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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17. 2020

<다크 워터스>, 책임의 주체를 샅샅이 파헤치다

<다크 워터스> 리뷰

1. 대기업 변호를 담당하는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롭 빌럿(마크 러팔로)'은 할머니의 지인인 '윌버(빌 캠프)'의 예상치 못한 의뢰를 거절한다. 그러나 윌버의 농장에서 거대 화학기업인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에 들어있는 C-8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들을 본 롭은 큰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조사 끝에 프라이팬, 렌즈, 아기 매트 등 독성물질이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한 사실을 깨달은 그는 아내인 '사라(앤 해서웨이)'와 동료인 '톰(팀 로빈스)'을 비롯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듀폰과의 싸움을 이어나간다. 


<스포트라이트>, <도가니>와 같은 사회고발 영화들은 확고한 목적을 지닌다. 이들은 관객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경각심을 일깨우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사회고발 영화의 목적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사건의 실상을 묘사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영화의 완성도가 미흡해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고, 토드 헤인즈 감독이 연출한 <다크 워터스>도 다르지 않다. 과거 테플론에 사용되었던 C-8이라는 유독성 화학물질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실화의 무게감을 온전히 전달하는 대가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일정 부분 잃어버렸다.  



2. <다크 워터스>는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서 기형아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원인을 기업이 제도적으로 은폐했던 충격적인 진실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수십 년의 시간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듀폰'이라는 기업이 어떻게 진실을 감추어왔는지를 상세히 묘사한다. 특히 이사회 회의와 증인 심문 장면은 이익에 눈이 멀었던 회장과 듀폰에서 근무했던 엔지니어들의 비윤리적인 판단과 공감능력의 부족, 그리고 무책임함을 부각한다.


영화는 누구한테 분노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일러준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들은 흔히 가해를 가한 기업 혹은 개인을 악역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듀폰만을 악역으로 몰지 않는다. 듀폰의 악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회 제도를 함께 도마 위에 올린다.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작동한다고 신뢰했던 사회 제도가 본질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듀폰과 롭이 법정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롭과 변호사들은 웨스트 버지니아 주 정부가 제도적으로는 흠결이 없는, 그러나 듀폰 주주들이 참여해 중립성이 훼손된 회의를 통해 수돗물의 C-8 함유량을 정했음을 밝혀낸다.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 자막에서도 아직 규제가 가해지지 않은 수많은 화학물질이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준다.


 

3. 동시에 <다크 워터스>는 기업들이 시스템을 악용하고, 정부가 이를 묵인하는 구조와 관행이 개개인의 무관심과 동조로 인해 가능했다고 일갈한다. 작중 일반 시민들은 테플론의 독성을 경고하는 롭과 피해자들을 비난한다. C-8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역학조사 중에도 많은 이들은 듀폰이 잘못된 일을 할리가 없다며 그들을 힐난한다. 사회의 안정을 무너뜨리며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는 윌버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과 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공격적이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듭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을 방조하는지 이야기한다.  


이에 롭은 울부짖는다. 우리는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시스템은 조작되어 있었고, 그들은 제도가 시민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그는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는 듀폰에 맞서 투쟁을 이어나갔고, 그 결과 현재 C-8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영화는 롭의 절규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사회를 신뢰하는 이들에게도 피해자를 만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혀서 조금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 모든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롭은 물론 그들 모두가 다 영웅이라고 말한다.  <다크 워터스>는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기 전 영화에 출연한 사건의 실제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짚어주면서 마지막까지 세상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일깨운다.


 

4. 기업, 사회, 시민들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상적인 메시지와 별개로 <다크 워터스>의 극적 완성도는 끝내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전문적인 내용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보를 뱉어내듯 전하는 장면들이 있고, 이는 작품의 접근성을 감소시킨다. 그나마 이 작품은 영리한 몽타주와 편집을 통해 PFOA와 C-8이 무엇인지 배워나가는 롭과 관객들의 처지를 같게 만들면서 무거운 실화가 영화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를 억누르는 최악의 상황만은 비켜나간다.


또한 롭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철저히 도구적으로 사용된다는 문제가 있다. 사건의 전말부터 일정 단계의 마무리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옮기기 위해 애쓰는 영화는 사건의 굵직한 반환점이 있는 연도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이처럼 긴 시간을 2시간의 러닝타임에 쑤셔 넣다 보니 필연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드라마가 빈약해지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라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롭의 상황에 맞춰 철저히 수동적인 역할로 등장한다. 격하게 싸우다가 다음 시퀀스에서는 갑자기 서로를 엄청나게 걱정하는 등 그녀의 감정선은 그저 작중 사건에 따라 요동칠 뿐이다. 이는 영화가 충격적인 실화 내용을 영화 안에 고스란히 옮기기 위해 욕심을 부린 것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다크 워터스>를 보고 나면 마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5. 2011년, 국내에서도 <다크 워터스>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속 유독 물질로 인한 피해 사례들이 공개되었고, 국민적인 공분이 일었다. 청문회에서 연루된 기업들은 작중 듀폰처럼 교묘한 수사를 구사하며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었다. 2020년 3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피해사실을 입증하고도 역학적 상관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3000여 명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개정안의 혜택을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크 워터스>는 마지막까지 싸워나갈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롭이 그랬던 것처럼, 시스템이 바로 잡아지는 그날까지 모두가 계속해서 감시하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A(Acceptable, 무난함)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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