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통해 배우게 된 것 2.
암 환자들 대부분 지금 당장 암에 의한 생명의 위협과 함께 암 투병 후 실직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뉴스 기사에도 보도될만큼 실존하는 위협이다.
눈부신 의학기술 발전으로 국내 암 환자 5년 생존율은 70% 수준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사회 복귀율(Return to Work, RTW)은 2018년 기준 약 30%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63%, 영국 84%, 일본 70%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교수 연구팀이 암 생존자 43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암 생존자의 24%는 암 진단 후 직장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2022.11.25 매경헬스 기사(서정윤 기자) 발췌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경력단절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큰 것 같다. 나도 그러했지만, 항암 주사실에서 만난 분들의 대부분이 암 치료(누군가는 수술까지, 누군가는 방사선 치료까지도)가 끝난 뒤에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복직은 가능할지, 재취업은 가능할지 등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 했었다.
사내 복지가 잘 되어있는 기업이 아닌 이상 암 환자들 대부분이 휴직은 고사하고 퇴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기에 애초에 경제적으로 갖춰진 상태거나 보험이 준비되어 있거나 하지 않은 이상 암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아파서 일할 수 없고 나아도 자신은 이미 아픈 사람이라 멀쩡한 사람들도 살아남기 힘든 취업 시장에서 경쟁이 될지 의심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당히 운이 좋았었다. 남편이 보험 설계사였기에 보험이 충분히 대비되어 있었던 데다가 당시 다니던 회사의 사내 복지는 국내에서도 매우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휴직을 하고 치료를 받았는데, 내가 당시 재직한 회사는 명성에 걸맞게 실제로 병가부터 휴직, 단체 보험 혜택까지 완벽하게 서포트가 되었고 복직에 대해서도 곳곳이 나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도록 지원되었다.
다만, 그걸 직접 경험하면서도 출근 직전까지도 나는 내가 과연 복직이 될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복직 후에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회사의 제도적 배려 덕분에 괜한 우려를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한없이 약해져있던 내 마음은 '나는 잘 할 수 있어! 난 다시 사회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어!'라는 확신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이런 제도가 존재하고 실제로 혜택을 일부 경험하고 있었고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도 있던 나 같은 사람도 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은 상황의 암 환자들은 당연히 걱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투병 중에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연이 닿게된 유방암 환우들과 이런 고민들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용기를 주고 돕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우리가, 서로의 사회 복귀를 위해 도울 수 있는 재능과 역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내가 사회에 할 기여 중의 하나로 <암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커리어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목표를 막연히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몇 개의 자격증도 획득했었는데, 정작 내가 사회 복귀를 하고 나니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서 사느나 바쁜 매일을 사느라 내 목표를 다시 망각하게 되었었다.
그러다, 제작년에 블로그로 만난 암 환우인 지인이 자신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것에 도움을 주게 되면서, <암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커리어 컨설턴트> 역할에 대한 불꽃이 되살아났다. 마침 이제 나는 곧 완치라고 일컬여지는 10년의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보니 무언가 의미있는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진짜 암과 헤어지며 10년의 종지부를 찍는 그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고, 커리어 컨설턴트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힘을 키우고자 숨고를 통해서 취준생 및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150여명의 커리어 컨설팅을 하면서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리더십이나 업무 역량 강화, 자기주도적인 업무를 하는 방법 등으로 기업이나 기관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
이렇게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 과정의 일환이다. 내가 암을 경험하고 난 뒤 달라진 많은 것들과 이 경험이 내 인생에 얼마나 긍정적인 파도를 몰아치게 만들어줬는지,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구현되고 그 힘을 사회 복귀에 어떻게 잘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에게 전하며 응원하며 현실적인 힘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암 환자들을 위한 커리어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이 늘 나에게 '당신은 대단해, 암도 이긴 여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했잖아!'라면서 날 대단한 사람 취급해준다. 생각해보면 암을 겪은 이후 나는 세상에 대한 겁을 상실하게 된 것 같다.
나에게 남아있는 삶의 시간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아질 수도 있다는 것, 내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지금 이 순간보다 중요한 것이 없어지니 무언가를 행하는게 무섭지 않다.
지금 아니면 도전할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니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은 더 없어졌다. 후회할 기회도 생각보다 별로 없을지 모르니 후회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나를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 싫어졌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위해 그 시간들을 쓰고 싶어졌다.
나는 좀 더 뻔뻔해지고 이기적인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나만의 해답지를 찾아나가며, 나는 점점 세상의 시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암이 주는 죽음의 공포와 맞써 싸운 마당에 솔직히 무서울 게 뭐 있는가? 암을 경험하고 난 뒤, 나는 첫 암 판정을 받은 그 황당함을 넘는 황당함을 경험한 적이 없고, 항암 후 겪는 부작용들에 느낀 슬픔과 분노를 넘는 슬픔과 분노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수술 전날의 밤의 공포를 넘는 공포를 경험한 적이 없고, 10시간 넘는 수술 후의 온 몸에 퍼진 고통을 넘는 고통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렇듯 나의 모든 자극의 기준이 암을 겪은 후가 되고 나니 세상에 무서운게 없어졌달까?
암도 이겨내며 내 목숨을 지켜낸 힘을 가진 우리가 대체 못할 게 무엇일까? 암 덕분에 나는 세상에 대한 겁을 상실하고 나 자신의 인생을 더 용기있게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