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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14. 2020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특별 전시회 후기

한국영상자료원 방문기

1.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의 1층은 한국영화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구성된 한국영화박물관은 한국 영화의 역사를 시대마다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영화사의 흐름과 견주어 비교할 수 있도록 세계 영화사의 주요 사건들도 함께 알려준다.


특히 한국영화박물관 기획 전시실은 다소 평범하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상설 전시와 달리, 특정 주제를 토대로 구성된다. 올해 10월 29일부터 내년 3월 22일까지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으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라는 제목의 한국 영화 검열의 역사에 대한 전시를 진행 중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사전 검열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설 전시보다 더 많은 관심이 갔고, 보다 더 깊은 사유가 가능했던 기회였다. 



2.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전시는 ‘영화사 초기부터 국가 권력은 영화 매체를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 설명과 관련되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전시 내용은 나운규 감독이 제작한 <아리랑>(1926)과 이만희 감독의 미개봉작 <휴일>(1968)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영화 <아리랑>은 일제 시대에 제작된 한국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이며,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양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할 때 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토록 민족주의적인 영화가 문화 통치기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개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바로 이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었기에 <아리랑>과 관련된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전시 내용에 따르면, <아리랑>이 제작될 당시 나운규 감독은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성을 올렸고, 투자 자본 중에는 일본인의 자본도 있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정보만 확인한 후 일제가 안일하게 검열을 한 결과 조선의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영화인 <아리랑>이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으면서도, 당시의 살벌했던 시대상을 조금이나 맛볼 수 있었던 전시 내용이었다.



3. 영화 <휴일>은 미개봉작으로 근래에 필름이 발견되었고, 올해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해 KBS에서 방영되었다. 1960년대, 민주화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다시 독재의 군홧발에 짓밟힌 시기, 춥고 황량한 서울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돈도, 직업도, 할 일도 없다. 인물들과 함께 서울 시내를 거니는 카메라는 어두운 서울과 무서운 시대상을 주인공 허욱(신성일)의 하루에 투영한다. 영화를 직접 본 직후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전시장에서 <휴일>에 대한 설명을 만나자 시대의 한계와 검열로 빛을 보지 못한 영화들이 유독 안타까웠다.


한편 한국영화가 과거와 달리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전시이기도 했다. 정치성향에 따라서 영화인들을 억압하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그리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사회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처럼 특정 영화를 향한 마녀 사냥 식의 평점 테러는 앞으로 제작될 영화들에 제한을 남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멀티플렉스의 등장 이후 독립 영화, 다양성 영화 등 상업적 이익이 작은 영화들의 입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대기업 중에 독립 영화 중에 투자 배급을 지속하던 CGV 아트 하우스는 최근에 독립영화 사업에서 발을 뺐고, <벌새>의 흥행 또한 <똥파리> 이후 10년 만에 간신히 등장한 신기록이다. 이처럼 간접적이고, 심지어 자발적인 형태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이 한국 영화의 현실이며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처럼 한국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서 배우고,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4.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쉽게 알기 어려운 한국 영화들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장소를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특히 상설 전시 내용 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시간 순서대로 구성된 전시도 특색이 느껴지지는 않고, 한국 영화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 영화의 제작, 배급, 비평과 같은 다양한 산업 구조를 조명할 수 있는 전시 내용도 함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전시는 분명히 인상 깊었다. 특히 영화 표현의 자유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제한되었고 어떻게 극복되어 왔는지, 그러한 시대상을 영화는 어떻게 표현해내면서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는지, 현실과 미래는 어떠할지 등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귀중한 기회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장소, 한국 영상 자료원이다.



한국 영화는 과연 모든 종류의 검열과 사전제재로부터 자유롭게, 창작자들이 원하는 대로 표현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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