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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06. 2020

<벌룬>, 동독을 탈출해 낯선 길을 가는 풍선

<벌룬> 리뷰

1. 1979년 독일민주공화국(동독), '피터(프리드리히 머크)'와 그의 가족은 직접 만든 열기구를 타고 서독으로 탈출을 감행하나 불과 200m 차이로 실패한다. 추락한 열기구를 발견한 동독 정부는 탈출을 시도한 배반자를 잡아내기 위해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자이들 중령(토마스 크레취만)'을 중심으로 수사팀을 꾸린다. 더욱 철저한 감시망이 구축된 가운데,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피터는 친구인 '귄터(데이비드 크로스)'와 함께 가족들의 목숨이 달린 탈출 계획을 세운다.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삼는 상당 수의 영화들은 명확한 악역을 설정한다. 뚜렷한 갈등구도가 있을 때 관객들이 주인공의 여정에 공감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처벌받는 악역의 모습을 제시해 정의가 살아있다는 강력한 쾌감을 손쉽게 제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스토리텔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영화 속 한 개인을 향한 비판 혹은 비난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사회 부조리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냉전시기 동독을 배경으로 한 <벌룬>은 그래서 흥미로운 영화다. 다른 작품들이 흔히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벗어나서,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실화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2. <벌룬>은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이 영화는 특정한 개인을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다. 작중 손쉽게 악역으로 설정할 수 있었던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피터의 가족을 추적하는, 가장 악역에 가까운 자이들 중령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는 동독을 탈출하려는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는 열기구 잔해를 수색하는 국경수비대 군인들에게 피터의 가족이 얼마나 절실하기에 이렇게까지 하겠냐면서, 국경이 없으면 동독과 서독의 의미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주민들을 봉쇄하는 동독 시스템에 의문을 던진다. 


귄터의 아들인 피터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일하는 여교사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녀는 수업 중 피터의 말을 통해 귄터네 가족이 열기구를 만들고 있으며 탈출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하지만 당국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을 밀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이들 중령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피터의 신상을 보호하고, 귄터를 감싸면서 자이들 중령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이처럼 영화는 동독 정부 혹은 공산주의를 대변할 캐릭터를 내세우는 익숙한 길을 가지 않는다. 대신 동독 사람들의 인간적이고 선한 면모를 예상치 못한 타이밍마다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감시하고, 죽이게 만든 동독의 공산주의 시스템 그 자체를 비판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드러난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1976년부터 1988년까지 약 38,000명의 동독 시민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그들은 독일민주공화국에 의해 배반자로 낙인찍혔다"라는 자막은 모든 탈출 시도와 죽음의 과실과 책임이 동독 정부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3. 인물 간의 대립구도를 강조하지 않는 선택은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 강하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 사회의 부조리가 강조되다보니 그 시스템이 주는 위압감에 맞서 탈출하려는 주인공들의 동기, 그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이 잘 부각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목에서도 영화가 낯선 길을 간다는 점이다. 작중 피터와 귄터의 가족이 탈출을 하려는 동기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분명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들이 탈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 계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로 <벌룬>은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를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열기구를 만들고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만을 스크린에 담는다. 


대신 영화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곁눈질하는 동독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들이 처했을 상황, 사회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약국과 원단 가게 종업원은 손님을 고발하고 손님은 종업원을 의심하는 장면, 정부의 통제적인 정책으로 인해 개인의 일상이 모두 감시 가능한 기록으로 남는 장면들을 보다 보면 자유를 열망하는 그들의 동기는 자연히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인물들을 끝없이 짓누르는 억압적인 분위기는 주인공들이 겪는 감정을 더욱 강렬하고 생생하게 만든다. 탈출을 향한 열망, 터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초조함, 부모와 자녀로서 서로에게 갖는 죄책감과 아쉬움, 부모님을 동독에 두고 탈출해야만 하는 아들의 한까지. 영화는 이 모든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밤을 보내던 피터의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인데, 거듭되는 탈출 시도의 실패로 인해 위의 모든 감정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 중 하나다. 



4. 한편 몽타주와 교차 편집을 활용하는 <벌룬>의 편집 기법은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와 인물들의 감정선이 스크린을 넘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선 영화는 몽타주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영화는 국경수비대가 탈출하려는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학교 강당에서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들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노래에서 "우리 고향은 우리가 지켜주네"라는 가사가 나오는 순간, 이 장면들은 체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을 전부 죽여버리는 동독의 모순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장면으로 변한다. 


한편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은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일을 번갈아 보여주는 교차 편집을 통해 전달되는데, 작중 대표적인 시퀀스가 두 개 등장한다. 하나는 자이들 중령과 그 휘하 경찰들이 마지막 단서를 찾은 후 피터의 가족을 추적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 장면 사이사이에 열기구를 만드는 피터와 귄터 가족들의 모습을 삽입하면서 불안함, 초조함, 좌절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다른 하나는 피터와 귄터 가족이 열기구가 추락한 뒤 숲 속을 벗어나는 장면이다. 그들을 수색하는 국경수비대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이 장면은 주인공들이 얼마나 탈출을 꿈꿔왔는지를 강조하면서 영화 말미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5. 사실 <벌룬>을 다 보고 나면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다. 영화는 동독이 무너진 후 귄터가 동독에 두고 온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는 장면으로 끝나며, 이는 실화이기에 더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끌었던 tvn의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리정혁과 윤세리가 결국 스위스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벌룬>과 같은 결말이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마지막 감상을 끝내 안타까움으로 장식한다. 그렇기에 <벌룬>은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외적인 이유로 마지막 순간이 못내 아쉬운 영화다. 



A(Acceptable, 무난함)

이 땅에서는 아직도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하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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