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5화-두려움 씨가 당당 씨로 변신 마법 주문
“과학자 ○○○이 발표하겠습니다. (박수 두 번 짝짝!)
저는 ~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기 때문입니다.”
3월 첫날 발표 연습 이후 우리 반 학생들 발표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모두 다 발표한다는 원칙으로, 아이들은 거의 매일 발표했다. 실력 향상에 반복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아이들의 발표 목소리는 커지고, 발음도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발표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두세 명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점점 앞 순서로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드는 인원이 늘어났다. 손을 드나 안 드나 모두가 발표했다. 손을 끝까지 안 들어도 담임은 용케 알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발표시켰다. 아이들은 큰 깨달음을 얻고 현명해졌다.
‘어차피 할 발표라면 차라리 빨리 끝내고 맘 편히 있자.’
‘손 안 들어도 할 발표라면 차라리 손들고 발표해서 칭찬이라도 받자.’
아이들이 지혜로워질수록 우리 반 수업 시간은 활기를 띠었다. 발표 달인들의 수가 증가했으며, 먼저 발표하려고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전체 발표뿐 아니라, 모둠 활동에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햇빛 받아 쑥쑥 자라는 새싹처럼 친구들의 발표 솜씨가 쭉쭉 성장할 때, 유독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 있었다. 바로 두려움 씨의 자리였다. 두려움 씨의 발표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수가 없었지만, 발표 순간에는 각종 불안 증상까지 나타났다. 처음에 두려움 씨는 티셔츠 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멈추었을 때쯤엔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떠는 증상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두려움 씨 발표 차례가 되면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 먼저 발표하고 다시 두려움 씨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다음에는 할 수 있다고 약속하기를 수십 번. 그러나 두려움 씨는 발표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도, 마음도, 말도, 몸도 얼음이 되는 듯했다.
두려움 씨는 과연 발표할 수 있을까?
학급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날이 찾아올까?
모두 다 발표한다는 목표는 100퍼센트 실현될 수 없는 것인가?
두려움 씨 발표 차례가 되면 긴장하는 사람은 두려움 씨만이 아니었다. 담임도 친구들도 전부 긴장했다. 오늘은 두려움 씨가 자리에서 일어날까? 내일은 두려움 씨가 소리를 낼까?
또 울면 어쩌지? 또 얼음이면 어쩌지? 담임은 걱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걱정만 하지 않았다. 두려움 씨를 향해 응원의 말을 건넸다.
“두려움 씨,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우리도 처음에 그랬어요. 두려움 씨 마음 다 알아요.”
매번 두려움 씨 차례가 되면 원활하던 수업이 막히고, 기다리고, 지체됐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아이들은 투덜거리기는커녕 예쁜 말로 두려움 씨를 격려했다.
“두려움 씨, 우리가 기다려 줄게요.”
“천천히 해도 돼요.”
2주가 지났다. 마법이 일어났다. 두려움 씨가 발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떨고 있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나 얼음 상태가 풀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인데, 아이들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쏟아냈다.
“와! 두려움 씨, 잘했어요. 멋져요.”
또 2주가 흘렀다. 한 사람씩 국어 교과서 돌아가며 읽기를 하고 있을 때 두려움 씨가 소리를 냈다.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였다.
“여러분 두려움 씨가 책 읽는 소리 들었나요?”
“네, 아주 잘 들렸어요.”
“야호! 드디어 두려움 씨 목소리를 들었어요.”
못 들은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의상처럼, 착한 친구들의 귀에는 입만 움직인 수준의 두려움 씨의 작은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나 보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두 번째 마법이었다.
마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려움 씨는 발표 차례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문장을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두려움 씨가 한 단계 한 단계 성공할 때마다 아이들은 축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두려움 씨, 최고!”
“역시 우리 두려움 씨. 해낼 줄 알았어요.”
“두려움 씨 이제 발표의 달인이에요.”
두려움 씨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발표 앞에서 막힘없는 ‘당당 씨’다. 이제 그 누구도 당당 씨가 발표할 차례에 긴장하지 않는다.
“발표 달인 당당이가 발표하겠습니다.” (박수 두 번 짝짝!)
해마다 학급에는 발표 두려움 씨가 존재한다. 그러나 두려움 씨의 공포가 극복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7년 전 만났던 두려움 씨도, 4년 전 함께 했던 두려움 씨도, 올해 두려움 씨도 모두 당당 씨가 되었다. 우리 반은 모두 다 발표한다.
우리 학급에서 두려움 씨가 당당 씨로 변신하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마법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높임말로 전하는 친구들의 따뜻한 응원, 격려, 칭찬. 모두 다 발표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 친구들의 마법 주문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발표 당당 씨를 탄생시킨 마법 주문은 친구들의 높임말이었다. 해리포터 마법 학교가 이보다 더 신기할까?
당당 씨가 발표 시간 제일 먼저 손을 드는 마법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