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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송아 May 25. 2023

내가 배운 건 수학이 아니었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우리는 왜 질문이 없을까? 


일을 하면서 제일 답답할 때는 아이디어가 없을 때이다. 어떤 일을 추진하려 할 때, 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엉뚱한 생각이라도 떠오르면 좋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과제 해결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 문제를 오래 붙들고,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꿈에서까지 등장해 방향이 환기되거나, 바깥에서 읽어들이는 책의 정보, 언론의 뉴스 등을 접하면서 무언가 연결되는 지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해결의 실마리를 간신히 붙잡게 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더 답답하고 자괴감이 들 때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때다. 새로운 사업 기조를 들었을 때, 어떤 정책 대안을 접할 때,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과 충돌하는 지점이 마땅히 있어야 하지 않는가?(반백 년을 살았는데!) 좀처럼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만 외부에서 접하는 지식과 경험 대부분은 스펀지가 닦아내는 물기처럼 흡수될 뿐이다.


그럴 때면 항상 나 자신의 무능과 열심히 읽고 쓰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으른 과거가 후회스럽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을 걸 보면 나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 아닌가. 오죽하면 지금이야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어릴 때 어른들이 ‘자꾸 따지면 공산당’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자라면서 ‘이것은 왜 이럴까?'라거나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뇌가 가장 왕성하게 자란다는 대학 초년까지 지식을 머릿속에 최대한 많이 집어 넣는 것만이 공부인 줄 알았다.

©pixabay




올 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새로운 강좌<어떤?문해력>에서 수학 문해력을 주제로 최수일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1시간을 넘길 때 즈음 내 사고의 빈곤함, 질문 고갈의 시초를 발견한 것만 같아 깊은 탄식이 흘렀다.


“직사각형의 정의는 무엇일까? 각의 크기가 모두 90도면 직사각형일까?”

“분수의 덧셈에서 왜 분자만 더하고, 분모는 더하지 않을까?”

“삼각형은 밑변에 높이를 곱하고 왜 2로 나눌까?”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는 왜 이렇게(나눗셈 기호를 뒤집어 놓은 듯 선을 긋고) 구할까?”

“나눗셈은 그냥 나누는 게 아니라, 똑같을 때 나누는 거라는데, 뭐가 똑같다는 걸까?”


초등학교 저학년에 나오는 두자리 숫자의 덧셈과 분수의 개념부터 학생들이 어떻게 개념을 발견하게 유도하는지 놀라웠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개념의 발견은 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교사의 예제 풀이 시범을 모방하여 곧바로 문제풀이에 돌입한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낭패감과 감탄이 교차했다. 아, 내가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건 수학이 아니었구나. 이 개념들을 스스로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면 수학을 공부하는 기쁨이 없을 수 없다! 


개념과 개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을 모른 채, 나 역시 보통의 수포자들처럼 초등학교 3학년에 배우는 분수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지점을 풀지 못하고 넘어가니 문제는 누적됐다. 5학년에 나왔던 비례식은 살면서 수시로 필요한 개념인데, 지금도 헷갈린다. 결국 학창시절에 했던 수학공부는 공식과 요령을 외우고 해결하려 한 문제풀이가 전부였다. 마치 지식을 암기하듯.


내가 만약 개념과 논리를 연결하면서 생각하는 기쁨을 알았더라면, 수학문해력을 터득하고 계속 활용할 줄 알았다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숱한 문제들을 훨씬 더 깊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중년에도 뇌는 발전한다는 뇌과학자들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면서, 내 앞에 놓인 과제의 실마리를 찾아 흐릿한 눈을 가늘게 뜨는 수밖에. 


다만, <수학의 발견> 같은 대안교과서를 붙들고 아이들에게 수학 문해력을 일깨워주고자 노력하는 전국의 수학 선생님들이 부디 더 많아지길,  그만큼 더 많은 아이들이 수학의 기쁨을 발견하길, 그리하여 무언가 낯선 일을 맞닥뜨렸을 때 질문하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길 바랄 뿐이다.


p.s. 강의 중에 인상적이었던 일화 한 가지. 천재로 소문난 여섯 살 아이는 사탕 7개에서 4개를 주면 3개가 남는다는 것은 알지만 7-4=3은 이해하지 못하다고 한다. “숫자 7 속에 4가 어디에 들어 있단 말이야? 3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거야?”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수학이 기초적인 연산부터 고도의 추상화 과정을 거치고, 이를 이해하려면 일정한 나이로 성숙해야 하며 수학에 선행학습이 불필요함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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