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일로 나의 생존을 확인한다.
Chapter 4 : 노연상 멘토님
멘토님의 좌우명이나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내가 뭐 좌우명이라고 해서 뭐 벽에 써 붙이고 이런 건 없고 그때그때 어려움을 이겨내는 나만의 생각들이 있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가치관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은데…내 가치관은 탁월함과 비범함을 항상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전 질문에서 내 인생에 중요하다고 말했던 경제적 여유와 자존감, 이걸 위해서는 내가 탁월하고 비범할 필요가 있었다고 얘기했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보면 인생 로드맵도 그리고 코칭, 멘토링 이런 것들이 많이 발달이 돼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이어져 가는데 우리 때만 해도 이제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기 계발이라는 인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는 경제적 여유도 추구해야 하고 내 자존감도 있어야 하니까 나 자신의 성장이 정말 중요했고 그래서 자기 계발이 필요했죠. 근데 보니까 결국 탁월하고 비범한 이들이 스스로 나와서 자기 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탁월함과 비범함을 항상 추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배경에는 우리 집이 어려워져서 내가 ‘생존’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들이 존재했죠. 이게 참 아이러니 한데, 내가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안 감사한 부분이기도 해요. (웃음) 기왕이면 젊을 때 돈 좀 더 많이 벌어두시고 편하게 공부하게 해주시지 싶기도 했다가, 그런 환경이었으면 내가 이렇게 까지 될 수 있었을까 싶다가 그래요. (웃음)
여하튼,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남보다 낫다는 걸 항상 보여줘야 되고, 나한테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내가 해결 못하는 바가 없다, 나는 뭐라도 해내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해야 하고 그렇게 사회에 나라는 사람의 필요성과 자기 긍지 이런 걸 드러내기 위해, 탁월함과 비범함을 추구하면서 자기 계발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멘토님의 그 생존의 인생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게 바로 일인 것 같은데요. 멘토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젊었을 때는 그냥 뭐 일이 주어졌으니까 열심히 했는데, 은퇴를 하고 생각해 보니까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일이 없어지면 꼭 죽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일을 자꾸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일이라는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자꾸 내 존재에 대한 허무감 이런 망상이 떠오르는데, 일을 함으로써 그런 것들이 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일은 내 존재에 대한 허무감 등을 내 머릿속에서 제거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이다 그렇게도 생각해요.
그럼 일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셨고 어떻게 좀 극복을 하셨어요.
수많은 어려움이 존재했고 늘 해답을 찾는 노력을 하면서 극복을 해나갔죠. 그래도 제일 어려웠던 걸 꼽으라면 S-Oil을 퇴사하게 된 사건이었던 것 같네요.
무고를 당한 거였지만 결국 그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상 받은 것도 없고, 무고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나는 내가 너무 좋아하던 일과 회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굉장히 괴로웠어요. 근데 그때 불교 철학으로 그 정신을 공부하고 배우면서 마음을 잘 다스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쉬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죠. 내가 그렇게 우스운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일이라는 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의식도 있고 하다 보니까 그대로 은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경동원에 인연이 닿아서 가게 되었는데, 거기는 중견기업이다 보니 대기업과는 또 시스템도 다르고 직원들의 성향도 다르고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직원들도, 회사도 성장 시키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가장 성장한 건 나인 것 같아요.
인생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었고 내 관심이 엔지니어 중심에서 인문학 중심의 사고로 바뀌게 되기도 했고 하니까. 물론, 만약 사건이 없어서 S-Oil을 계속 다녔다면 훨씬 더 행복한 여유 있는 노년의 삶이 되었을 거는 틀림이 없을 거에요. 그런데 이미 그런 사건은 생겨버렸고 그 이후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나의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서,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나의 자존감을 지켜내면서 잘 극복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당히 억울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 같은데, 멘토님은 진짜 자기 평정심이 엄청 나신 분이에요.
그럼 어려운 일은 잠시 잊기로 하고! 그동안 일을 하시면서 뭔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내가 회사에 큰 기여를 하고 그걸로 나도 인정 받았던 일들이 기억나죠. 그 중에 젊은 친구들이 들어서 재밌을 만한 게 뭐려나…
아, 그래! 내가 S-Oil에서 일할 때 이란 전쟁이 터졌어요. S-Oil이 정유사 중에서는 후발주자라 어려움이 정말 많았는데 그 상황에서 당시 합작 파트너인 이란에 전쟁이 터진 거죠. 그 전쟁통에 제가 이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초고속 승진의 기회도 잡았지만 그만큼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어요.
한번은 자고 있는데 이라크 폭격기가 테헤란을 때려 가지고 밖에 난리가 난 거예요. 그때는 뭘 몰라서 전쟁보험도 안 들고 출장 가고 그랬는데 실제로 그 상황이 되니까 무섭더라고요. 이게 우리 물리 시간에 배운 거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원래 소리하고 빛이 동시에 오면 가까이 있다는 거잖아요.
이건 눈 떠보니까 아주 동시에 펑펑 터지더라구요. 그래서 옷 주워 입고 복도로 몰려나갔어요. 엘레베이터도 운행을 멈추었으니까. 잠시 있으니까 싸이렌 해제되고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 일하러 가고 그랬어요.
아니 멘토님…너무 무서운 상황인데, 그게...그 상황이 잠이 올 수 있는 건가요? 애초에 출장을 가시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뭐 어쩌겠어요. 이역만리에 출장왔는데…(웃음) 다음날 일해야 하니까 자야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그때는 참 그게 되었더라구요.
그리고 이 전쟁 때 유가 파동이 심했어요. 사실 정유업은 재료비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건비 같은 건 얼마 안 되거든요. 직원들 월급 좀 많이 줘봐야 회사에 큰 영향이 없어요. 중요한 건 원유를 얼마나 싸게 사 갖고 오느냐 또는 유가가 막 파동을 치는데 이걸 어떻게 햇징하느냐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리스크 햇징을 위해서 우리가 뉴욕 선물시장에서 선물 거래를 하며 이런 저런 노력을 했어요. 유가 파동이 있던 한동안 뉴욕 선물시장에 장이 오픈되어 있을 때, 선물시장을 담당하는 담당자하고 매일 ‘지금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냐’ 확인하고 그럼 판단해서 ‘얼마큼 사라, 얼마큼 팔아라’ 이걸 논의했어야 했는데, 거긴 낮 거래 시간인데 우리는 밤이잖아요. 잘 수가 없는 거지요.
거래 주문의 의사 결정권자는 나고, 시장 상황은 정말 순간 순간 막 돌아가니까 밤새도록 잠을 안 자고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화상회의 플랫폼도, 핸드폰이 없으니까, 머리 위에 전화기 갖다 놓고 계속 통화하고 그랬어요. 근데 난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일해야 하니 가끔 자야 되니까, 우리 마누라가 한숨도 안 자고 ‘나 15분 이따 깨워줘’ 하면 15분 있다가 깨워주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 마누라는 낮에 자고 완전 올빼미족 되었지요. 이걸 몇 년 간을 했어요. 그 덕분에 자금적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회사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국내파인 내가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나의 영어로 글로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당당하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활용했다는 것도 굉장히 자부심이고 그때 공부했던 시간들도 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전쟁통에 출장도 다니고 밤 잠도 줄여가며 회사 원료 조달 가격 안정화하려고 하고 내 일을 프로페셔널 하게 하기 위해 영어를 수준급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하고, 그야말로 모든 걸 걸고 열심히 일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 시간들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시간들 덕분에 회사의 인정도 받고 초고속 승진도 하게 된 부분도 있구요.
그럼 일을 하시면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계셨나요?
본질을 벗어난 타협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일했어요.
일하다 보면 이게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일을 좀 비틀거나 꾸미고 과장하고 본질과 다른 내용으로 바꿔서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저는 일을 그렇게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리더십 차원에서 잡으면서 가야겠다 이런 생각 보다는 생리적으로 굉장히 거부감이 생기고 그랬던 기억들이 있어요.
이거는 내가 뭐라고 해서 생각을 바꾸게 하고 그럴 수 있는 영역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이미 그렇게 살아온 거라 좀 바꾸기 어렵달까…타협을 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본질을 벗어난 게 잘못된 거거든요.
우리가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게 내 원칙이라, 나도 일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약간 본질을 벗어난 사람들이랑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고 멀리 뒀던 것 같아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