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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20. 2019

본질 없는 효과는 없다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리뷰


1. 알랭 뒤카스. 그는 미슐랭 스타만 20개 넘게 받은 세계 최고의 셰프들 중 하나다. 그는 프렌치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새로운 요리라는 의미) 중에서도 지중해 스타일의 요리를 대표하는 셰프로 육류가 아닌 야채, 어류 등의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기로도 유명하다.

 

 또한 그는 평소 "요리는 프렌치 라이프 스타일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영역으로 전통적 정신은 받아 드려야 하지만, 고정되고 정지된 개념으로의 해석은 피해야 한다. 가치는 존중하고 고수하되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데에는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며 전통을 이어가되 현지에 맞춰서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셰프이기도 하다.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이러한 알랭 뒤카스의 요리 철학, 더 나아가 그의 인생철학을 담담히 영상화한 다큐멘터리다. 



2.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그가 베르사유 궁전 내에 '오흐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2년 간의 과정을 담아낸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크게 2가지 내용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가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알랭 뒤카스는 세계 최고의 셰프답게 요리와 인생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본질 없는 효과는 없다


음식에 있어서 알랭 뒤카스가 생각하는 본질과 효과는 무엇일까. 이 다큐멘터리는 분량의 반 이상을 할애해 그가 추구하는 본질과 효과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영화 속 그는 직접 재료의 생산지를 찾아가 재배, 수확, 공정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재료들을 직접 시험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스에 있는 레스토랑의 텃밭부터 브라질 코코넛 원산지까지. 재료 본연이라는 본질에서 음식의 맛이라는 효과가 나온다는 그의 요리 철학이 이끌어준 길은 아닐까.  



프렌치 퀴진 = 클래식'이라는 관점에 동의할 수 없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어떤 종류의 창의성이 발현되느냐가 중요하다. 클래식은 하나의 본질적인 DNA라고 볼 수 있다. 즉, '프렌치'라는 DNA는 다시 개별적 크리에이티브를 탑재하고 번식된다. 


각국의 감성 Sensibility과 식재료를 프렌치 노하우 및 테크닉과 혼합하는 것이 적합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랭 뒤카스가 재료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프렌치 요리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프렌치 요리란 과거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작중 그는  프랑스, 그리스, 일본, 홍콩을 오가며 어디서든 정해진 프렌치 요리의 스타일은 유지하지만, 그 재료들은 현지의 것을 사용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프랑스의 상징과 중심에 오픈한 레스토랑에서도 과거 프랑스 왕정의 궁중요리를 간소화하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다. 이처럼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그가 요리를 대할 때 어떤 본질과 효과를 고려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3. 그의 요리를 비추던 다큐멘터리는 그가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짧은 인터뷰와 함께 그의 인생철학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미 가장 성공한 셰프 중 한 명인 알랭 뒤카스. 하지만 영화 속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를 선택하며, 새로움을 추구한다. 일본에서는 장어 덮밥과 일본 정식처럼 그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브라질에서는 새로운 코코넛을 찾으며, 필리핀에서는 요리 학교를 후원하고, 밀가루와 설탕을 제외한 디저트 개발을 지휘하기도 하며, 리우 올림픽 기간에는 선수촌에서 남은 재료로 노숙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베르사유 궁전에 레스토랑을 여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에 도전한다. 이렇듯 그가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이유로는 그의 인생에 굳센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시피 없이 요리해야 한다 


알랭 뒤카스는 레시피대로 요리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레시피가 있으면 요리할 때 레시피에 맞는지 틀렸는지만 신경 쓸 뿐, 자신의 미각과 마음과 선택을 믿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심지어 자신이 성취한 성공으로부터도. 외부의 시선은 항상 자신을 의심하고, 조급하게 하며, 스스로를 흔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조차 고정된 레시피로 바라보며 이를 벗어나는 것, 이것이 알랭 뒤카스가 항상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새로운 맛을 찾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생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인 듯싶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가 그냥 유명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저 좋은 소리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SNS, 유튜브, 책, TV, 라디오 등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소리가 충분히 흘러넘치고 있으니. 하지만 영화의 반 이상을 할애해서 그가 요리를 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을, 그의 열정과 진심을 보았기에 레시피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알랭 뒤카스의 말이 단순한 좋은 소리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위로, 위안, 격려와 충고로 느껴진 것이 아닐까.



4. 아쉽게도 이 작품 역시 영화적으로 뛰어나지는 않다. 빠른 화면 전환과 전개를 통해서 다큐멘터리에 흔히 존재할 수 있는 지루함과 느슨한 리듬을 탈피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핸드헬드 카메라와 맞물려서 어지럽고 심하게는 난잡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또한 앞뒤로 오프닝과 크레디트가 없는 것, 원어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자막도 대사, 장소 설명, 인물 설명에 구별 없이 일관된 폰트로 유지되는 부분이 있어 영화를 감상할 때 약간은 불편할 소지도 있었던 듯하다. 배급을 할 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5.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는 내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을 것 같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학교든 회사든 사회 생활을 할 때 이에 대한 고민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다들 애써 표현하지는 않으려 하거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 내게, 우리에게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근래 거의 듣지도, 보지도, 접하지도 못했던 진짜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를 선물해 준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가 난 좋다. 


레시피를 보지 마. 옳고 그름도 따지지 마. 너의 본질과 내면을 믿고 요리해. 최선을 다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A(Acceptable, 무난함)

뻔한 말을 유려하지는 않아도 진심을 담아 말하는 재주



글에서 인용한 모든 표현은 본 영화, 프랑스 관광청, 바앤다이닝 인터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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