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피의 성공법 1
무언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집에 틀어박힌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내가 조급하게 생각할 때마다 우울감이 나를 덮쳤고 꼭 그 후엔 나에게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위장이 파업하고 음식물을 뱉어냈다. 살이 빠져서 사놓은 옷들이 한 주먹은 남았다. 사회적 시선으로 보기엔 말라서 나쁠 건 없다. 걱정하는 말보다는 말라서 좋겠다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며칠 전부터는 리뷰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써보고자 내가 접하는 모든 매체에 대한 생각을 메모로 남기고 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해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기분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었다. 도서관에 있으면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숏폼의 가장 나쁜 점은 내가 선택한 영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면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모르게 된다. 삶의 주체성을 잃게 되는 거다. 책을 읽는 건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 제목과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며 어떤 책을 읽을지 정한 다음 앉아서 진득하게 몇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나간다. 문학을 읽고 싶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메이즈러너를 꺼내 들었다. 도서관에 가서 고작 판타지 소설 읽으면서 독서라고 해도 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스스로 성취를 이뤘다는 생각을 했으며 내 삶에 좀 더 생기가 생겼다.
최근에 진로코칭을 받았는데 그때 당장 취업을 하기보다는 학원 아르바이트를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학원에 면접을 봤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는 건 두 번째인데 지난번 영화관 알바 면접을 봤다가 떨어지고는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챗지피티로 지원문구를 만들었는데 지원하자마자 저녁에 면접을 보러 올 수 있겠냐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이력서를 뽑아갔다. 다음날로 미루면 괜히 이런저런 생각들에 긴장할 거 같아서 바로 간다고 한 거였는데 정말 아무 준비 없이 본 것 같아서 후회했다. 계속 다른 답변을 할걸..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며칠 뒤 다음 주부터 출근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아르바이트나 일을 구할 때 나는 자기 PR에 상당히 약한 편이다. 다니기도 전에 걱정이 앞서는 거다. 나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뽑으면 실망을 안겨드릴까 봐 적극적으로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망설여진다. 나 자신이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약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내 이력서에 적힌 경력사항, 자기소개서에 쓰인 내가 해왔던 일들을 보면서 경력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전에 내가 어떤 일을 해왔든 간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은 더 쉽지도 않고 덜한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은 넌 지금까지도 잘 해왔으니까 이번 일도 잘하겠지라고 말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능력이 당연한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인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도전할 때마다 엄청난 노력이 따라온다. 결코 이전단계를 잘 끝냈다고 해서 그다음 단계로 가는데 노력이 덜 필요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서 하고 서울대를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간 미래를 다른 사람들은 다 대단하게만 보지만 정작 미래는 자신이 없다. 지금 이 회사가 자신의 가장 최선이면 어떡하냐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회사를 떠나지 못한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 인생의 패배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뭐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 본 적 없고 제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발에 물집이 터지고 부르트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계속 행군을 하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이번에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 사람들이 국토대장정에 성공하면 삶이 바뀔까?
국토대장정의 성공과 취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토대장정의 성공과 꿈을 이루는 것, 삶의 성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토대장정을 지금 포기한다고 해서 나에게 오는 페널티는 아무것도 없다.
국토대장정을 성공한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도 않는다.
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의 나와 졸업한 후의 나가 그렇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닌 나와 회사를 다니기 전의 내가, 영화를 찍기 전 나와 영화를 찍은 후 나는 똑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소개할 때는 내가 과거에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나 스스로 느끼기에는 그런 것들이 지금 나를 이루고 있고 나에게 어떤 에너지를 주었는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일을 해냈어도 나의 본질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고 게임처럼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오르는 게 아니다.
나는 그대로 나이고 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고 마음먹으면 겁쟁이인 나는 또다시 작아진다. 다시 그만한 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남들의 말처럼 그렇게 쉽게 느껴지지가 않는단 말이다.
국토대장정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뭘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그 길을 갔을까?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을 믿고 도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그건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되는 거고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못하는 일이 되는 거다.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되새기면서, 나는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됐다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