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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02. 2020

넷플릭스 <스핀 아웃>,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법

넷플릭스 <스핀 아웃> 리뷰

1. 미래가 기대되던 유망주 '캣(카야 스코델라리오)'은 어느 날 프로그램을 점프에서 실수를 범하며 큰 부상을 당한다. 이후 쉽사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에게 '저스틴(에번 로더릭)의 코치인 '다샤(스베틀라나 에프로모바)는 그녀의 재능을 썩힐 수 없다며 자신이 지도하겠다고 제안한다. 단, 종목을 싱글에서 페어로 전향하고 자신의 지도를 충실히 따른다는 조건 하에. 조건을 받아들인 캣은 저스틴과 팀을 이루지만, 줄곧 그녀를 괴롭히던 조증과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로 인해 기량을 쉽사리 회복하지 못한다. 심지어 파트너인 저스틴과의 관계도 파트너십과 연애 감정 사이에서 꼬이는 등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문제들을 잠시 잊고 온전히 빙판 위의 자신을 마주한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는 "셀러브리티 섹션을 흥미진진하게 만들되, 풍부한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반드시 소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셀레브리티 기사가 과정에서 오는 감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명인들이 업적을 이루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줄 때 뉴스를 접하는 대중들은 각자의 삶 안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만 뉴스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정이 주는 감동을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은 뉴스 외의 영역에서도 유의미한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핀 아웃>이 대표적인 예시다. 올림픽에 도전하는 피겨 스케이터 캣의 이야기를 담은 이 스포츠 드라마는 알랭 드 보통의 제언을 간과한 나머지, 클린 프로그램을 연기하는 데 실패한다.


 


2. <스핀 아웃>의 초반부와 결말만큼은 이 작품이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한 듯 보인다. 우선 초반부 에피소드를 통해 드라마는 캣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어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대회 도중 점프 착지 실패로 인한 부상은 그녀에게 질긴 트라우마로 남아 버렸고, 이전부터 겪던 조증은 그녀의 운동 컨디션과 일상적인 삶을 방해한다. 이 모든 시련을 뚫고 피겨 선수의 경력을 이어가려는 그녀의 간절하고, 처절하며, 치열한 사투는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또한 올림픽을 위한 지역 선발전에서 그녀가 수행한 훌륭한 프로그램 연기는 그녀가 겪은 시련과 대비를 이루며 가슴을 울린다. 더 이상 피겨를 하지 못할 거라던 한 선수가 처음 접하는 종목을 도전해서 파트너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고, 훌륭한 점프 뒤 착지에 성공하며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며, 자신의 조증마저도 억지로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녀가 피겨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지막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갖은 역경들을 기어코 이겨내며 올림픽의 꿈을 이어나가는 열정과 노력으로 뭉친 피겨 선수는 "풍부한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임에 분명하고 그렇기에 감동을 선사하기에도 충분하다.


 


3.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이 설득력 있고 결말이 감동적인 것과 별개로, <스핀 아웃>은 그 과정에서 부족한 면을 드러내며 기대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특히 캣이 다시금 빙판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주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가 명확한 지향점 없이 묘사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드라마가 초반부에 제시한 피겨 선수로서 경험하는 캣의 어려움은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비중과 분량이 줄어든다. 대신 그녀가 엄마인 '캐롤(재뉴어리 존스)', 여동생 '세리나(윌로우 쉴즈)', 친구인 '마르쿠스(미첼 에드워즈)'와 '젠(어멘다 저우)', 스케이팅 파트인 저스틴과 겪는 수많은 갈등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그 결과 한 피겨 선수의 시련과 성장을 그려내야 하는 스포츠 드라마는 돌연 가족 드라마로 장르가 급변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캣과 캐롤의 관계다. 캐롤은 캣을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줄 딸이자 피겨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존재로 여긴다. 한편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스케이팅을 가르친 엄마 때문에 조증을 앓게 된 캣은 캐롤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남긴 악영향을 비판하며 엄마와 대립한다. 이처럼 애증으로 가득한 모녀관계는 드라마 초반만 하더라도 피겨 선수로서의 삶과 아이스링크를 떠난 피겨 선수의 삶의 의미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며 캣의 시련을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그러나 캐롤의 남자 친구가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흔한 멜로드라마 혹은 치정극 속에 등장하는 모녀 관계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며, 이러한 평면적인 전개는 스토리의 흡입력과 추진력을 상실한다. 



4. 더 나아가 불필요한 갈등 구도들은 의도와 달리 드라마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캐릭터 간의 갈등을 조성하려는 의도와 반대로, 그 결과가 자충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종차별과 관련된 부분이다. 드라마는 흑인인 마르쿠스와 중국계인 젠을 등장시키면서 흑인과 동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비판한다. 캣과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르쿠스는 많은 흑인들이 지니는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백인 경찰에 의해 과잉진압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바 있으며 그 이후로 경찰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갖는데, 이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연상케 한다. 한편 젠은 어릴 적부터 어떤 경우에도 포디움에서 캣보다 위에 서지 못해 깊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간직한 캐릭터다. 이는 인종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한 메타포나 다름없으며, 그렇기에 젠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애환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처럼 인종문제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현실을 작품 내에서 재현하는 데 그칠 뿐 그 이상의 발전된 논의로 확장되지 않는다. 백인 여성(캣) - 흑인 남성(마르쿠스) - 백인 남성(저스틴)의 삼각관계는 우연과 운명을 핑계 삼아 백인은 백인과, 흑인은 흑인과 이어지는 뻔한 결말로 정리된다. 또한 젠의 경우, 설사 그녀가 캣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백인 남성과의 사랑에 눈이 멀어서 우정을 내다 버리는 묘사는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키는 데 그친다.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해 조성된 다양한 갈등 구도들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특정 이미지 안에 고정시키는 실책을 저지르는 것이다. 



5.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젠더 이슈를 소비하는 방법 역시 세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스핀 아웃>은 캣을 비롯해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극을 전개하며,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여성들이 자신의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딛고 일어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의도와 달리 작중 여성들이 남성과의 관계에 과도할 정도로 종속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페어 스케이팅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만 하더라도 위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캣과 저스틴이 한 팀으로 발전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은 굳이 둘 간의 이성적인 관계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 20년 간 한 팀으로 활동하며 밴쿠버와 평창 동계 올림픽 아이스 댄스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테사 버츄/스캇 모이어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페어 스케이팅 혹은 아이스 댄스 선수들은 완벽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면서도 친구로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녀가 주종목을 변경하는 도전 끝에 재기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짜릿한 쾌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핀 아웃>이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은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 있다. 


<스핀 아웃>은 기본적으로 스포츠 드라마답게 결과보다는 선수들의 열정, 땀 노력이 가득한 과정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실제로도 마지막 에피소드 속 은반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캣의 모습은 그녀가 겪어온 시련 덕분에 더욱 환하게 빛이 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장르의 정체성을 잃은 점, 드라마 소재의 활용과 주제의식 간에 충돌이 발생해 감흥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한 점은 <스핀 아웃>이 보여주려고 했고 또 가장 필요로 했던 과정의 미덕을 놓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만큼은 확실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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