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김종식 멘토님
전에 멘토님께서 해외에서 직장 생활하신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자신의 롤모델로 전 직장의 보스를 거론하셔서 조금 놀랐었거든요.
솔직히, 보스랑 잘 지내는 것까지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닌데, 내 보스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건 더더욱 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멘토님께는 왜 전 직장 보스가 롤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건 지가 궁금해요.
저는 보스는 두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가까워지면 사람이 싫어지는 타입, 또 하나는 가까워지면 내가 그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타입, 이렇게요. 많은 경우 대부분의 보스는 가까워지면 부담스럽거나 싫어질 것 같은 느낌일 거에요. 그리고 그 느낌이 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구요.
그런데 제가 롤모델이라고 말하는 ‘마크 레벳’이라는 분은 가까워지니까 내가 그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그런 타입이었어요. 이 분은 제가 커민스에서 일할 때 국제 사업 담당 총괄 부사장으로 제 보스셨는데, 제가 이 양반의 두 가지 부분에서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첫 번째, 이 양반은 캐릭터, 즉 품성이 곧아요. 그리고 두 번째, 행동이 일관된 거에요. 제가 원칙을 중시하는 성향이라 그런지 이런 점이 너무 멋진 거에요.
내가 이 사람에게 뭐 엄청난 비즈니스 스킬을 배우고 그런 기억은 없어요. 물론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 분을 롤 모델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니다 보니까 그런 기억은 어렴풋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분이 나의 보스로 있으면서 몇 가지 기억에 남겨 준 리더로서의 모습이 임팩트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나한테 이 사람이 <믿음>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부분이거든요. 커민스가 글로벌 기업이라, 본사는 미국에 있고 나는 항상 한국이나 중국에 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는 컨퍼런스콜로 주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뭐 솔직히 전화로 내가 뭘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고객이나 직원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고 등 긴 이야기를 나누었겠어요? 시차도 있고 나 그 분도 너무 바쁘잖아. 그냥 인사 후 거두절미하고 비즈니스 이야기를 주로 나누게 되지요. 그런데, 이 분은 항상 컨퍼런스콜 마무리를 이런 말로 해주는 거에요.
Jong (영어로 제 이름), Good job.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엄청 힘이 되었어요. 의례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고 내가 bad job하기 전까지는 good job으로 쳐줄게 일 수도 있지요. (웃음)
어쨌든 그 말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더라구요.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솔직히 불만이나 잔소리도 하고 싶고 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항상 그렇게 대화의 마무리를 해주면서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그래서 나도 내 보스의 믿음에 답하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구요.
내가 이 경험을 통해서 ‘내가 믿음을 주면 상대도 내 믿음을 돌려주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 덕분에 나도 내 직원들, 후배들을 믿어주는 것부터 하는 신조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 분이 내 보스로 있을 동안 배울 부분이 정말 많았고 지금도 평생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그 회사에서 은퇴한 지 오래 된 그와는 여전히 연락도 자주하고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인사 겸 연락했을 때 ‘내가 인터뷰를 하는데, 롤모델 질문이 있어서 당신을 내 롤모델로 이야기 할 거다. 당신처럼 되려고 난 지금도 노력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했거든요. 근데 엄청 감동 받더라구요. 그래서 이 질문 덕분에 내 전 보스이자 롤모델에게 굉장히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찌니님. (웃음)
어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제가 더 감동이에요. 근데, 저 같아도 제 후배가 저렇게 말해주면 진짜 울컥하고 감동 받을 것 같아요.
보스를 롤모델로 삼으실 정도면 멘토님에게 회사 생활은 삶에 있어서도 특별하셨을 것 같은데, 회사 생활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도 있으실까요?
내가 되게 재밌는 경험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나한테 경영의 핵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 있어요. 또 커민스 다닐 때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래 다녔으니까. (웃음)
내가 커민스에서 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한국의 모 재벌 기업의 부회장이 큰 사업을 벌이려고 해서 커민스로 출장을 오기로 한 적이 있어요. 내가 호스트가 되어서, 우리 본사로 가서 며칠 동안 본사 중역들과 사전 작전 회의도 하고 그 다음 주 방문 일정등을 최종 정리하고 나니 주말이 되었어요.
그 때가 겨울이었는데, 본사가 있는 컴럼버스라는 소도시가 겨울에는 그냥 눈이나 오고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출장 오시는 부회장님은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도착 예정이니까 조금 여유가 있었죠. 그래서 금요일에 일 끝나고 직원과 친구들이랑 콜로라도 스팀보트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스키장에 갔어요. 일요일에 돌아오려는 가볍고 짧은 주말 여행 이었죠.
그런데, 이걸로 난리가 나게 됐어요. 토요일에 스키를 신나게 타고 일요일 점심 때 공항에 갔는데 비행기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공항인 덴버 공항이 갑자기 내린 눈 폭풍으로 폐쇄가 되었다는 거에요. 공항에서 비행기가 떠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덴버 공항이 폐쇄면 난 본사에 못 가는 거거든요.
야, 이거 어쩌나 눈 앞이 캄캄해지는 거야. 내가 미쳤구나, 왜 스키를 타러 와서는…이 회의 내가 호스트 못하면 그야말로 회사에서 잘리겠구나. 이거 어쩌냐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머리 속이 복잡해진 거죠.
그때 나 같은 해외 중역들 서포트 해주는 비서 같은 사람이 있는데, 일요일인데 불구하고 일단 그 사람 집에 전화를 했어요. 그 친구한테 내가 이만저만 해서 콜로라도 시골 비행장에 있는데 이런 문제가 생겨서 본사에 못 돌아가게 생겼다, 그런데 혹시 회사 전용기가 있으면 좀 보내줄 수 있느냐 그랬어요.
그 친구는 당연히 황당했겠죠. “이게 뭔 소리야, 더구나 일요일에 파일럿도 쉬는데 무슨 회사 비행기가 있겠냐. 너도 알다시피 이런 경우에는 회장의 특별 사전 승인 없이는 안된다는 알잖아?” 나도 근데 급하니까 “뭐, 알지만 어떡해,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다.”라며 내가 생각해도 애처럽게 부탁을 했어요. 일단 그 친구가 전혀 기대감을 주지 않고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날 오후 5시 경에 석양을 등지고 멋진 리어제트 경 비행기가 그 시골 공항에 착륙하더라구요. 이 아름다운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상황을 보고 받은 국제 사업부 총괄 부사장이 자기가 책임질 테니 바로 회사 전용기를 보내 나와 일행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거에요.
이야~그 작은 비행장에서 미국인들이 한 150명 정도가 집에 갈 비행기를 못 타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고 일부는 공항에서 밤새는 준비를 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는데, 왠 동양인 아저씨를 모시러 리어제트 비행기가 착륙하고 파일럿이 정중히 인사하고 짐까지 들고 비행기로 앞장서니 다들 박수 치고 부러워 하는 등 난리가 났어요. 참 뿌듯하기도 하고 회사에 너무 감사한 거에요.
그리고 진짜 더 감사했던 게, 이 스키 사건에 대해 회장님도 내 보스도 나한테 아무런 이야기나 야단을 치지 않았어요. 덕분에 파트너와 중요한 회의는 잘 마쳤죠. 나중에 들으니까 회사 비행기 비용이 약 8천 불 정도 였는데 저에게 청구도 하지 않더라구요. 당연히 감동을 받은 저는 더욱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 많이 냈어요. 결과적으로 수천 배로 회사에 보답을 한 셈이지요.
그 때 내가 깊이 느꼈어요. 아 회사가 직원들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믿어주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구나. 그래서 제가 타타대우 상용차에서 CEO로 있을 때 인사 중역에게 주문했던 게 있어요. 우리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많이 갔거든요.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가면 배우자들에게 전화 드려서 출장 간 동안 집에 무슨 일 생기면 무조건 회사로 전화 주도록 안내하게 했어요. 애기가 아프다 하면 회사 차 보내서 병원에 입원 시키고 비용도 일단 회사가 다 내게 하고 나중에 출장 간 직원과 정산하게 한 것이죠. 출장자들에게 최대한 일 외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줄이게 만들려고 했어요.
따져보면, 회사가 쓰는 비용보다 그 직원들이 나가서 고객들에게 상용차 주문을 받거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잖아요. 이렇게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 주니까 직원들도 회사의 이런 부분을 좋아해주고 감사해 하고 그만큼 좋은 성과도 만들어 오고 그랬죠.
그 때 스키장 에피소드는 나한테는 진짜 값진 경험이었고 두고 두고 크게 각인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 이게 경영의 핵심이구나, 회사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믿어주면 직원들이 더 일을 신 나게 잘해낼 수 있구나 그걸 깨달았죠. 깨우침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가슴으로 느껴야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