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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Sep 05. 2024

선생님이 옳았어요.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2화 : 높임말 신념

“이제 알겠어요. 선생님이 옳았어요.”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9년 전 5학년 학급 학생으로 만났던 느긋함 씨가 6학년이 되어 전년도 담임을 찾아왔다.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만 들이밀었다. 어서 들어오라고 반갑게 손짓했다. 속으로는 좀 의외라고 생각하며. 다른 학생들이 스승의 날 우르르 단체로 찾아왔을 때, 삼삼오오 모여와 잠깐씩 얼굴을 비칠 때, 느긋함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뜻 교실로 들어와 선생님 앞으로 성큼 다가오지 못하는 느긋함 씨. 그녀도 친구들이 올 때 찾아오지 않고 혼자 방문한 것이 민망했으리라.   

  

느긋함 씨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매사 여유가 있는 학생이었다. 좋게 포장하면 그랬다. 진실을 말하자면?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활동적이고 의욕적인 담임과는 성향이 달랐다. 단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것저것 하라는 것 많은 담임을 만나, 느긋함 씨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귀찮은 것을 억지로 하려니 짜증도 났을 것이다. 모두 열심히 하는 학급 분위기에 휩쓸려 느긋함 씨도 다 하긴 했다. 그러나 빠릿빠릿하지 않은 굼벵이 같은 행동과 굼벵이를 씹은 듯한 달갑지 않은 표정이 종종 나타났다. 그녀의 속마음이 빤히 보였다.

‘굳이 이걸 왜 하라는 것이지? 흐윽! 귀찮아.’     


특히 높임말이 그랬다. 학년 초 친구들 무리에서 느긋함 씨가 반말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높임말이 어색하고 습관이 되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러나 담임이 듣지 못할 것이라 여긴 채, 높임말을 쓰지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물론 점점 익숙해지자 느긋함 씨도 높임말을 습관처럼 사용했다. 다만 그녀는 신경 써서 높임말로 대화하는 것이 귀찮았다.    

 

느긋함 씨가 혼자 전 담임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님, 진짜 신기해요.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은 뭔가 달라요. 다 할 줄 알아요. 다른 반이었던 친구들은 못 하는 것을 그냥 다 잘해요. 심지어 김치까지 잘 먹어요.”

조잘거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담임에게 살갑게 대하는 스타일은 더욱이 아니었다. 느긋함 씨가 혼자 찾아와 시키지도 않은 새 학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신기했다.     


“6학년 선생님이 ‘느긋함 씨’가 아니라 ‘느긋함 아’라고 불러서 처음엔 진짜 이상했어요. 이제 높임말은 안 써요. 그런데 높임말을 안 써도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은 말하는 것이 조금 달라요. 예쁘게 얘기해요. 그리고 복도에서 작년 친구들 만나면 아직도 높임말로 인사해요.”

높임말 쓰던 습관으로 새 학년이 되어도 고운 말을 사용하는 우리 반 친구들이 대견스러웠다. 좋은 습관을 갖게 하려는 담임의 1년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아 기뻤다.     


느긋함 씨는 작년 우리 반 친구들의 남다른 6학년 생활에 대해 한참을 묘사했다. 이어지는 것은 그녀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작년엔 제가 철이 없었나 봐요. 선생님 말씀 안 듣고 속도 많이 썩였어요. 죄송해요.”     


느긋함 씨는 드디어 전 담임을 찾아온 이유를 꺼냈다.

“사실은 작년에 선생님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많은 걸 하라고 하는지. 굳이 왜 높임말까지 쓰라고 하는지.”


그리고 뜸 들이다 꺼낸 말.

이제 알겠어요. 선생님이 옳았어요. 이 말 꼭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선생님, 감사해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느긋함 씨를 꼭 안아주었다.    

 

귀차니즘 말괄량이였던 느긋함 씨는 지난해 담임의 등살에 떠밀려 다양한 활동을 하고 높임말로 대화했다. 반복하다 보니 몸에는 습관이 배었다. 귀찮은 성향은 어느 정도 극복됐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까지 필요성이 심어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새 학년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담임이 그토록 많은 학급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실천하도록 했던 이유를.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1년 내내 일관되게 지속되었던 잔소리의 의도를. 친구들끼리 높임말로 대화하라는 기상천외한 학급 운영의 목적을.     


지난해 우리 학급 친구들이 했던 수많은 활동은 당연함이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끝없는 대화는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모든 것이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특별함이었다. 느긋함 씨는 그 사실을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의 우수함을 통해 깨달았다. 담임이 믿고 있던 꾸준함의 힘, 습관의 힘, 언어의 힘을 그녀도 똑같이 알게 된 것이리라.    

 

좋은 것은 누구나 느낀다. 10년 동안 만났던 우리 반 학생들 모두 좋은 습관의 필요성을, 높임말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누구는 새 학년 첫 주에 느꼈고, 어떤 아이는 한 달 만에 알게 되었으며, 또 다른 이는 한 학기가 되어 실감했다. 느긋함 씨는 1년이 다 지나고 다음 해에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전 담임에게 표현하기 위해 찾아왔다. 언제 느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어이 좋은 것을 알았다면 됐다. 앞으로 더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면 충분하다.     


나는 초등교사의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다. 교직이 천직이다. 한결같이 높임말로 대화하는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신념이 있기에 가능했다. 예쁜 말은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믿음. 긍정적인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졌다는 믿음. 성장하는 아이들은 주변까지 환히 밝히는 빛이 된다는 믿음. 긴 시간 흔들림 없는 신념은 제자의 한마디 덕분에 견고해졌다. 가슴속 깊이 박혀 교사로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말.

선생님이 옳았어요.”      


나는 나를 믿는다.

나의 학급 운영 방식을 믿는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나의 아이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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