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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Sep 08. 2024

이제 높임말이 편해요.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3화 : 높임말 안정화 신호

“저는 이제 높임말이 편해요.”

“맞아요. 저도 높이말이 편해요. 이제 높임말 안 쓰면 이상해요.”

드디어 신호가 왔다.  

    

새 학기 첫날 높임말을 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언어는 습관이다.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교실에서 매 순간 들리는 높임말은 시나브로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학급 아이들이 높임말에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4주이다. 보통 3월이 지나기 전에 높임말에 익숙해진다. 어떻게 학급 전체가 존칭을 사용하며 높임말로 대화할 수 있을까?  

    

정답은 학급 분위기. 아이들은 모방 심리가 강하다. 친구들이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스스로 당위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친구들이 하면 그냥 나도 한다. 높임말 사용자가 늘어나면 학급 분위기가 형성된다. 한번 만들어진 분위기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높임말로 대화하는 학급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형성된 분위기를 견고하게 하는 역할은 담임의 몫이다. 고운 말 사용만이 당연한 분위기를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칭찬이다. 높임말 실천자들을 칭찬한다. 아주 사소한 인사말도 격하게 칭찬한다. 아이들의 말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칭찬할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해야 한다.


“어머나! 우리 실천자 씨 선생님이 학습지 나누어줄 때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받는 거예요? 당연한 일에 고마움을 표현해 주어서 선생님이 더 감사합니다.”

실천자 씨는 칭찬에 감화되어 담임이 학습지를 줄 때마다 큰 소리로 감사 인사를 한다. 

     

이를 본 아이들은 실천자 씨를 모방한다. 같은 상황뿐 아니라, 확장된 상황에서도 실천한다. 뒷자리 사람이 앞자리 사람에게 학습지를 넘겨받으며 인사한다. 

“앞실천자 씨,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뒷사람에게 학습지를 넘기며 이야기한다.

“뒷실천자 씨, 여기 있습니다. 학습지 받으세요.”

학습지를 주고받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조차 감사 인사가 오가는 예의 바른 학급 분위기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학급에서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발생한다. 누가 어떤 물건을 떨어뜨렸는지 중요하지 않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책상 밑으로 몸을 낮춘다. 자기 것인 냥 떨어진 물건을 소중히 주워 주인에게 건넨다. 그리고 예쁜 말을 주고받는다.

“물건 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연필이 부러졌네요. 제 것 빌려드릴까요?”


높임말로 대화하는 학급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100퍼센트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색하고 습관이 안 된 탓에,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오는 귀여운 실수는 다반사다. 담임 눈치를 살살 보며, 일부러 반말을 살짝 하는 반항자들도 있다. 숫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부정적인 말을 하는 반항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입버릇처럼 거친 말을 쓰던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높임말을 하려니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이런 반항자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반복 지도만이 답이다. 절대 야단치지 않는다. 안 해도 되는 높임말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다.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럴 땐 계속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한다. 

“높임말로 이야기하세요.” 


담임이 반복하면 높임말 실천자들은 알아서 반항자들을 바른길로 인도한다.

“반항자 씨, 그런 나쁜 말 하면 안 돼요. 높임말로 이야기하세요.”

담임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친구들의 옳은 한마디가 훨씬 강력하다. 촘촘하게 짜진 학급 분위기 속에 반항자들은 거친 말을 거둬들이고서서히 높임말에 물들어간다. 바른말만이 허용되는 강력한 분위기에서 혼자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해에는 아주 강력한 반항자가 있었다. 담임에게 대놓고 따졌다.

“왜 친구들끼리 높임말을 써야 해요? 높임말 쓰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예요.”

높임말은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웃어른에게 사용하는 높임말이 아닌, 친구들끼리의 높임말은 더욱 그렇다. 작은 일에도 화가 많았던 반항자는 추가의 에너지를 쓰는 일에 짜증이 났다.


“반항자 씨, 친구들이 높임말로 이야기하면 존중받는 느낌이지요? 반항자 씨가 높임말로 이야기하면 친구들도 똑같이 느껴요. 높임말은 서로 존중하는 방법이에요. 지금은 적응이 안 되어 힘들 수 있어요. 차차 자연스러워질 거예요. 편안하게 사용하게 될 거예요.”

반항자 씨는 담임의 말에 더 이상 말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정중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어느 순간 학급에서 가장 훌륭한 높임말 실천자가 되어 있었다.

     

해마다 반항자들까지 높임말의 실천가가 되면 높임말 안정화 단계를 알리는 신호가 온다. 올해는 4월 첫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손을 씻고 급식실에 가기 위해 줄을 섰다. 4월 급식 메뉴에 대해 여기저기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가 급식 메뉴에 온 신경이 집중된 순간 담임의 귀에는 예쁜 말이 들려왔다.

저는 이제 높임말이 편해요.”

맞아요저도 높임말이 편해요이제 높임말 안 쓰면 이상해요.”

남녀 높임말 실천자 두 명이 높임말을 생활화하고 좋은 점을 고운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될 무렵 해마다 들리는 높임말 안정화 신호이다. 이 신호가 들리면 그다음은 물 흐르듯 간다. 담임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안도했다.

~다행이다드디어 신호가 왔다올해도 스며들었다높임말.’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다높임말이 편해지는 순간높임말이 아닌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순간.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리고 담임은 기도했다. 학급 전체가 두 친구와 같은 마음이기를. 모두의 마음이 고운 말을 닮아가며 예쁘게 단단해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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