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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Nov 06. 2023

‘쫄지마’를 100번 쓰던 날


[경고]

이 글은 매우 유치하게 작성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평소 간지러움을 잘 타는 분이라면 읽지 말 것을 권장드립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으시기로 하셨다면 부디 행운을 빕니다.



 쫄보에게 


안녕, 쫄보야. 이 글을 읽기로 했다면 그것 참 큰 용기다. 왜냐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아주 유치하게 쓸 생각이거든. 너도 알다시피 뭘 시작하기가 너무 겁날 때가 있잖아. 요즘 내가 그래. 이 연재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만 한 달이 걸렸어. 뭘 써야 나중에 글을 통째로 삭제하는 일 없이 끝까지 연재해 나갈 수 있을까고민 했지.


그러다가 내가 제일 겁내하는 게 뭔지 알았어.

세상에서 제일 유치하고 별 볼 일 없는 글을 쓸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거였지.


그런 것 있잖아. 새벽에 쓰는 편지 같은 거. 감정의 소용돌이에 힘입어 막힘없이 한 바탕 써내려 갔는데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완전 이불킥 해야 하는 그런 글. 그게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글이야. 근데 그런 게 두려워서 글쓰기를 못한다면 그게 말이 되니? 그래서 나는 나름의 묘안으로 이번 연재를 생각해 냈어. 유치하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는 거야. 그러면 부담이 덜하잖아. 누군가 왜 이렇게 어설픈 글을 썼냐고 해도 ‘그게 콘셉트이에요’ 하면 그만이잖아.


앞으로 나는 자료조사가 철저하고 누가 봐도 잘 쓴 글이 아닌, 유치하고 우습고 가벼운 글을 써보려고 해. 평소보다 문장의 순서나 표기법에도 신경을 덜 쓸 거야. 하지만 읽는 네가 무엇이라도 얻어갈 수 있게 한 가지는 확실히 알려줄게. 진짜 내가 잘 아는 그 한 가지, 바로 두려움과 쫄지 않기에 대해서 말이야. 잠깐, 쫄지 않기는 아직 나도 섭렵하지 못해서 덜 쫄기로 정정할게.


너, 가장 기억나는 쫄리는 순간이 언제야?


나는 정확히 기억나. 내가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려던 때였어. 그때 새로 만든 일기장에 한가득 ‘쫄지마’ 라는 단어를 크게 써 내려갔지. 한 100번 정도 쓴 거 같애. 당시에 6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려니 너무 겁나기도 하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어. 새로운 환경은 너무 힘들잖아. 특히 낯선 사람들을 대할 때의 그 긴장감. 그래서 나는 쫄지마를 연달아 쓰면서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


출근 전 날까지 쫄지마를 써 내려가면서 중얼거렸지. 겁내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출근 첫날, 오히려 더 과장된 행동을 했나봐. 나중에 친해진 동료들이 하는 말이 내 첫인상이 별로 안 좋았대. 예민하고 못된 서울깍쟁이 같아 보였다고 했으니까.


쫄지 않은 척했던 것뿐인데, 그런  행동이 오히려 ‘쟤 왜 저래?’의 반응을 만들었나봐. 그러고 보면 참 씁쓸하지.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게 오히려 반감을 샀다는 거 말이야. 어쩌면 쫄아있는 모습이 더 나았을지도 몰라.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겁내는 내 모습을 좋아하더라.


한동안 잊고 있다가 이 연재를 하면서 ‘쫄지마’라는 단어를 다시 중얼거려 봤어. 최근에는 이 단어를 종이에 쓰거나 떠올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쫄보야.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더 업그레이드 한 쫄보가 되었다는 건데 그게 정확히 무슨 소리냐 하면, 무서운 감정은 느끼는데 그 이유가 뭔지 더 알기 어려워 졌다는 거지. 어렸을 때는 단순히 ‘~가 무섭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무서운게 뭔지 알기까지가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요즘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어. 무엇인가를 망설이거나 행동하기 주저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관찰해야 해. 분명 뭔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이거든.


뚜껑이 닫힌 변기를 볼 때 느낌 알지?

‘엇’ 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변기 뚜껑을 열잖아.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뚜껑이 닫힌 변기가 내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야. 대체 뭐가 무서운지 조심스럽게 열어봐야 해.


너 혹시 요즘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까 봐 무섭고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두려운 생각이 들어? 턱 하니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도 있고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릴 때도 있니?


나도 그래. 가슴이 방방 뛰는 것,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굽은 어깨와 의기소침한 발걸음에 대해서라면 너보다 더 알지.


아무튼 너한테 참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 잘 알고 있겠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 거거든. 그게 뭐 날마다 쫄지마를 100번 쓴다고 해서 변하는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면 앞으로도 넌 쫄보일거야. 하지만 확실한 건, 좀 더 나은 쫄보가 될 수 있어. 용기 있는 쫄보 말야. 여전히 두렵지만 끝까지 도전하는 그런 쫄보.


우리 그동안 너무 무서워서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자. 너한테만 말하는건데 사실 나 작년에 처음 자전거를 배웠어. 이제 마흔 가까이가 돼 가는데 말이야.


좀 창피하긴 해도 너를 위해서 솔직해져볼게. 평소에 내가 어떻게 두려운 마음을 털어 보내려고 노력하는지 알려줄게.


어쩌면 다음번에는 좀 더 너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또 얘기하자, 다음주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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