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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21. 2020

넷플릭스 <저주받은 소녀>, 의도에서 어긋난 스토리텔링

<저주받은 소녀> 리뷰

1. 요정 종족인 페이 족의 일원으로 정령들과 소통하며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힘을 타고난 소녀 '니무에(캐서린 랭포드)'. 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그 힘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어른들의 경계심에 둘러싸여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니무에는 마법의 힘을 없애려는 교단 레드 펠러딘이 자신의 마을을 습격해 수많은 동족을 학살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 참극을 피하지 못한 니무에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마법사 '멀린(구스타프 스카스가드)'에게 전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니무에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이루기 위해 우연히 만난 기사 '아서(데번 터렐)'와 함께 여정을 떠난다. 


7월 17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는 아서 왕 전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은 작품이다. 그간 진정한 왕에게만 부여되는 검 '엑스칼리버'의 존재, 멀린을 비롯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드루이드들의 등장, 가웨인, 랜슬롯, 퍼시발과 같은 기사들은 많은 영화들의 주요한 소재이거나 모티브였기 때문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킹 아서: 제왕의 검>,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그리고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시리즈 등의 근래 작품들도 아서 왕 전설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작품들이 멀린, 아서 왕, 혹은 그의 기사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달리 <저주받은 소녀>는 전설 속에 등장하나 가려져 있던 한 여인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2. <저주받은 소녀>의 주인공은 아서 전설에서 엑스칼리버를 건네주는 호수의 여인, 니무에다. 드라마는 그녀를 마녀로 소개하면서 전형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증이자 여성에 대한 공격에 맞서는 영웅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암흑의 신에게 저주받았다는 이유로 그녀는 자신의 동족인 페이 내에서도 배척받는가 하면,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페이 족을 학살하는 광신도 집단 레드 펠러딘에게 쫓긴다. 하지만 그녀는 늑대들과의 싸움을 비롯한 여러 역경을 딛고 일어서며, 아버지 멀린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페이 족의 여왕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마녀가 구원자가 되는 전개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중세 시대에 만연했던 마녀사냥의 종교적 속성을 영리하게 재해석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의 마녀 사냥은 여성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종교적 태도가 집단적으로 발산된 사건이다. 남성들이 장악한 가톨릭이라는 정통성 있는 권력(남성성)이 여성들을 통해 내려져 온 민중들의 마법과 주술 같은 비정통성(여성성)을 공격하고 탄압해 통일된 사회체계를 이룩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는 고대 근동과 유럽 종교에 등장하는 이슈타르와 아프로디테 같은 여신들처럼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저주받은 소녀>는 마녀라는 정체성이 내포하는 두 번째 종교적 여성성을 부각하면서 남성들의 것이었던 아서 왕 전설을 새롭게 풀어낸다.  


사실 신화를 여성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것은 낯선 시도가 아니다. 신화나 전설이 그 자체로 긴 시간 동안 여성에 대한 일반화되고 고정된 시각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해온 만큼, 그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합당한 자리를 찾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올 초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좋은 예시다. 모두가 아내를 잡지 못한 오르페우스의 비극에 집중할 때, 이 영화는 신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에우리디케의 시점을 조명하며 그녀와 영화 속 주인공들 간의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오르페우스 신화를 재해석한다.



3. 하지만 <저주받은 소녀>는 일반화된 여성성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지 못한 한계도 드러낸다. 종교학자 엘리아데가 "여성 성인식에는 태초의 사건, 즉 부족의 신성한 역사의 온전한 일부이며, 따라서 자연이 아니라 문화에 속하는 그런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흔히 남성은 사회와 문명을 상징하며 여성은 자연을 의미하는데, <저주받은 소녀>는 바로 이 고정관념을 답습한다. 


작중 니무에는 검에 깃든 힘이나 자신의 능력 등 본인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힘을 이용해 여러 위기 상황을 돌파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여왕으로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실책을 남발하고, 그로 인한 문제는 대부분 마법 혹은 그녀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힘 외에 사회적으로 학습한 능력을 이용해 인간과 페이 족 간의 분쟁을 조정하거나 레드 펠러딘의 공격을 막아내는 여왕으로서의 통치능력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 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히로인이라는 전형성을 탈피하고도 니무에라는 캐릭터는 고착화된 여성상을 반복하는 데 그쳐버린다. 페이 족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인 '이그레인(샬롬 브룬-프랭클린)'이 또 다른 마녀로 거듭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아쉬운 선택이다.


원전과의 차별화를 위한 각색 역시 여성주의를 내세운 드라마의 의도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한다. 니무에는 본래 멀린의 제자이자 그와 연인 관계에 있는 인물인데, 작중 니무에와 멀린은 부녀 관계로 등장한다. 이러한 각색은 니무에와 멀린의 서사를 풀어낼 때 그 애틋함과 비극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다채로운 갈등구도를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그녀를 본래 없었던 가부장적 구조 안에 굳이 밀어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긴다. 



4. 한편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원전에 변화를 준 것과 달리 <저주받은 소녀>는 여전히 여러 작품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중 교황의 친위부대는 그 역할이나 비주얼이 영화 <300>에 등장하는 임모탈 부대와 매우 비슷한데, 이는 드라마의 원작 그래픽 노블을 <300>의 원작자인 프랭크 밀러가 집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해변가에서의 전투씬의 경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 후드> 속 전투씬과 구도, 전개, 배경이 유사한데, 그만큼의 역동감이나 긴장감을 살리지는 못했다.   


특히 종교와 세속의 권력 투쟁이라는 작품의 갈등 구도는 <왕좌의 게임>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레드 펠러딘과 그들의 지도자인 카든 신부는 왕권도 무시한 채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심판한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 시즌 5와 6의 등장인물인 하이 스패로우와 그의 무장 교단을 연상시킨다. 각 교단의 지도자가 평민 출신에서 고위 성직자까지 올라왔다는 설정, 교단의 일원들이 이마 혹은 정수리에 교단의 상징을 새겨 넣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유달리 교단에 충실한 한 수녀가 스토리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역시 유사한 대목이다. 



5. 다시 말해서 <저주받은 소녀>는 장단점이 명확한 드라마다. 잘 알려진 신화의 이면을 구성하는 상상력과 이를 여성의 시각에서 풀어내는 현대적인 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인상적이다. 니무에를 비롯해 아서, 퍼시발, 랜슬롯, 멀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데 성공한 것도 다음 시즌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양한 주인공들을 여전히 여성의 자연적인 속성에 한정 짓는 전개나 다른 판타지 드라마 혹은 영화들과 크게 차별화된 대목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문제다. 따라서 <저주받은 소녀>는 스토리텔링이 야심 찬 기획 의도를 지탱해주지 못하는 미완의 판타지 드라마다. 



P(Poor, 형편없음)

첫 술에 배부르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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