻 씨가 함께 앉았다. 이해 씨는 건너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셋이서 재미있게 끝말잇기를 했다. 하하 호호 까르르. 담임은 세 사람의 따뜻한 배려심이 끝말잇기처럼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