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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ul 11. 2023

Y야, 네 몸은 10개가 아니란다.

Y에게 2화

언니, 저는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어요.


와우...이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일까...? Y는 가끔 머리가 띵해지는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Y는 하고 싶은 건 너무 많고, 그걸 다 하고 싶으니까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늘 시간이 부족해서 답답하고, 그 원인을 '자신이 일을 더 빨리 쳐내지 못해서'라는 것으로 갈음해왔다. 


시간은 '절대적 기준'을 따르기에 갑자기 하루 24시간이 48시간이 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소리라는 것을 말하기에 앞서, 시간이 늘어나길 바라는 이유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부분에 먼저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일을 더 빨리 쳐내지 못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에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Y는 늘, 몸이 10개인 사람처럼 살아왔다.


함께 일하며 옆에서 오래 지켜봐온 입장에서 Y의 업무 처리 속도는 객관적으로 빠르다. 분명 남들에 비해 적어도 1.5배는 빠르게 업무를 쳐낸다. 그뿐만이 아니라 퀄리티 또한 매우 높다.

그런데 Y의 문제는 업무를 쳐내는 속도 보다 더 빠른 '일을 받는 속도'에 있다. 그야말로 일이 무한대로 증식되는 것이다. Y는 늘 일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Y에게 일에 있어서, 강약중강약이라는 타협점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1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있었고, 그런 Y에게 24시간이 모자르다는 말은 진실로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했기에 Y는 진짜 48시간이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Y는 내가 놀랍다지만, 나는 Y가 놀랍다.


Y는 늘 나에게 평가가 관대하며, 자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Y가 볼 때 나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떻게 언니는 분단위로 뭐하나 무의미한 시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냐고 했다. 자신이 봤을 때는 나야말로 몸이 10개인 사람 같다며 비법을 알려달라곤 했다.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Y보다 일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도, 몸이 10개인양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현재의 나와 Y를 비교하면 내가 더 빠를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을 수 있지만, 나는 Y의 연차에, 나이에 Y와 같은 속도로, 그 정도 업무량을, 그 퀄리티로 해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연차와 나이가 되면 분명 Y가 나보다 더 멋진 방식으로, 놀라운 속도로,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Y가 포기하는 법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Y가 지금 방식으로 일한다면 나와 비슷한 연차와 나이가 되었을 때 나보다 더 잘하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라면 지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일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이기에, Y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결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에 찼던 나는 스스로의 몸을 망가트렸다. 욕심이 가득차서 자기 자신에게 교만했던 나에게 암이라는 벌이 잠시 내려지고 수많은 반성의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깨우치게 되었다.


우주를 포함한 이 세상 그 누구도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 결국에 부족한 시간을 채우려면 내가 24시간을 48시간처럼 쪼개서 살던지, 분신술을 쓰던지, 클론을 만들던지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24시간을 48시간처럼 쪼개서 살면 일단 내 몸이 쪼개질거다. 분신술은 할 줄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이걸 배울 방법을 찾는게 시간 낭비일 것 같다. 클론을 만드는 것도 내가 이제 와서 의학에, 과학까지 배워서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가능할까 말까할거라 이것 역시 시간 낭비다.


결국 냉정하게 따져보면, Y의 의지는 알겠지만 니가 말하는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나는 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거다. 해봤자 소용 없는 것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다. 어차피 안될 건 빨리 포기하고 피봇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향이다.



모든 답은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있다.


Y가 아마도 내가 24시간을 48시간 같이 쓴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결론적으로는 해내려고 했던 것들을 다 해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Y의 생각에는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 나는 하루에 10개를 해야 하는데, 3개만 집중해서 해내는 방식으로 나머지 7개를 포기하고 있다. 나는 늘 내가 오늘 해야 하는 일의 TOP3에만 집중한다. 결국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일과이다. 일단 내가 오늘 해야 하는 일의 TOP3를 해내면, 만약 그 뒤에 줄 서 있는 7개의 일을 1개도 해내지 못해도 나는 내가 정해둔 업무 시간을 넘어서 일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해도 결국은 끝까지 다 해내게 되는 건, 7개를 포기하고 선택한 3개를 집중해서 끝내두면 다시 7개 중, 그리고 추가되는 또 다른 미션 중 우선순위가 높은 3개를 또 집중해서 쳐내면 되고 그런 식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의 종착지에 와 있게 되는 것 뿐인 것 같다.

또한, 우선순위를 매일의 일과와 함께, 업무 시간 역시 매일매일 다르게 설정한다는 점도 내가 지치지 않고 남은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보통 나는 그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을 먼저 파악하고 오늘은 몇 시간 정도 일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기에 어떤 날은 8시간 하고 끝내고 12시간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워라벨이란 나인투식스가 아닌, 내가 충분히 일했다면 충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기에 솔직히 나는 퇴근 시간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은 원래 아니라서 이런 부분에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이 너무 저조한 날에는 시차, 반차, 휴가 등을 사용할 때도 있다.



Y야, 너에게는 시간에 순응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해보고 하는 후회와 안 해보고 하는 후회 중에서는 무조건 전자를 선택하는 파다. 다만, 누가 봐도 안될 건 아는 상황에서는 굳이 해보고 하는 후회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이슈에 대해서는 단연코 감히 24시간의 시간을 48시간처럼 쓰려는 생각은 포기해라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하고, 굳이 왜 저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기에 욕심이 나는 그 마음을 왜 모를까, 나 역시 그랬던 시간이 존재하는데! 다만, 이전의 내가 시간을 컨트롤 하려고 건방을 떨었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감히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기를 포기하게 된 후, 오히려 Y가 부쩍 나에게 어떻게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건지 부럽다고 하게 된 걸 보면, 이 경우 포기가 답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무슨 대단한 해결책을 만들어 낸 것도, 내가 대단한 능력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없이, 꾸준히 그저 내가 할 일들을 하루하루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해내면서, 내 몸을 망치지 않고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해주는 것에 순응하고 있을 뿐인데, 그 순응이 만들어주는 축적의 힘들이 결국 내가 다다르고 싶던 곳에 데려다 주고 있을 뿐이다.


내가 시간에 순응하는 겸손함이 생기고 나서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듯이, Y도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안되는 것에 대해 인정하며 시간에 순응하는 겸손함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Y가 몇 년 뒤,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보다 몇 만배는 더 멋지게 빛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건 건강한거다. 건강해야 다음의 시간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올 수 있는 거다. Y가 일에 대한 욕심으로 건강을 망치는 상황이 되면, 과연 누가 행복한 것이란 말인가?

때문에, Y에게 말한다.


Y야, 네 몸은 10개가 아니란다.
1개인 네 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앞으로의 시간이 찾아온단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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