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제일 좋지만 싫었어요
요즘 왜 그렇게 뭘 하기가 귀찮은가 모르겠다. 심지어 내가 할 일인데도 남이 다 해줬으면 싶은 마음도 든다. 글쓰기와 점점 멀어진다. 쓰기가 싫고 써지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기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힘들다'라는 생각. 하지만 막상 또 쓰기 시작하면 써지기는 하다. 그런데 왜 책상 앞에 앉기가 힘든 것일까. 그게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다.
그러다 문득 그 이유가 무척이나 심플하다는 걸 알았다. 글쓰기가 싫어진 이유는 바로 힘들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걸.
이 피로감이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걸 돌이켜 보니 최근 부쩍 글 쓰는 게 힘들다고 생각해 온 것이 떠올랐다. 한바탕 쓰고 나면 두세 시간 흘러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 뒤통수 뒤에서 기쁨의 희열보다는 흐느끼는 누군가가 있다.
고결한 여신의 모습을 한 연약한 여인이 흐느끼면서 자신이 이제 힘들어서 이렇게 계속 썼다가는 빈혈, 저혈압, 어쩌면 심정지로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호소한다. 사실 이 가련한 여인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다. 이건 내게 오랜 세월 붙어 있는 게으름과 두려움이다. 그리고 귓전에 속삭인다.
"해봤으니까 알잖아. 얼마나 힘들었니?"
그냥 앉아서 쓰면 되는 것을 이런 걱정을 해대는 탓에 머리가 산란해진다. 나는 출발선에 서 아직 뛰기도 전에 '이걸 11초 안에 뛰었다가는 숨이 헐떡이고 말 거야.'라고 힘든 소릴 질러대고 있다. 비슷한 생각이 책상 앞에 앉기까지 이어진다. 이 걱정 때문에 하루 세 시간이건 잠깐이건 뭘 쓰면 죽을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알게 된 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약 1시간가량 꾸물거리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던 나 자신이다. 걱정과 생각더미에 짓눌려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괜히 글쓰기보다 독서를 해야 한다고, 쓰기 싫어질 때마다 책을 엄청 읽었다...(이런 패턴도 조심하세요. 작가 여러분)
작은 서랍에 꽂힌 책들 중 유난히 지난 상반기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들어왔다. 보도셰퍼의 '멘탈의 연금술'이었다. 나는 그 책을 넘겨 목차를 살폈다. 시선이 멈춘 제목이 있었다. 예전의 내가 별표로 표시까지 해 둔 곳이었다. 책장을 넘겨 밑줄이 그어진 글을 찾았다.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는 당신이 언젠가부터 책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당신 삶에 수정이 필요하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목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흔들린다는 것은 목표를 얻는 노력과 인내심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완전히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어서 또 다른 내 얘기가 쓰여 있었다.
'자기 일에 100퍼센트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이는 딴생각을 하고 남는 시간에만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딴생각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딴생각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 채 그걸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같은 구절에서 머무르며 여기에 감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구절에서 멈춰 이게 내 얘기인가 싶은 것은, 이 구절이 말하는 자기 일에 100퍼센트 전력을 하고 있지 않는 행동을 내가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기도 했다.
나는 밑줄이 쳐진 곳에 다시 한번 밑줄을 쳤다. 이게 내 습관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당장 오늘부터가 중요하다. 게으름과 두려움을 지나쳐 다시 행동을 하기 위해서 내 목표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무엇을 쓰든 어떤 가치를 전달하든 간에 가장 기본적으로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이란 부정적인 것들의 공격을 견디는 게 아닌 긍정적인 것들이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써보자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써보자고 다짐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상기하며 이것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3편씩 브런치를 업로드하기로 약속하면서 말이다. 오후에 시간이 없고 퇴근 후에 바쁘다는 핑계를 떨치기 위해 아침마다 써보기로... 이렇게 아침마다 쓰는 연습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