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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Sep 16. 2024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칭찬합니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6화 : 예쁜 말 자동 생성기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칭찬합니다. 

    

6학년 담임을 하던 해 어느 날, 1학년 선생님 한 분이 업무 관련 문의를 위해 잠시 우리 학급을 방문했다. 점심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 죄송해요. 수업 중이신 줄 모르고….

그런데 지금 점심시간 아니에요? 왜 이렇게 조용해요?”  

   

6교시에 외부 강사 특별 교육이 계획된 날이었다. 원래 5~6교시하던 미술 수업을 점심시간을 사이에 두고, 4교시와 5교시에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4교시에 시작한 미술 활동을 점심시간에도 조용히 이어갔다. 절대로 담임이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만들기’라는 내적 동기가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담임이 한 일이라고는 잔잔한 배경 음악을 틀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6학년들은 이렇게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점심시간에도? 

1학년들은 수업 시간에도 시끄러워요.”

선생님은 1학년 본인의 학급과 상반된 우리 교실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선생님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자기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다.

“쨍!”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시선이 일제히 소리로 향했다. 한 학생의 색연필 틴 케이스가 책상에서 떨어졌다. 48색 색연필이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바닥으로 몸을 낮추어 색연필을 줍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색연필을 주워 케이스에 담는 손길만 분주했다. 삽시간에 색연필은 케이스에 원상 복구되었다.     


미안합니다.”

실수로 색연필 케이스를 떨어뜨린 학생이 친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대답했다.

색연필 주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모두 미소 지으며 상황 종료. 다시 미술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1학년 선생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문화적 충격이에요. 저렇게 점잖게 끝난다고요? 

아니, 어떻게 아이들끼리 높임말을 해요?”

어떻게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해요?” 

    

출처 : Icons8 Photos


1학년 교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녀는 ‘문화적 충격’을 받고 놀란 채로 돌아갔다. 그 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가 같은 장면을 목격했더라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학급의 일상이었다우리에겐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보통날이었다.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높임말 시작’이라는 큰 산을 넘자, 뒤에 있는 ‘예쁜 말’ 언덕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예쁜 말 인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렸다. 따로 지도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높임말은 예쁜 말을 자동으로 나오게 했다

     

아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도움받은 이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표현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소한 실수와 작은 잘못도 바로 사과했다. 갈등이 생길 수 없었다. 발생한다 해도 바로 해결되었다.

“어머!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안 아프세요?”

“괜찮습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특히 아이들은 높임말로 친구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우리 반은 ‘높임말 프로젝트’와 더불어 학급 특색으로 ‘1일 1 칭찬 제도’를 운영했다. 매일 칭찬받고, 칭찬 내용을 ‘행복 일지’에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담임에게 받은 칭찬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 일지에는 친구들에 대한 칭찬과 감사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기록되었다.   


“새로 만난 짝꿍이 ‘잘하셨네요. 고마워요. 이쁘네요.’라고 칭찬을 많이 해줍니다. 칭찬하는 짝꿍이 너무 좋아요.”

칭찬은 사이좋은 짝꿍을 만들었다.  

   

“○○ 씨가 저를 매번 칭찬해 줍니다. ○○ 씨랑 저랑 마음이 잘 맞아서입니다.”

칭찬은 단짝 친구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다. 

    

“이번 주 △△ 씨에게 감사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을 때 용서해 주어서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용서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칭찬은 용서를 만들고, 용서는 또 다른 칭찬을 만들었다. 

    

“◇◇ 씨가 체육 시간에 응원해 주어서 멀리 뛰기 성공했습니다. ◇◇ 씨에게 고맙습니다.”

매 순간 친구를 응원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친구들의 응원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했다.   

  

“□□ 씨에게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 씨가 문구점에서 저에게 간식을 사주었습니다.”

평소 학급에서 봉사를 잘하는 □□ 씨는 교실뿐 아니라 밖에서도 친구들에게 따뜻함을 전한 모양이었다. 친구의 선행을 기억하고 있다가,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행복 일지에 표현했다. 

    

학급에서의 갈등과 다툼은 대부분 ‘말’에서 시작한다. 실제 원인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거칠고 부정적인 말들은 자기 잘못은 삭제하고, 상대의 허물만 확대한다.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높임말로 대화하자, 우리 반에서는 다툼이 사라졌다. 칭찬과 응원으로 아이들은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우리는 높임말로 대화하는 특별한 사이라는 동질감도 생겼다     


높임말은 예쁜 말 자동 생성기였다그칠 줄 모르는 이 장치는 예쁜 말을 쉼 없이 퐁퐁 만들어냈다우리 학급은 긍정의 언어로 가득 찼다.

출처 :  annatod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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