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 리뷰
1. 열일곱 살 소녀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늙은 지주의 아들 '알렉산더(폴 힐턴)'에게 결혼이라는 명목 하에 팔려간다.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저택에서 하루하루 숨죽인 채 살아가던 캐서린은 어느 날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을 만난다. 그녀는 하인인데도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그를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비극을 간단히 표현하면 '완전히 선량하거나 정의롭지는 않은 주인공이 어떤 과실로 인해 행복을 누리다가 끝내 파멸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비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을 따르다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점점 커지는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다가 타락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이 연출한 <레이디 맥베스>(2017)에서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캐서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비극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며 욕망을 쫓은 한 여성이 파멸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2. <레이디 맥베스>는 저택이라는 한정된 장소 안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중 캐서린의 방, 응접실과 거실, 복도, 헛간 등의 장소들은 전부 그저 저택의 일부다. 이처럼 제한적인 배경은 영화 안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질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작중 모든 사건들, 인물들의 동선과 행동은 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흑인 하녀인 '안나(나오미 아키에)'는 아침마다 캐서린의 방 창문을 열고, 캐서린은 아침식사 후 항상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다. 영화는 한정된 장소와 반복적인 인물들의 생활을 같은 카메라 구도 안에 담으면서 저택의 질서가 얼마나 굳건한지를 강조한다.
이는 영화에서 예외적인 순간이 곧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캐서린의 비극은 그녀가 평소처럼 거실의 소파에 앉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연 후 산책을 나서고, 세바스티안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삶에 지쳐 있던 캐서린은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성적인 욕망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캐서린은 식탁을 마음껏 활보하는 고양이처럼 일견 평화로워 보이던 집의 질서를 깨버린다. 그녀의 옷차림은 더 이상 가지런하지 않고, 그녀의 잠옷은 방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다. 엉망진창이 된 식탁 위 식기들은 캐서린이 무너뜨린 저택의 질서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뛰어난 비극이란 인물의 내적 의지에서 비롯되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을 개연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모든 비극의 기초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말한다. 그렇기에 <레이디 맥베스>는 뛰어난 비극이다. 영화는 한 공간 안에서 정해진 질서를 반복해 보여주는 연출을 통해 캐서린의 행동으로 인한 변화의 양상을 극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이렇게 캐서린의 행복은 비극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3. 한 여성이 자신을 짓누르는 부조리와 억압에 맞서 자유를 갈구하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레이디 맥베스>는 비극의 필수적인 요소인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보는 이로 하여금 캐서린의 입장에서 비극에 빠져들게 만드는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동시에 영화는 자유를 갈망하는 캐서린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빼앗기는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더해 서사에 깊이를 더한다.
작중 캐서린의 욕망은 곧 자유를 향한 갈망의 표출이자 억압적인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17살 캐서린은 말 그대로 남편에게 '팔려온' 대상일 뿐이다. 그녀는 철저히 통제당하고 의지도 목적도 없는 삶을 살며, 여성으로서의 자존심마저 짓밟힌다. 이러한 캐서린의 모습은 이후 그녀가 자신에게 강제된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강박적으로 꿈꾸는 모습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연민을 자아낸다. 그리고 연민은 이내 공포로 바뀐다.
영화는 그녀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담보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캐서린은 흑인 노예라는 이유로 자신보다 더 무거운 억압에 시달리는 안나를 무시하고 이용하면서 그녀의 존엄성을 짓밟는다. 캐서린은 안나가 동물 취급을 받고, 말을 못 하는 지경이 되어도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한다. 이렇게 거듭되는 그녀의 악행은 그녀에 대한 연민을 그녀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예정된 불행에서 비롯된 공포로 전환시킨다. 이 공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동시에 작품을 결말짓는 데 큰 몫을 맡는다. 영화 말미에 그녀의 표정에서 전해지는 공허함은 이전의 공포에 대응하며 욕망만을 쫓은 결과로써 비극을 온전히 마무리한다.
4. 이처럼 캐서린의 비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인 만큼, <레이디 맥베스>에서는 캐서린의 극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플로렌스 퓨는 캐서린의 변화를 완벽에 가깝게 연기해냈다. 특히 유사한 구도가 반복되는 장면이 많은 영화 특성상, 비슷한 상황에서 그녀의 진가는 더욱 빛난다. 캐서린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는 씬은 작중 반복되는 장면들 중 하나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이 장면들에서 플로렌스 퓨는 캐서린을 사로잡고 있는 미묘하게 다른 공허함을 눈빛과 표정만으로 표현해내며, 왜 본인이 가장 주목받는 배우들 중 하나인지를 증명한다.
또한 캐서린은 플로렌스 퓨라는 배우에게 원래부터 잘 어울렸던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플로네스 퓨는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 역을 맡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는데, 에이미와 캐서린이 꽤나 유사한 캐릭터라는 사실이 그 근거다. 실제로 두 인물은 모두 욕망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필요한 경우에 충분히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한편 그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무표정할 때 느껴지는 다소 차갑고 오만한 분위기 역시 캐서린의 귀족 부인다운 특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5. 누군가에게 <레이디 맥베스>는 불편한 영화일 수 있다. 그 소재나 분위기가 도덕 혹은 윤리로부터 담을 쌓고 있으며,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놓치기 힘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비극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를 즐기거나, 플로렌스 퓨라는 배우의 매력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레이디 맥베스>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