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사소한 중독이야기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 개찰구에서 어김없이 카드를 찍고 나와 바로 옆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네 캔에 만원', 나는 냉장고 속 맥주 네 캔을 재빠르게 골라 계산하고 가방에 쑤셔 넣은 후 집 문을 열자마자 바로 그 중 한 캔을 따서 폭풍 흡입 했다. 목이 막 타들어가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술을 끊은 지금이야 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마셔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날마다 맥주를 마신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건 낯설것 없이 늘 내가 해왔던 행동이었다. 마치 아침마다 양치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몇 해의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뒤늦게 내가 저녁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중독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다. 냉장고에 맥주 네 캔이 없다면 아쉬운 정도가 아닌 마치 먹어야 할 것을 못 먹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때, 내가 맥주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았고 그것을 멈추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습관이라고 말한다. 습관은 우리가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 망설이는 시간을 줄여준다. 그래서 습관이 되면 행동하기가 쉽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특정 행동을 반복할 수 있게 만든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생각 없이, 무엇을 하기에 앞서 그것을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게 해 준다. 나의 경우에서처럼, 무의식적으로 맥주를 가지고 와서 결제하고 마시는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습관과 중독의 차이가 있다면 습관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목표가 있는 행동이며 원한다면 바꿀 수 있는 반면, 중독은 목표를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며 바꾸기가 쉽지 않다.
맥주 네 캔이 중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나는 그 행위를 대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맛있으니까, 기분 좋아지니까, 싸니까 등등의 이유가 쏟아졌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현재를 회피하고 싶어서 했던 목적 없는 행동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실제로 멈추는 행동이 정말 어려웠다.
무엇을 하나 파고들면 호기심이 해소가 될 때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나는 맥주 네 캔 이외에도 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를 좀 먹이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그저 손에 잡힌 작은 작은 잎사귀를 살짝 들어 올린 것뿐이었는데 그 아래에 어마어마한 뿌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중독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등장했다.
나는 그것들의 리스트를 샅샅이 써 내려갔다. 알코올, 카페인, 아침에 꼭 먹어야 하는 빵과 과자, SNS, 쇼핑 등 내 일상과 매우 밀접한 것들의 이야기였다. 어떤 것은 이유가 있었고 어떤 것에는 이유도 없이 그저 어느 순간부터 해오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이유만큼 언제 어디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분명히 모두 무의식적으로 했고 또 충동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 무의식적인 중독리스트를 하나둘씩 삭제해 보기로 했다. 일단 그것들이 없어진다면 돈이 남을 것 같았다. 하루 약 3천 원 정도 술이나 과자에 돈을 썼는데 그 비용을 얼추 계산해 보면 일 년에 100만 원을 넘게 쓰고 있는 셈이었다. 그저 줄이기만 해도 100만 원을 아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중독에서 헤어 나왔을 때, 과연 어떻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당시에 나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겉으론 괜히 시니컬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방법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중독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내보기로 했다. 무엇인가 달라지길 바라면서. 아마 애초에 내가 알코올이나 카페인을 지독히 찾았던 것도 무엇인가 바꾸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싶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나의 사소한 중독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지속되어오고 있다. 그리고 알코올을 끊었을 때, 나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