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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03. 2020

<아즈카반의 죄수>, 두려움과 외로움을 딛고 일어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리뷰

1. 13살이 된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는 부모님 험담을 일삼는 마지 아줌마를 부풀어 오르게 만든 후 더즐리네 집을 떠나 '론(루퍼트 그린트)'과 '헤르미온느(엠마 왓슨)가 기다리는 호그와트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즈카반을 탈출한 악명 높은 살인자 '시리우스 블랙(개리 올드만)'을 잡기 위해 디멘터들이 배치된 호그와트는 이전과는 다른 곳이었고, 해리는 학교로 가던 기차와 퀴디치 경기 중에 거듭 디멘터들의 위협을 받는다. 이에 '루핀(데이빗 듈리스)' 교수로부터 디멘터를 무찌를 수 있는 패트로누스 마법을 배우던 해리는 시리우스 블랙이 부모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해리가 자신에게 그의 부모님이 열등한 유전자를 지녔다고 폭언을 퍼붓던 마지를 부풀게 만드는 해프닝으로 시작한다. 부모님을 향한 해리의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그의 상처를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동시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건을 경험할 해리가 부모님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한 단계 성장할 것임을 관객들에게 암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즈카반의 죄수>의 러닝타임은 해리가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가득한데, 그 중심에는 보가트, 디멘터, 그리고 시간 여행이라는 마법이 있다. 



2. 루핀 교수의 수업 시간에 처음 등장하는 보가트는 자신을 상대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변하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보가트는 모두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루핀 교수 앞에서는 보름달로 변하고 론 앞에서는 애크로맨투라(대형 거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보가트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보가트가 개인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구체적인 두려움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짚어주고 있다.


영화는 보가트가 등장할 때 항상 거울에 비친 각 인물들을 먼저 카메라에 담는다. 루핀의 수업 중에는 옷장에 달린 거울로 학생들을, 해리가 보가트를 이용해서 패트로누스 마법을 연습할 때는 큰 트렁크에 달린 거울을 이용해 해리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왜냐하면 보가트는 결국 각 개인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두려움을 비춰주는 거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중 보가트가 해리 앞에서 디멘터로 변한다는 것은 곧 디멘터만이 해리의 진정한 두려움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디멘터는 마법사 감옥인 아즈카반의 간수로 사람들의 모든 희망과 행복을 빨아들여서 가장 내면에 숨어있는 두려움과 공포만을 남기는 생물이다. 두려움이라는 추상적인 심리가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존재인 셈이다. 영화는 이러한 본질에 걸맞게 디멘터를 묘사한다. 촛불과 전등이 꺼지고 어둡고 명암이 강한 조명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는 창문, 안경, 호수 등의 모습에서 디멘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는 호러 영화를 보여주듯 영화 내외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동시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중 루핀 교수는 보가트 앞에서 디멘터를 떠올린 해리에게 "그 말은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두려움 그 자체란 거니까 말이야 "라며 현명하다고 칭찬을 건넨다. 그러나 해리가 디멘터를 두려워한다는 점은 사실 그가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가 디멘터를 두려워하는 데는 따로 이유가 있다. 그는 디멘터를 만날 때마다 자신을 지키려다 죽은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모든 행복이 사라졌을 때 해리는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혼자 남겨졌다는 뿌리 깊은 외로움을 다시금 마주하며, 이러한 외로움을 해리는 두려워한다. 이렇게 마지 더즐리와의 대화에서부터 드러난, 해리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을 영화는 해리포터 시리즈 특유의 존재인 보가트와 디멘터라는 존재에 투영시켜 스크린 위에 그려낸다.



4. 보가트와 디멘터를 이용해 해리의 내면을 보여준 뒤에, 영화는 그가 시간여행을 통해 보가트와 디멘터, 곧 내면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루핀 교수는 보가트를 무력화하는 최고의 방법이 마법이 아니라 웃음소리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두려움에 겁먹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마저도 새로운 시점에서 바라보고 이겨낼 때 진정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시간 여행은 해리에게 보가트를 무찌르는 것처럼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3시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 해리에게 헤르미온느는 그의 부모님이 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과거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3시간 동안 과거의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해리는 다른 가르침을 배운다. 그는 시리우스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와 자기 자신을 디멘터로부터 구해내면서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같은 과거라도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자각한다. 부재, 상실, 외로움의 이미지로 남았던 부모님의 기억이 "사랑하는 사람에겐 이별이 없어. 늘 곁에 있지"라는 시리우스의 말대로 자신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랑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해리는 스스로를 과거의 아픔에 가두지 않는 법을 체화한다. 


이는 해리가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라는 주문을 외치며 호그와트 호숫가에서 수많은 디멘터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루핀은 해리에게 디멘터를 막아낼 수 있는 패트로누스 마법을 가르치면서 이 마법을 사용하려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행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알려준다. 사실 해리에게는 디멘터를 이길 수 있을 만한 해복한 기억이 없다. 루핀과의 연습 중에도 해리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 여행을 통해서 해리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그 기억을 본인이 언제나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해리는 친구들과 호그와트라는 새로운 집도 지우지 못한 깊은 외로움, 곧 디멘터들을 극복한다.



5. <아즈카반의 죄수>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밝고 따뜻한, 아동용 판타지의 특징이 강한 전편들과 비교했을 때 특히 그렇다. 전편들은 해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사랑과 우정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해리의 모습을 강조하며, 원작 소설의 전개에 충실하다. 반면에 이 작품은 원작을 상당히 많이 각색하기도 했고, 해리의 불안정한 내면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전작들과 다른 분위기를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즈카반의 죄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정체성을 충실히 지켜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해리가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거듭나는 긴 성장담을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인데, 이 영화는 해리의 불안정한 사춘기를 보가트, 디멘터, 시간여행과 같은 소재를 활용해 온전한 성장담이자 온전한 판타지로서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리즈 중 가장 이질적인, 동시에 뛰어난 작품들 중 하나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원작을 뛰어넘은, 원작을 새로 쓴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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