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2> 리뷰
1. 평화로운 아렌델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엘사, 안나, 크리스토퍼, 올라프, 그리고 스벤. 어느 날 엘사는 의문의 목소리를 듣고 어릴 적 부모님이 들려준 마법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편 아렌델은 불, 물, 바람, 땅의 정령들에 의해서 위험에 빠지고, 고민에 빠진 엘사와 안나에게 트롤들은 이 모든 일들이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이에 엘사는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아렌델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안나는 그런 엘사를 지키기 위해 크리스토퍼, 올라프 그리고 스벤과 함께 다시 한번 모험에 나선다.
2. <겨울왕국 2>는 다르다. <겨울왕국>과는 완전히 반대다. 전편의 거대한 아성을 뛰어넘지 못할 바에야, 극히 일부의 핵심만 남겨둔 채 영화의 구조와 내용을 완전히 뒤엎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변화를 꾀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Some Things Never Change'와 'Into the Unknown'에서부터 <겨울왕국 2>는 자신의 변화를 암시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유지하면서도, 가지 않았던 길과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않겠다는 각오를 노래를 통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왕국 2>의 이번 노림수는 멋지게 적중했다.
우선 <겨울왕국 2>는 전편에서 선보인 각 캐릭터의 독립적인 서사를 완전히 비틀어 버린다. 전편에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마법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혼자의 힘으로 떨쳐냈던 엘사는 이번에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아란델을 떠났던 엘사를 찾아서 자매애를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문제를 해결했던 안나지만, 이번에는 엘사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는 데 실패한 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엘사의 마법 덕분에 생명을 얻었던 올라프도 엘사가 자신의 여정에서 실패를 겪자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잃는다. 안나와 함께 여정을 함께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크리스토퍼 또한 안나의 여정을 함께하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보낸다. 전편에서 해피엔딩이라는 결과 만들어냈던 주인공들이지만, 이번에는 완벽한 실패를 맛본다.
3. 인물들의 서사만 비튼 것이 아니다. 영화의 배경, 음악, 그리고 구조도 마찬가지다. <겨울왕국>이 제목에 걸맞게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겨울왕국 2>은 겨울이 아닌 가을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한 층 화려해지고 다채로워진 엘사의 마법을 제외하면 영화 중반부까지 그 어떤 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음악도 강렬한 후렴구는 없으나 각 캐릭터의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는 노래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Let It Go'나 'Do You Wanna Build a Snowman?'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을 자랑하는 노래는 없다. 영화 전체에 걸쳐서 다양한 장르의 ost들을 균형 있게 배치한 점이나, 전반부에 스토리를 주로 전개시키고 중후반부에 캐릭터들, 특히 엘사와 안나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전개도 전편과 전혀 다른 구조다.
4. 그 결과, <겨울왕국 2>는 스케일을 키우면서도 새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흔히 빠지는 속편의 저주를 영리하게 피해 간 것이다. 우선 <겨울왕국 2>는 배경을 눈과 겨울에 국한시키지 않고, 발전한 기술력을 토대로 파도, 초원, 숲 등 다양한 절경을 스크린에 펼쳐 놓으면서 새롭고 스케일이 커진 영상미를 뽐낸다. 한편 OST들은 후반부에 인물들의 감정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영화 구조의 도움을 받으며 좌절과 절망, 실망과 슬픔에 빠진 인물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다.
극심한 시련을 마주하는 주인공들의 묘사는 후반부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해 결말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동시에 이는 <겨울왕국 2>의 분위기가 무겁고 진중하며 장엄하기까지 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편이 사랑과 우정을 확인하는 낭만적이고 밝은 일반적인 동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주인공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보다 동화에서 현실로 한 발짝 내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라프의 맹활약도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밝게 만들지는 못한다.
또한 전편의 성공 요인들을 대부분 반대로 뒤집자, 몇 안 되는 전편의 유산이자 시리즈의 핵심은 더욱 큰 존재감을 뽐낸다. 부모님과 엘사, 안나 자매간의 관계, 아렌델의 숨은 과거, 엘사 마법의 원천 등의 복선들은 마치 속편을 미리 염두에 둔 것처럼 시리즈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준다. 신선한 전개로 호평받은 진취적인 여성상과 자매애는 불안함에서 비롯된 사랑의 재확인으로 한 층 깊어진 엘사와 안나의 관계, 그리고 강렬한 솔로곡들 덕분에 더 강렬하게 스크린에 구현된다.
5. 물론 <겨울왕국 2>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러닝타임이 짧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상당히 급하다. 그 결과 엘사와 안나가 난파된 배를 발견한 직후의 장면처럼 엘사와 안나의 감정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적지 않다. 음원으로 공개된 OST가 본편에 전부 수록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은 그리 크지 않다. 검증된 1편의 성공 방정식을 무리해서 쫓아가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지 시도에 그치지 않고 속편의 저주를 영리하게 피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까지 보여줬으니, 더더욱 만족스러울 수 밖 없다. 잘난 언니에 밀리지 않고 본인만의 정체성을 마음껏 뽐내는 훌륭한 속편, <겨울왕국 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