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Aug 21. 2019

포장만 예쁜 로맨스 종합 세트

<애프터> 리뷰

1. 고등학교 3년 동안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썼었다. 블랙베리 볼드 9900 화이트. 생애 첫 스마트폰이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그 핸드폰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크다. 방 어딘가를 뒤져보면 아직도 공기계가 있을 정도로. 돌이켜보면 고 3 입장에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핸드폰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최소한의 카톡과 인터넷, SNS만 가능하고, 영어 듣기를 위한 MP3는 있었으니까. 단지 단체 카톡방에서 톡이 오면 바로 핸드폰이 렉 걸려서 쓰지 못하고, 게임도 없고(벽돌깨기 정도?), 업데이트도 엄청 느리고, 자체 OS라 다른 거랑 호환도 안 되었을 뿐... 한국에서 많이 안 쓰는 모델이기도 해서 친구들이 핸드폰에 대해 물어보면 난 이렇게 대답했다. 예쁜 쓰레기라고. 예쁜 디자인과 유니크한 쿼티 패드를 제외하면 제대로 되는 게 없었으니깐.


영화 리뷰에서 갑자기 핸드폰 이야기가 왜 나오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애프터>를 보고 나서 그냥 생각났을 뿐이다. 외관은 예쁜데 실속은 없는 예쁜 쓰레기가.



2. <애프터>의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진부하다. "갓 대학에 입학한 테사(조세핀 랭포드)가 파티에서 하딘(히어로 파인즈 티핀)을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이 큰 플롯에는 물론 여러 곁다리가 달라붙는다. 가족관계, 성장 배경, 달달하면 지루하니깐 당연히 등장하는 갈등, 그 갈등을 초래하기 위한 몇 가지 무리수와 반전, 그리고 모두가 아는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그렇고 그런 엔딩. <애프터> 스토리에는 변수가 없다.


갈등을 불어 일으키는 요소는 너무나도 학생답고, 이별과 재결합을 마지막 20분 안에 쑤셔 넣다 보니 영화는 중후반부부터 개연성을 상실한다. 인물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덤이다. '왜'하고 '어떻게'가 없는데 '무엇'만 있는 꼴이니. 그나마 영화가 알려주지 않는 '왜? 어떻게?'를 고민하다 보면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진부한 스토리를 살리기 위한 그나마의 노력마저 처절하게 실패해 버렸다는 점이다.



3.  <애프터>는 포스터에서부터 <트와일라잇> 제작진의 작품임을 강조하면서 <트와일라잇>의 후광을 얻고자 노력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거둔 상업적인 성공을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은 일이다. 사실 다른 영화의 후광을 이용하는 것은 영화 홍보에 있어서 오래된 기법이기도 하다. 그 MCU조차 처음에는 <아이언 맨> 제작진이라는 타이틀로 홍보하곤 했으니까. 문제는, 이전 작품들의 단점까지 고스란히 끌고 온 제작진의 그 안일함이다.


<애프터>는 <트와일라잇>의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온다. 벨라가 엄마와 따로 살듯 테사는 아빠가 부재하고, 제이콥 대신 1살 어린 남자친구가 있다. 에드워드만큼 하딘도 완벽하다. 부자에, 잘 생기고 학교는 대충 다니는데 성적도 좋고, 오로지 여자친구만 바라보는 착한 남자. 벨라-에드워드와 테사-하딘, 이 커플들의 첫 만남은 악연이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비밀공간이 있는 것까지.


그나마 <트와일라잇>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최소한의 액션, 서스펜스, 그리고 그 당시로는 신선함을 갖춘 영화였다. 그럼에도 혹평을 면치 못했는데, <트와일라잇>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대목을 모조리 제거한 <애프터>의 제작진이 무슨 의도로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창의력의 부재인지, 제작 기간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이 설정들마저 너무나도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원형이 있어서 차마 수정할 수가 없었던 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4. 물론 변명을 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애프터>는 그간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이 전면에 보여주지 않은 19금 로맨스를 내세우면서 다른 작품들, <트와일라잇>로부터도 차별화를 시도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놓친 부분이 있다. 액션 영화에서도 액션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우선되어야 하듯이, 로맨스 영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트와일라잇> 리뷰에서는 나는 주인공들이 너무나도 전형적인 나머지 둘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그래서 로맨스 영화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었다.


벨라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감이 거의 없는 평범한 여주인공에 불과하고 에드워드는 정말 모든 것을 벨라에게 맞춰주는 완벽한 남자다. 그러니 둘 사이의 로맨스 전혀 흥미로운 구석이나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이 잘 해결될 테니.



<애프터>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테사와 하딘은 모범생과 날라리, 그 클리셰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배우들의 매력과는 별개로, 캐릭터들이 흥미롭지 않으니 그들이 뭘 하던 궁금할 리가 없다. 또한 사랑에 빠진 계기와 사랑하는 이유조차 분명치 않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로맨스에 2시간 동안 빠져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테사와 하딘의 애정씬은 보이는 것 이상의 감정적인 어필을 전혀 하지 못한다.


또 비슷한 지향점을 지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애프터>는 수위가 약하고 자극이 덜하기도 하다.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오면 흥행에 불리하니 수위를 조절한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인데, 결과적으로 <애프터>만의 개성과 차별점을 모두 없애버린 선택처럼 보인다.



5. 물론 이 영화, 팝콘 무비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낸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주인공인 두 배우 '조세핀 랭포드'와 '히어로 파인즈 티핀'의 비주얼만큼은 비슷한 분위기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우위에 있는 듯하다(물론 개인 취향이겠지만).


순간순간 인물들의 떨림을 잡아내는 미묘한 연출력도 분명 인상적이다. 테사와 하딘이 등장하는 씬들은 멋지고 아름다운 캠퍼스 커플이 되는 판타지를 시각적으로 충족시켜주기도 하고. 또 영화에 삽입된 OST나 영상미도 나무랄 데가 없다. 뮤직비디오처럼. 블랙베리 핸드폰 디자인처럼 순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끄는 영화의 외관은 그럴듯하다는 뜻이다. 그게 전부라서 문제지.



6. 영화를 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좋은 점을 최대한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블랙베리 폰을 쓰면서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꿋꿋이 되새기면서 애지중지 하던 것처럼. 하지만 가끔은 원칙을 위배하는 영화도 있기 마련이고, <애프터>가 바로 그 영화다. 이번엔 이미 봤으니 어쩔 수 없지만 속편이 나온다면 차라리 <트와일라잇> 시리즈 정주행을 선택하지 않을까.  



T(Troll, 트롤)

너무나도 안일해서 도태된 로맨스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함과 새로움, 둘 다 갖고 싶은 귀여운 욕심쟁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