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품 Sep 21. 2024

감동의 드라마 아름다운 대본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7화 :  감동의 드라마 공기 대회

감동의 드라마 아름다운 대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D-day. 이날을 위해 두 달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손에는 항상 이것이 쥐어져 있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년 7월 우리 반 학생들은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세상에서 제일 예쁜 응원과 격려의 말이 이 드라마의 대사였다.     


아이들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공기 알. 어린이날 선물로 학급 아이들에게 공기를 선물하며, 7월 ‘학급 공기 대회’ 실시를 예고했다. 두 달 동안 학급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소리는 바로 이것. 

“○○ 씨, 저랑 공기 하실래요?” 

틈만 나면 공기를 가지고 바닥에 모여 앉았다. 

          

대회 당일 두 명씩 짝을 지었다. 번갈아 가며 경기를 진행했다. 짝꿍이 공정한 경기를 하는지 서로 관찰하고 점수를 계산했다. 그러나 관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짝꿍의 역할이 있었다.

“천천히 하세요. 괜찮아요. 시간 많아요.”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돼요. 힘내요.”

“너무 잘했어요. 역시 우리 ○○ 씨. 축하해요.”

공기 대회 내내 예쁜 말들이 들려왔다. 참가자들이 경기할 때 지켜보는 짝꿍들의 말이었다. 짝꿍의 역할은 감시와 감독이 아니었다. 응원과 격려가 바로 그들의 진정한 역할이었다.     


제한 시간을 맞추어놓은 스톱워치가 째깍째깍 돌아가면 아이들은 긴장했다. 국가 대표 선발 대회도 아닌데,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긴장 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공기 알을 던졌다. 아무리 떨려도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절대 포기란 없었다. 공기 알 하나라도 더 잡아내려고 초집중했다. 긴장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함께 긴장을 경험한 동지들은 끈끈해지고, 동지애가 발동했다. 짝꿍이 각 단계를 통과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선생님, 시계 째깍째깍 소리 좀 안 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짝꿍이 너무 긴장했어요. 손에 땀이 흥건해요.”

짝꿍을 위한 요청 사항. 모든 참가자가 같은 마음을 담아 간절한 눈빛을 담임에게 보냈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담임은 재빨리 스톱워치 소리를 죽였다.  

1마당은 5분 동안 5년 내기로 진행했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꺾기 5년 이상만 획득하면 1마당 통과였다. 매년 대회 방식을 조금씩 변형하다가, 3년 전부터 절대 평가 방식으로 안정화가 되었다.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상대 평가가 아니다. 절대 평가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1마당 경기 결과 미 통과자는 딱 6명. 25명 중 19명이 통과했다. 5분에 5년 내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기준이 아무리 낮아도 탈락자는 있기 마련이다. 1마당에서 0년으로 탈락한 참가자가 매우 아쉬워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친구들이 아쉬움 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쉬움 씨, 괜찮아요. 잘했어요. 최선을 다한 거예요.”

“아쉬움 씨, 혹시 패자 부활전 있을 수도 있어요. 울지 말아요.”

아쉬움 씨는 주위 친구들의 위로 속에 금방 마음을 다스렸다.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로 탈락의 순간 속상한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으리라.


1마당 통과자들은 5분 동안 10년 내기인 2마당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훌륭한 결과였다. 딱 2명만 탈락했다. 17명이 3마당에 진출했다. 스톱워치가 5분을 알리는 순간과 동시에 정확하게 10년을 꺾은 참가자가 있었다. “야호!” 

본인보다 짝꿍이 더 환호했다. 


3마당은 5분 동안 20년 내기였다. 더 긴장하고 집중했다. 더 열심히 서로를 응원했다. 3마당 통과자들은 결승전에 진출하기 때문이었다. 3명이 탈락하고, 14명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탈락자들이 너무 아쉬워했다. 패자 부활전을 실시했다. 3분 동안 5년 내기. 통과 기준을 낮게 잡았다. 탈락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3명이 부활되었다. 탈락했다가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 순간 부활자들은 이미 승자였다.    

 

“너무 떨려요. 땀 엄청났어요. 온몸이 긴장해서 다리까지 아파요.”

3마당 통과자 14명과 패자 부활전 3명, 총 17명의 결승전이 초긴장 속에 시작되었다. 결승전은 제한 시간 없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1알부터 꺾기까지 실시했다. 중간에 공기 알을 떨어뜨리면 가차 없이 탈락, 꺾기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초집중해야 한다. 1알, 2알, 3알…. 25명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다. 4알까지 성공. 꺾기만 하면 된다. 긴장, 긴장, 긴장 속 꺾기 성공의 순간, “와!” 

25명의 환호성이 터졌다. 모두 펄쩍 뛰며 자기 일처럼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 씨! 잘한다! 파이팅!” 

팔을 높이 쳐들고 좌우로 방향과 박자를 맞춰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탈락자들이 자체적으로 응원단을 구성했다. 탈락했지만, 이들은 낙오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축제를 즐기는 방법 찾은 것이었다. 온 마음 다해 힘차게 응원했다. 그러나 결승전 진출자들의 공기 향연이 시작되면 

“쉿! 조용히 해요. 마음으로 응원해요.” 

하며, 모두 숨을 죽였다. 긴장한 친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마음이었다. 

    

평소 뛰어난 공기 실력을 발휘했던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탈락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공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손에서 바닥으로 공기가 떨어지는 순간 “아우~~!” 반 전체 아쉬움의 탄성이 나왔다. 그러나 1초도 안 되어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친구들이 탈락자를 안아주며 말했다. 

“○○씨~ 너무 잘했어요. 완전 최고예요!” 

친구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친구의 실패를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공기 대회 결과가 뭐 중요할까? 친구와 함께하는 이 마음이면 됐다. 

    

최후의 2인이 남았다. 이제 긴장은 부담과 책임감의 무게를 더했다. 공기 알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긴장감, 부담감, 책임감, 간절함을 모두 이겨내고 감정을 통제해야 했다. 평온하게 경기를 이어가는 두 승자의 모습을 친구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승패를 떠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이 순간이 이들에게 인생을 단단하게 다지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올해도 공기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포기하지 않음으로써두려움을 극복해냄으로써긴장을 이겨냄으로써감정을 통제함으로써 아이들은 멋진 드라마의 각 장면 주인공이었다그리고 드라마를 한층 감동적으로 만든 것은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힘을 주는 예쁜 높임말 대사였다. 울고, 웃고, 환호하고, 열광하고, 아쉬워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칭찬하는 감동의 드라마. 우리 반 25명 모두가 남우 주연상, 여우 주연상, 그리고 대상 수상자였다.  


이전 06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칭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