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구독자 늘리는 법도 물어보겠음
콘텐츠 기획을 위해 작성한 질문의 답변을 3일 만에 받았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 정도 걸렸을 내용에 빠른 답신이 와서 좋으면서도 의아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하신 거예요?" 나는 회신을 준 동료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AI가 도와줬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라서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무리 AI의 발달이 가속화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내 업무에까지 들어왔을 줄이야. 질문의 의도와 문장의 구성도 마치 사람이 쓴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만일 동료가 AI로 했다는 말을 안 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내친김에 동료에게 어떻게 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 툴인 '노션'을 활용해 썼다고 알려줬다.
우리 회사는 전사적인 업무를 노션으로 하고 있다. 모든 팀이 하나의 창에서 업무를 공유하려고 도입한 툴이다. 그런데 최근 노션에 'AI에게 물어보기'라는 기능이 새로 생겼다. 처음에는 새로 생긴 기능이 번거롭고 어색해서 그냥 뒀는데 알고 보니 참 유용한 기능이 많았다.
어떤 문장을 전해주면 그 문장에 내용을 추가해 분량을 늘려준다던가 그 반대로 문장을 축약해 주기도 한다. 아래는 '글 잘 쓰는 법'을 두고 'Make Longer' 기능을 눌렀을 때 보이는 화면이다.
여기서 내가 한 일은 '글 잘 쓰는 법'이라는 5자를 입력한 것뿐, 이하 모든 문장은 AI가 작성한 것이다. 아마 내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문장을 만들어 입력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내용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문장을 번역해 주는 기능도 참 유용하다. 이제 더는 구글 번역기를 통해 돌려서 쓸 필요가 없다. 아래에서처럼, 글 잘 쓰는 법을 이탈리아어로 바꿔달라는 내용만 입력하면 된다.
동료는 위의 예시와 비슷하게 필요한 내용을 적은 후, 문장을 늘리고 AI가 제안한 내용을 덧붙여가며 글을 작성했다. 또 문장을 작성한 뒤에는 톤 앤 매너를 수정해 주는 기능도 있어 '전문가처럼/ 캐주얼하게' 등의 표현 옵션을 선택해 글을 퇴고했다고 했다.
나는 마케팅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AI를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참에 다른 팀의 동료들에게도 물었다.
그러자 개발팀의 동료는 '코드가 헷갈리거나 생각 안 날 때 물어본다.'라고 하며 업무 할 때 Chat GPT를 자주 보긴 한다고 답했다. 또, 콘텐츠 마케터의 경우 유용한 태그를 검색하거나 목차를 정리할 때 AI의 제안을 따른다고 했다.
나 역시, 노션의 AI 기능을 알고 난 이상 글을 다듬거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검색하는 용도로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일을 언젠가 AI가 대체하게 될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제공한 리서치에 따르면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의 3위가 작가 및 관련 전문가이다. 주어진 주제나 상황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거나 감성에 기반한 직무는 로봇이 대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AI가 전문을 다 써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언젠가 글 쓰는 직업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생긴다.
이제 글쓰기를 하기 앞서 머리를 쥐어 싸매면서 뭘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까. AI를 활용해 에세이, 소설을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날이 오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느 날, 누군가가 쓴 글을 읽게 되었다.
한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 '오, 이 분 글 잘 썼다.'라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 하단에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 '이 글은 AI와 공동 작업으로 작성되었다.'라고 적혀 있어서 조금 놀랐다.
소셜미디어에서도 AI는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가짜뉴스로 등장해 아쉽다. 얼마 전 프란체스코 교황이 흰색 긴 패딩 점퍼를 입고 있는 사진이나, 미국 국방부 본부에 불이 난 사진들도 모두 AI로 만들어진 가짜 콘텐츠였다.
그래서인지 유럽연합은 AI를 통해서 생성된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공지능 생성 콘텐츠' 딱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월 규제법 시행 전, 구글과 페이스북 등에 딱지 도입을 자발적으로 조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글쓰기를 마치고 '맞춤법 검사'를 누를 때 정말 행복하다. 자동으로 틀린 문장을 찾아내고 다른 제안까지 해주는 이 기능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력한 기능이 나타났다. 이제 말투도 바꿔주고 내용도 보충해준다.
앞으로는 초안을 쓰고 AI에게 물어보는 일이 잦아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맞춤법 검사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될지 모른다.
그것을 떠나서 나는 글쓰기의 초안까지는 누구의 도움 없이 내 스스로 작성할 거라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AI에 의지하다보면 내 글쓰기 실력은 점점 도태될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계속 퇴고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조금 더 '진짜' 같다. 그리고 어설픈 진짜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