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리뷰
1. 유복한 집안의 일원으로 태어나 편안한 삶을 영위하던 '재스퍼(제이슨 슈바츠만)'. 대충 시간을 낭비하는 재스퍼를 참다못한 아버지는 그를 북쪽 외딴곳에 위치한 시골 마을, 스미어렌스버그의 우체부로 파견한다. 그러나 재스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백 년간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두 가문으로 인해 엉망이 된 마을과 그로 인해 편지 보내는 사람이 없는 현실뿐. 그러던 어느 날, 재스퍼는 우연히 들린 한 오두막에서 '클라우스(J.K. 시몬스)'라는 이름의 노인이 만든 각종 장난감들을 발견하고 6천 통의 편지를 배달할 수 있는 계획을 떠올린다.
지금껏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동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동화를 패러디하고, 또 현재에 맞게 각색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디즈니의 <겨울왕국>과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시다. <겨울 왕국>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토대로 제작되었고, <슈렉> 시리즈 또한 윌리엄 스타이그의 동화책이 원작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직전에 넷플릭스가 공개한 <클라우스>도 마찬가지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산타클로스에 관한 여러 구전들을 한데 모아 재해석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2. <클라우스>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화를 원작으로 한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에도 산타클로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타가 왜 굴뚝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굳이 양말에 선물을 두는 이유는 뭔지, 우는 아이와 나쁜 아이에게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는지, 그리고 왜 하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지 등. 너무나도 당연해서 고민조차 안 해봤을 각각의 이야기들은 재스퍼와 클라우스의 여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서사로 이어진다.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사실 <클라우스>의 스토리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착실히 구현된,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로 구성된다. 하지만 남녀노소 모두의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한 재해석된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작중 인물들의 성장 및 변화와 적절히 어우러지면서 스토리의 약점을 가려준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들은 덤이다. 주로 악역들이 담당하는 유머들도 그들과 주인공들 간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무디게 만들며 <클라우스>의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강조한다.
3. 일견 한 편의 동화이자 소동극처럼 보이는 <클라우스>는 의외로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특히 작중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영화의 주제가 인상적인데, 그 중심에는 재스퍼와 클라우스가 있다. 영화는 두 캐릭터 간의 관계가 더 깊게 드러내기 위해서 둘을 완전히 상반된 인물로 묘사한다. 둘은 살아온 배경과 환경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며, 관심사도 다르다. 딱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데, 바로 서로를 만나 시점에 두 사람 모두 삶의 목표가 없다는 점이다.
재스퍼는 목표가 애초에 없다. 좋은 집안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굳이 목표를 가질 이유도 없었고, 따라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갈 필요도 없었다. 반면에 클라우스는 가족이라는 목적이 있었으나 잃어버린 후 은둔한다. 그리고 영화는 재스퍼와 클라우스의 우연한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목표를 잃은 두 인물이 어떻게 인생의 목표를 찾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무의미한 삶의 무력함과 상실의 아픔을 지닌 이들이 서로를 치유하고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낸 것으로, 둘의 관계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4. 그러나 영화 스토리의 중심이 재스퍼와 클라우스이기에 둘의 관계가 유독 두드러질 뿐, 재스퍼와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도 감동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엘바(라시다 존스)'다. 그녀는 학교 선생으로서 마을에 왔지만, 배우려는 아이들이 전무하고 대립과 반목만 넘치는 마을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도 재스퍼 덕분에 아이들을 다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원래 삶의 목적을 되찾는다.
또한 영화는 인생의 목표에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만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편지 6천 통 배달이라는 목표를 채운 후, 재스퍼는 본인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떠나려 한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변화한 사람들과 첫인상과 달리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마을의 모습에 그는 이내 마음을 돌린다. 이 대목은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드러나는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혼자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역으로 그들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삶이 진정으로 의미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박하고 치열한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고, 목표를 이루고도 방향을 잃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거나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괴로워하고 힘겨워하는 모두에게 <클라우스>는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따뜻한 위로나 다름없으며, 그래서 이 영화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동화다.
5. <클라우스>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작으로, <로마>, <결혼 이야기>, <아이리시 맨>처럼 시상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중 하나다. 물론 <클라우스>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지는 않았다. 넷플릭스 영화라는 약점도 있고 장편 애니메이션 부분은 미국 대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특히 픽사와 디즈니의 앞마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랭고>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제외한 모든 수상작들은 픽사 혹은 디즈니에서 제작한 영화들이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받지 못하고는 이 영화에게 중요한 의미가 아닐지도 모른다. 보이는 트로피가 없어도 <클라우스>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