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허영희 멘토님
멘토님의 인생,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시 멋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멘토님은 저에게도 멘토이시자, 롤모델이시기도 하구요.
그래서 궁금해요. 멘토님께서도 롤모델이라고 하실 분이 있으신가요?
저도 저의 멘토님들이 계시고 그 분들이 제 롤모델이시기도 해요. 당장 김종식 사장님도 저의 전 회사 보스셨지만 저에게 멘토이기도 하시고 롤모델 이기도 하시거든요. 인생을 저보다 훨씬 많이 사신 분들이죠. 그렇다 보니 저랑 분야가 완전히 달라도 그런 분들께 얻는 조언은 배움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동경하는, ‘아~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분은 前 IMF 총장, 지금은 유럽 은행 총장인 ‘크리스틴 라가르드’에요.
크리스틴 라가르드 Christine Lagarde
1956년 1월 1일 생
2022년 포브스 Forbes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2021년 긴즈버그 명예훈장
2019.11~ 現 유럽중앙은행 ECB 총재
2011.07~2019.09 前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
이 분이 1955년 생이니까 나이도 많으신 편이고 여성 리더시죠. 지금과 다르게 1950년대에 태어난 여성분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을 겁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여성이 누구한테 뭔가 재산을 물려 받았거나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데,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 그 위치까지,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글로벌 스테이지에서 활발히 활동하시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존경하고 있는 게, 이 분이 인터뷰 하신 것들이나 뉴스를 보면 본인 만의 지식이나 인사이트가 확실하시고 상당히 품위 있게 커뮤니케이션을 하시거든요. 약간,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시는 것 같아요. 외모적으로도 보면 항상 단정하고 멋지고 카리스마 있게 자신을 꾸미시고 당당히 드러내시더라구요.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보면서 대단한 자기 절제를 통해서 저 자리에 계시는 거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저한테는 사실 멘토님이 거쳐오신 시대도 여성에게는 녹록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당장 저만 해도 첫 사회 생활할 때는 지금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겪었으니까요. 저는 멘토님을 제 롤 모델 삼고 싶었던 부분이 용기 있게 늘 도전하시는 부분이었거든요.
특히, 회사를 잘 다니고 계시던 분이 늦은 나이에 해외 유학을 가서 박사를 하셨잖아요. 저는 사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셨는지 되게 궁금했어요. 멘토님이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그런 도전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셨나요?
뭐 그렇게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어떤 도전을 했다기보다는 저도 여러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 때는 좀 더 남녀차별이 존재했죠.
같이 입사해서 남자, 여자가 같은 동기야, 근데 결국 남자가 훨씬 먼저 앞서가죠. 근데 당시 사회적으로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내가 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거를 내가 부당하다고 목소리 높여서 싸우는 것보다 내가 일단 힘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내가 남자 동기보다 하나라도 더 인정받으려면 뭐가 필요하냐,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가방 끈, 그 가방 끈이 긴 게 성별만큼 유리했어요. 그래서 나는 조직에 이렇게 내가 여자여도 뛰어나고 노력하는 모습을 위에 보여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들로 석사 과정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석사를 하면서 내가 나만의 특별한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박사까지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박사 학위를 위해서 유학을 선택한 건 사실 도피였던 것 같아요.
박사 고민 중일 때,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상실감에 좀 빠졌어요. 그래서 좀 여기를, 한국을 떠나있어야겠다, 괴롭다, 그 생각이 계속 들고 그래서, 그 때 이야기 하고 있던 학교 중 해외에 있는 학교로 박사 과정을 하러 갔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저의 제 2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석사까지는 그냥 어떻게 보면 그냥 쉽게 왔어요. 하지만 박사는 아니었어요. 공부하는 체계도 유럽이 한국하고 많이 달랐던 것도 있지만, 말 그대로 자기와의 싸움이었어요.
이 박사 학위라는 게 무슨 제가 엄청난 업적을 쌓아서 박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박사 학위를 딴다는 건 내가 주장하는 거를 증명하는 거거든요. 내 주장을 사람들한테 어떻게 증명할 거야, 예를 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계를 쓰든지, 논리정연하게 서술적으로 하든지 해야죠.
근데 내 주장을 검토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한테 내 주장을 증명해야 하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일단 나 스스로에게 내 주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해. 깊게 파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거죠.
저한테는 이 정도로 스스로 깊게 파고들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처음 가져본 거라 힘들었어요. 박사 공부의 모든 과정이 일단 나부터 설득 시켜야 하다 보니 스스로와 계속 싸우는 시간들이었어요. 박사 학위 4년 간의 시간, 이거를 제가 견뎌냈다는 거, 그것도 사회생활을 충분히 해보고 간 상황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잘 해낸 것이 정말 저의 무기가 되었어요.
사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면 모르는 대로 닥쳐서 하는데, 저는 36세에 유학가서 마흔에 나왔잖아요.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좋고 나쁨 그리면 이런 게 어떤 건지 아는 나이기도 하고, 나이대가 좀 인생의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거 가지고 일을 구할 수가 있나, 학위를 못 받으면 어쩌지, 몇 년 더 있어야 되나 이런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맞서서 계속 이런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고 집중하는, 그런 스스로를 훈련하는 시간을 얻은 것 같아요. 솔직히 그때 공부한 게 머릿속에 그렇게 안 남아있어요. (웃음)
하지만 내가 4년 동안 끊임없이 self-discipline, 자기 훈련한 거. 이게 남아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그 고생과 괴로움을 알아서, 누군가 해외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하면 일단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인정해주게 되더라구요.
이건 조금 딴 소린데요. 저도 요즘 이런 저런 학문적인 의미의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게 멘토님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웃음) 진짜 어른들이 어렸을 때 공부해야지 나이 들어서 공부하기 힘들다고 하신 이유가 있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거든요.
뭘 해도 안 외워지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멘토님이 박사 하신 나이가 저랑 비슷하잖아요. 박사 코스 진행하실 때 공부는 안 힘드셨어요?
힘들었지.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진짜 어렸을 때 해야 해요, 공부는! (웃음)
이게 열심히 했는데 또 잊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그리고 저는 조금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타입이라, 엉덩이가 가벼워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겠더라구요. (웃음)
그런데, 참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 거라. 차곡차곡 축적의 힘은 누구에게나 오더란 말이죠. 제가 공부하는 주제의 논문을 대략 천편 정도를 읽고 1년 반 정도 지나니까 어느 날 머릿속이 쫙 정리가 되는 거에요.
제가 사실은 유학 가서 한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가방 싸서 한국에 돌아오려고 했어요. 내가 나름 영어가 된다고 갔는데, 이게 비즈니스 영어랑 아카데미 영어는 또 다른 거라. 내가 영어 통계 배운 지가 언젠데 다 까먹었지, 아무리 내 전공이 경영학이어도 기억이 안나. ‘야~난 안되는가 보다, 괜히 외국에 왔구나, 돈도 비싸고 가야겠다’ 이러면서, 지도 교수님에게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실비아, 너 목 끝까지 괴로운 게 찼냐’ 그러시더라구. 그래서 좀 그런 것 같다고 하니까, 그럼 정리할 것도 있으니까 그런 것들도 정리하고 하면서 한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정리할 거 하면서 한 달을 보내고 되게 자연스럽게 박사 과정도 일단 진행은 하고 그러고 한 달 지나서 만났는데 아직도 목 끝까지 괴로운 게 차있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정도는 아닌데 여전히 괴롭고 힘들다고 했지.
그랬더니 그럼 이제 9개월이 지났으니 아까우니 1년만 채우고 다시 이야기 하자 그러시더라구. 그래서 일단 또 꾸역꾸역 해내면서 1년 채우고 한 1년 2개월 정도 되었거든요.
근데, 그때부터 아까 제가 얘기한 것처럼 너무나 신기하게도 읽었던 내용이 머리에 정리가 됐어요. 내 머릿속에 이 내용을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게 생기고 나서부터는 박사 과정 진행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났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박사 과정을 조금 빨리 당겨서 끝내게 되었고, 국제 논문 공모 이런 데서 그때 고생해서 준비한 논문으로 대상도 받고 그랬어요.
이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이 힘든 과정을 잘 견뎌냈기에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포기하고 싶어하면 그렇게 이야기 해요. '여기까지 하고 정말 죽을 것 같으면 그 고비를 넘겨봐라, 그러면 다른 게 보여지는 나의 잠재력 이런 게 발견되는 시기가 사람은 누구나 찾아온다.'라고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