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Feb 28. 2020

<젠틀맨>, 긴 예열 후 폭주하는 롤러코스터

<젠틀맨> 리뷰

1. 영국과 유럽의 마약 시장을 장악한 '믹키 앤더슨(매튜 맥커니히)'의 오른팔인 '레이먼드(찰리 허냄)'에게 사립탐정 '플레처(휴 그랜트)'가 찾아와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한다. 그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정보들을 알려줄 테니 자신의 고용주보다 더 큰돈을 달라는 것. 그 거래를 수락하도록 설득해보라는 레이먼드에게 플레처는 믹키 앤더슨의 과거부터 세력을 넓혀가며 앤더슨을 제거하려는 '드라이아이(헨리 골딩)의 계획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주로 악인 대 악인의 구도로 전개되는 피카레스크 장르는 안티히어로와 같은 악인이 범죄를 저지르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때 피카레스크 장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재미를 준다. 악인인 주인공에게 공감할 여지를 주는가 하면, 반대로 인물들을 하나의 말로 취급하며 그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피카레스크는 권선징악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범죄 영화와 결합될 수 있는 많은 장르들 중 하나이기도 한데,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젠틀맨>이 바로 그러한 영화다. 



2. <젠틀맨>은 영화 속 영화, 즉 이중 스토리의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액자 밖에서는 플레처와 레이먼드의 대화를 주고받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진짜 목적을 감춘 채 체스를 두듯 아는 정보를 보여주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이 스토리의 역할은 간단하다. 악인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영화 시나리오를 읽거나 스테이크를 굽듯 가볍게 다루면서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관련 있는 범죄들을 객관화시키기 위함이다. 살인, 납치, 마약 등 비도덕적인 내용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하나의 오락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셈이다. 


한편 액자 내부에서는 믹키 피어슨의 서사가 전개된다. 작중 피어슨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범죄의 세계인 '정글'에서 살아남은 만큼 그는 철저히 악한이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다만 영화는 그가 자수성가한 과정과 타의로 인해 내리막길을 타게 되는 계기를 그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제시하고, 그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를 만든다. 그 결과 이 영화의 액자식 구성은 피카레스크 장르의 특징을 영리하게 살려내면서 장르적인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3. 다만 영화가 예열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다소 긴 것은 흠이다. 영화 중후반부 재미를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판을 벌리기 전에, 영화는 믹키를 중심으로 각 인물의 과거사와 그들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들이 서로를 배신하고 이용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재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는 분명 필요한 장면이다. 문제는 모든 설명이 플레처의 입을 통해 일방적으로 긴 시간 동안 전달되다 보니 그동안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도 지루함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플레처와 레이먼드가 아웅다웅하는 개그가 중간중간 등장하고, 액자식 구성을 강조하는 연출과 편집 기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를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지워지지 않다 보니 효과적이지는 않다. 영화가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알리는 술집 씬으로 시작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는 총성 소리를 누가 냈는지, 또 맥주잔에 누구의 피가 튀었는지를 쉽게 알려주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는 그 답을 알기 위해서라도 지루한 설명을 듣게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열 과정을 거치고 나서 <젠틀맨>은 비로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다. 초반부의 지루하지만 충실한 설명 덕분에 정교한 플롯과 리듬감 넘치는 편집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쾌감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액자식 구성 덕분에 설명이나 묘사를 생략했다가 반전을 주기 용이한 것도 한 몫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후반부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호불호의 여지가 분명한 대목이다. 



4. 또한 캐릭터들이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몇몇을 제외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구조의 플롯과 영국 하류층 특유의 마초적인 분위기에 지배당한 채 본인들만의 특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비된다. 이는 <젠틀맨>이 인물들의 갈등 관계가 유발하는 재미가 중점이 되는 영화라서 더 부각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드라이아이는 아시아계 갱스터의 스테레오 타입이며, 로잘린드 또한 흔한 섹스 심벌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액자식 구조 중심에 위치한 레이먼드와 플레처 역시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믹키 피어슨 만이 매튜 맥커니히 배우 본인의 열연으로 카리스마를 뽐낸다.


다만 작중 갈등 구조에 매몰되지 않은 단 한 명, 콜린 파웰이 연기한 '코치'만은 예외다. 레이먼드가 약쟁이들을 교육하는 장면, 드라이아이가 본인의 은사를 배신하는 전개 등에서 알 수 있듯 <젠틀맨>은 마약을 매개로 한 신구세대의 헤게모니 다툼을 다룬 영화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코치는 다른 인물들과 차별화된 매력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젊은 세대들에게 범죄의 기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가르쳐주는 그는 신세대와 구세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유일하게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5. <젠틀맨>의 제작, 연출, 각본을 맡은 가이 리치 감독은 <알라딘>의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알라딘>은 국내외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지만, 가이 리치 감독의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디즈니 실사 영화라는 특성상 가이 리치 감독의 특징인 화려한 스토리텔링과 리듬감 넘치는 편집이 잘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 본인이 원하는 대로 만든 <젠틀맨>은 다르다. 맥주잔에 맥주가 차는 첫 장면의 편집, 속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의 영화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결말, 러닝 타임을 가득 채우는 거칠고 직설적인 영국 남성들의 매력만 보더라도 가이 리치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젠틀맨>은 그저 가이 리치 감독이 이끄는 데로 따라기만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물론 첫 30분을 견디기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A(Acceptable, 무난함) 

그저 예열 시간이 길 뿐, 요리는 잘하는 오븐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게임>, 드라마와 스릴러 사이 애매한 정체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