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홉스&쇼> 리뷰
익숙함과 새로움, 둘 다 갖고 싶은 귀여운 욕심쟁이들
이들
1. 영화 시리즈의 속편이 제작되는 방식으로는 시퀄, 프리퀄, 리부트, 스핀오프 등이 있다. 그중 스핀오프는 '기존의 영화, 드라마, 게임 따위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또는 그런 작품'을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스핀오프 영화가 관객들을 가장 만족시키기 어려운 속편의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핀오프 영화들은 기존 시리즈의 인물과 설정이 갖는 매력을 유지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기존 시리즈에 버금가는, 혹은 뛰어넘는 신선한 매력을 갖추어 자신만의 차별점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매력을 조화롭게 갖추어야 하기에 스핀오프는 다른 속편보다 준수한 완성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실제로 당장 이번 여름에 개봉했던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도 흥행과 비평 양쪽으로 모두 실패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효자 시리즈, <분노의 질주>의 스핀오프 영화는 다르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는 새로운 장르와 신선한 액션, 그리고 기존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내러티브로 무장해 익숙한 듯 새로운 매력을 뽐내는 데 성공했다.
2.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에서 홉스와 쇼가 시종일관 투닥거리는 장면에서 시작된 것이 자명한 <홉스&쇼>는 액션 영화보다도 버디무비의 매력이 강하다. 이는 기존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두고 자신만의 방향성을 환기시키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홉스&쇼>에는 다른 듯 비슷한 두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연출이 많이 등장한다.
<홉스&쇼>가 선택한 방식은 대조와 비교다. 영화는 초반부터 두 인물을 계속해서 동일한 상황에 투입시키며 둘이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킨다. 마초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미국인인 드웨인 존슨의 '루크 홉스'와 젠틀한 듯 블랙유머가 가득해 속이 뒤틀려 있는 제이슨 스타뎀의 '데카드 쇼'. 이 둘의 차이점을 액션 스타일과 유머 등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두 인물을 소개하는 오프닝 시퀀스라든가, 적진에 침투해서 벌이는 액션 시퀀스 등이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이렇듯 시종일관 따로 노는 물과 기름 같던 홉스와 쇼는 둘 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었던 과거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홉스와 쇼는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 아주 단순한 방식이지만, 대조와 비교를 통해 개성이 뚜렷한 두 인물의 행동과 대사에 적절한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는 다소 진부하고 식상한 연출로 느껴질 수도 있는 마지막 액션 씬에서조차 멋진 콤비가 탄생하는 감동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킬러의 보디가드>처럼.
3. 또한 <홉스&쇼>는 본래 시리즈인 <분노의 질주>의 고유한 매력 중 필요한 것은 적절히 계승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영리하게 변용하고 있다. <분노의 질주>는 자동차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를 최대치로 구현한 시리즈로, 도심을 질주하는 카 레이싱과 어떤 상황에서든 자동차를 이용하는 액션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홉스&쇼>는 주연인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총기와 맨몸 액션을 주요한 볼거리로 삼는다.
물론 자동차 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중 인상적이었던 시퀀스들을 오마주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성들의 판타지 중에 자동차 이외의 측면을 공략해 액션의 관점에서 스핀오프가 독자적인 시리즈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모아 섬에서 펼쳐지는 하이라이트 시퀀스처럼 원시적이고 육체적인 힘을 강조한 액션이 다수 등장하기도 하고.
4. 이처럼 액션의 영역에서 기존 시리즈와 차이점을 두기 위해 애쓴 것과는 달리, 내러티브에 있어서 <홉스&쇼>는 <분노의 질주>의 핵심인 가족애를 그대로 가지고 온다. 사실 <분노의 질주>가 지금과 같은 거대한 시리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의 경우처럼, 영화 내외적으로 시리즈의 가장 주요한 내러티브인 가족애가 절절하게 살아났기 때문이다.
가족은 어찌 되었든 가족이라는 것.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많이 싸우지만 그럼에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가장 가깝기에 오히려 가장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개인적으로 <분노의 질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내러티브이고, 그렇기에 시리즈의 팬으로서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홉스&쇼>는 이를 본편에서 맛보기만 보여줬던 홉스와 쇼의 가족을 통해서 새롭게 풀어낸다. 형제와 어머니라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시켜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에 감정적인 깊이와 약간의 변수를 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쇼의 여동생인 '헤티 쇼'는 두 주인공 못지않은 매력과 존재감을 보여주며 영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각적인 새로움과 익숙한 감정선을 절묘하게 섞어놓으면서 <홉스&쇼>는 관객들을 영화관에 붙들어 매어 버린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적지 않은 단점들이 있다. 우선 가족이라는 소재를 활용함에 있어서 효과적이었지만, 너무 편의적이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시리즈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가족애라는 내러티브를 끌고 온 것은 좋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도리어 퇴보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홉스&쇼>는 혈연으로 묶인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들이 유대감을 다시 형성하는 진부한 스토리에 머무를 뿐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개선점 내지는 혁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시리즈를 염두에 둔 듯 안정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은 1인 가구의 증가와 새로운 거주 형태의 등장 등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혈연관계보다도 개인 간의 친밀감과 동질성이 가족을 구성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기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히 담아냈다.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의 크루는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다. 리더인 도미닉 토레토와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만 하더라도 폭주족과 그를 잡으려는 경찰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시리즈 안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결혼을 통해 약간의 혈연관계가 섞이기는 하지만...). 인종과 성별까지도 뛰어넘으면서. 그렇기에 <홉스&쇼>의 가족애는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6. 이외에도 영화적 완성도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액션의 경우, (시리즈의 전체적인 문제이긴 한데) 특히 이번 영화는 SF적인 요소가 많다 보니 기존 시리즈보다도 개연성 혹은 현실성의 측면에서 과하다, 선을 넘는 것 같다는 인상이 강하다. 악역으로 등장한 이드리스 엘바의 '브릭스턴'이 스테레오 타입의 악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캐릭터들을 소비해버리는 면도 있다. 그나마 에이사 곤잘레스의 '마담 M' 정도가 주인공 외에 빛나는 인물이랄까.
유머의 경우 타율이 낮지는 않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이나 마블처럼 미국의 대중문화를 알지 못하면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워낙 캐릭터들의 대사가 많아서 영화가 난잡하고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다. 아무래도 감독인 데이빗 레이치가 <데드풀 2>를 연출했고 라이언 레이놀즈가 등장하기도 해서인지 <데드풀 2>의 분위기와 비슷한 듯하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면 홉스, 쇼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호흡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두 주연 외에 조연들의 개그나 유머는 조금 덜어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염두에 두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내 발걸음은 다시 극장으로 향할 것이 분명하다. <분노의 질주>와는 다른 원초적인 액션과 두 주인공의 걸쭉한 입담이 선사하는 매력은 영화의 부족한 완성도를 덮기에 충분하니까.
개인적으로 <로건>, <데드풀>, <스타워즈: 로그 원> 이후 할리우드에 오랜만에 등장한 성공적인 스핀오프라고 느낀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