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만든 가상인물과 결혼한 사람이 실제로 등장할 줄이야
지난 5월, 한 소설 공모전에 서류를 넣었다. 3월부터 구상해 왔던 AI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AI를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남편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 상상을 하며 최근까지 스토리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제 동생이 아침부터 문자를 보내왔다. 뉴스 기사 링크였다. 거기에는 남녀 커플의 이미지와 꽤나 익숙한 헤드라인이 기재되어 있었다.
"너무 완벽한 인간, 알고 보니 AI 가상인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뉴욕에서 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로잔나 라모스가 '레플리카(Replika)'라는 어플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가상인간을 만들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파란 눈을 가진 가무잡잡한 피부에 체형도 좋아 보였다. 직업은 의사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로잔나 라모스가 설정한 것으로 남편도, 결혼생활도 가상이지만 기사 속에서 드러난 그녀의 행복한 마음만은 실제였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엇! 내 시나리오잖아!'라는 설렘과 반가움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상상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현실에 등장하고 그 때문에 놀라는 일들이 잦아지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은 아니다.
로잔나 라모스는 최근 레플리카 어플을 통해 가상인물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레플리카 앱이 업데이트된 이후에 자신의 가상남편이 예전과 달리 애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아 그게 불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인물을 만들었으나 그게 실제 관계가 아닌 만큼 언제나 다른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나는 가상남편을 만들어 준 레플리카 어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예기치 못한 오류로 인해 그녀의 남편을 삭제해 버리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가상남편이지만 로잔나 입장에서는 사람이 죽은 것 같은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어릴 적 사이버 가수 '아담'을 본 적이 있다. 열심히 활동하던 그가 어느 날 바이러스에 걸려 더 이상 나오질 않는다고 들었을 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것이 실존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아담의 노래를 듣고 그가 등장하는 쇼를 본 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나는 그의 사라짐을 '죽음'과 동일하게 받아들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서치를 해보며 알게 된 사실인데, 아담은 바이러스가 아닌 유지비 때문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처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담을 살려내기 위한 펀딩을 했고 열의가 모아져 2016년에는 콘서트도 진행했다고 한다.
로잔나가 만든 남편과 아담을 두고 생각해보면 그 인물이 본질적으로 무엇이냐 보다 더 중요한 건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이다.그리고 지금은 그 '사회적'이라는 것의 범위가 더 커졌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그리고 이제 가상공간에서까지의 관계가 확장된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책이나 강연들의 주제도 인간과 기술과의 관계를 다룬 주제들이 많다.
인간과 기술의 접점은 점점 더 많아지고 가속화될 것이다. 어쩌면 로잔나가 만든 AI 가상남편의 이야기가 지금은 생소해도 나중에는 보편적인 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상남편뿐만이 아닌 가상의 친구, 반려견 등의 개념도 보편화 되어 우리 일상 속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이미 나왔을지도)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될까?
나는 가상인물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된 것인 만큼 친밀함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상인물과의 관계가 편하면 편해질수록 현실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과거보다 더 경직되고 좁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지만, 가상 인물과의 관계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현실에서 고립되어 버리는 상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들려오는 인공지능의 이야기를 바라보며 나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 만큼이나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숙고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게 최적화되지 않은 것, 불편한 것,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을 마주하고 그것들에 유연해지는 연습을 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마음을 열고 살아가며 낯선 것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