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Jul 17. 2019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라이온 킹> 리뷰


1. 나한테 <라이온 킹>은 기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라이브 액션 영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접한 '영화'가 바로 <라이온 킹>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릴 적에 비디오를 수 차례 돌려보며 무파사가 죽을 때면 눈물을 흘리고, 밤이 되면 심바 인형을 껴안고 잠에 들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랬더 내게 20여 년이 지나고 그 <라이온 킹>을 실사영화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시사회에서의 호불호 갈리는 평과 무관하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개봉일 조조부터 영화관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의 심정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만난 <라이온 킹>은 기대보다 더 귀엽고, 더 즐겁고, 더 웅장하며 알던 것보다 훨씬 묵직한 작품이었다. 



2. 사실 <라이온 킹> 실사영화는 영화적으로 봤을 때 결코 잘 뽑힌 작품은 아니다. 개봉 전 여러 평론가들이 놀라운 CG, 애매한 음악, 부족한 감정표현과 감정 전달과 제자리걸음 한 스토리가 결합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기도 하다. 


강렬한 CG 덕분에 아프리카의 광활함과 웅장함은 잘 살아나며 프라이드 랜드의 압도적인 위용, 코끼리 무덤의 기괴스러움과 같은 요소들이 놀라울 정도로 잘 영상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동물들의 생김새나 원작 뮤지컬 씬들을 현실적으로 수정하다 보니 영화 중간중간 이색적인 혹은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하쿠나 마타타' 장면에서 노래하는 심바는 무섭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도. 



개인적으로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무표정으로 보이는 동물들을 자세히 보았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눈빛의 변화와 약간의 얼굴 움직임으로 전해지는 세밀한 감정 표현이 도리어 인상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작 <라이온 킹>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을 잘 활용해 풍부한 동물들의 표정과 과장된 여러 뮤지컬 씬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바 있고, 그렇기에 원작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사실적인 CG가 꺼려질 만한 요소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편 영화를 보다 보면 노래들 또한 편곡을 통해 원작과는 다른 라이브 액션 버전을 시도한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Be Prepared'처럼 대표적인 노래가 그 임팩트와는 무관하게 분량이 줄어든 점이나, 비욘세를 캐스팅하고도 그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 전체적인 스코어가 뮤지컬보다는 일반적인 팝에 가깝게 편곡된 점 등은 분명 아쉽다. 물론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할 만큼 여전히 강렬하지만. 



3. 반면에 영화의 스토리는 원작의 스토리에서 몇몇 캐릭터의 설정을 제외하면 변화된 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그마저도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에는 별 영향이 없다). 오프닝을 포함한 몇몇 장면은 원작의 그림을 그저 CG로 그대로 옮긴 정도고. 사실 원작 <라이온 킹>의 스토리가 생략된 부분도 많고 단순화되어 있기는 하나, 그만큼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내용만 있다고 생각했기에 스토리를 건드리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필요하거나 혹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받은 부분을 적절히 수정했던 점을 감안하면 최선의 결과물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심바가 왕이 된 이후의 후일담 같은 형식으로 심바의 정당성과 메시지를 강화해 스토리를 더 풍부하게 한다든가.


객관적인 시점에서 <라이온 킹>이 숱한 단점들로 가득한 영화인 것은 자명하다. 존 파브르 감독이 <정글북>을 연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연출력이 퇴보한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라이온 킹>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도 맞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오랜만에 보니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라이온 킹>의 시작은 그 유명한 'Circle of Life' 다. 'Circle of Life'는 <라이온 킹>을 대표하는 뮤지컬 넘버로 무파사와 심바,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프라이드 랜드의 철학이자 신념이고 삶의 이유이자 가치이다. 작중 사자들에게 삶의 순환이란 다양성 안에서 그들과 다른 이들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그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 또 그들에게 과거는 단지 시간이 흐른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심바가 스카의 말에 수긍한 것도, 그의 말대로 달아나 버린 후 진정한 가르침을 받고 진실을 깨닫기 전까지 집으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가지 삶의 방식을 보여준 뒤 영화는 품바와 티몬, 그리고 스카를 통해 다른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들을 의도적으로 충돌시킨다. 품바와 티몬에게 삶은 일직선이다. 그들은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 현재를 즐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기에 심바와 달리 그들에게 과거는 그저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나게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며 심바를 일시적으로 치유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영화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한 가지 더 보여준다. 바로 스카다. 스카는 (좋게 말하면) 순환이 아닌 일직선 상의 발전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로, 공동을 위한 희생이 아닌 개인의 만족을 최우선시하는 인물이다. 이는 그가 프라이드 랜드를 거침없이 광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심바, 티몬, 품바, 스카처럼 서로 다른 가치와 신념이 공존과 조화를 이루고 충돌하는 것. 이는 <라이온 킹>의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즉, <라이온 킹> 속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변화는 단지 왕위를 향한 권력 다툼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사고방식, 신념, 가치 간의 충돌의 상징이다. 따라서 <라이온 킹>은 개인의 신념과 철학에 기초한 충돌과 타협, 갈등과 봉합의 과정에 대한 통찰을 동물들의 강렬한 액션과 미장센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상술한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라이온 킹>이 변함없는 뭉클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라이온 킹>의 메시지가 항상 정답은 아닐 것이다. 사회의 순환을 유지하는 것보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가 항상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파사, 심바, 닐라처럼  세상의 순환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는 삶을 살 수도 있듯이 (스카가 되지만 않는다면) 품바와 티몬처럼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충족시키는 인생을 살 수도 있으며, 이는 옳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라이온 킹>은 20여 년 전 내가 결코 할 수 없었던 여러 고민들을 던져 주었고, 그래서인지 다시  만난 사자와 동물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귀엽고, 슬프고, 감동적이고 짜릿한 것만은 아니었다.  



5. 영화를 최종적으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아닌 수용자인 관객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보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라이온 킹>이 바로 그러한 영화였다. 과연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다면, 혹은 어릴 적 심바에 연민을 느끼고 무파사의 희생에 감동받았던 경험이 없다면 새롭게 단장하고 돌아온 사자왕이 이 정도로 반가웠을까. 또 영화의 주제의식과 메시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다시 만나 기쁘고, 자세히 보니 더 예쁘고, 오랫동안 보고 싶었기에 더욱 사랑스러웠던 영화, <라이온 킹>이다. 



A(Acceptable, 무난함)

만듦새가 정밀하지는 못해도, 의도와 효과는 정확한 추억의 영상화






매거진의 이전글 하이틴 드라마와 MCU 히어로 간에 거친 거미줄을 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