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오연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by 무한한 사각우물


얼마 전 덴마크의 교육환경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자 님이 강연을 열면서 처음 꺼낸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자신이 지하철을 탔는데 빈자리를 보고 초등학생 한 명이 자신을 툭툭 치더니 자리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때 '내가 이 사회를 만들어온 장본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도 20~30대 때는 세상을 비난하기만 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공감이 됐다. 나도 지금 뉴스에 등장하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튜브 댓글 창을 가득 채운 악플들을 보면서, 어른들의 불쾌한 행동들을 보면서 한 걸음 뒤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남일처럼 말했다. 이 사회를 지금 이렇게 만든 기득권층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어떨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걷고 뛰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사회에 자리 잡은 완연한 어른으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을 거다. 그때, 우리 세대가 만든 사회에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얼마 전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두 번이나 봤다. 사실 그런 일이 뉴스를 타지는 않아도 학교 내에서 1년에 두세 번씩은 꼭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우리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굴었다. 그 순간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많은 시간 동안 학교에 갇혀서 문제풀이를 했다. 근데 막상 대학에 와서 보면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취업이 남아있고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간 친구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대학에 떨어졌다고 했을 때 아이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어른들은 많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를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말한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패배자라고. 또 말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면 패배자라고. 고작 최저시급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한다. 아이들은 무시를 학습하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끊임없이 상위 10%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고졸사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러니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중소기업의 질 낮은 복지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그러니 스펙을 더 쌓아서 대기업에 가지 그랬냐고 한다. 청소 노동자들에게도,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차가운 시선들이 따라붙는다.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라고 한다.


노력한 만큼 상위 10%가 성공하는 세상의 문제점은 그 아래 있는 90%의 사람들을 모두 다 패배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상위 10% 안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행복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건 분명하게 인과관계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이 이상한 논리에 나는 순응하고 싶지 않다. 100점을 맞은 사람이 행복하다면 10점을 맞은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어떤 실수를 해도 괜찮아야 한다. 어떤 길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책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될 줄 알아야 한다.


남들을 관대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도 그렇게 보게 된다. 자신이 쌓아 올리며 남들을 깎아내리던 기준들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 순간 자책이 시작될 테니까.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어떤 능력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줄 수도 없다. 하지만 나부터 조금씩 달라지는 게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면 나는 조금 더 관대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실수에 관대하고, 남의 쉼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작은 마음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의 실수를 보고도 웃어넘기고, 내가 넘어져도 나를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잘 자란 초등학생을 봤을 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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