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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21. 2019

범블비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가 피어난다

1. 영화 시리즈가 진행되다 보면 과포화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1편 이후 <트랜스포머>는 흥행에는 성공해도 숱한 악평을 받아왔고, <트랜스포머 5>는 심지어 흥행마저 실패했다. 중심점이 없는 플롯, 매력 없는 캐릭터, 노골적인 섹스어필, 절제를 모르는 유머, 과도한 PPL,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액션 시퀀스 등 <트랜스포머>는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가 피어나듯,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도 <범블비>는 탄생했다. 



2. 사실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1편은 충분히 열광할 만한 작품이었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관객, 특히 남성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스토리였다. <트랜스포머>는 차와 소년의 교감이라는, 샘과 범블비의 관계에 집중한다. '차'라는 존재가 등장한 이래로 지속된 남자들의 로망을 감각적인 영상과 웅장한 OST, 그리고 강렬한 액션으로 구현한 거의 최초의 영화였다. 두 번째는 정교하고 충격적인 CG다. 특히 차가 로봇으로 변할 때 차의 부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변신 장면은 누구나 인정하 수밖에 없는 명장면이었다. 이러한 1편의 장점들은 <범블비>에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된 형태로 오마주 한다. 



3. <범블비>는 역대 시리즈 중에 가장 스케일이 작은 영화다. 등장하는 로봇들은 다 합쳐서 5명 되지 않는다. 액션도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범블비의 크기 자체가(차가 작아지기도 했지만) 작기도 하다. 하지만 <범블비>는 이처럼 스케일을 줄인 대신 드라마를 쌓아 올리는데 집중한다. 


<범블비>의 드라마는 <트랜스포머> 1편과 같은 듯 보이나 또 다르다. 소년과 차의 교감은 소녀와 차의 교감으로 바뀌었고, 동시에 더욱 깊어졌다. 전쟁과 전투에서 패해 쫓기는 범블비를 위로해주고,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힘을 불어넣어 준 존재는 찰리다. 가정문제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다리는 찰리가 한 단계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존재는 범블비다. 가장 힘든 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와 같으 둘의 교감은 1편과 같은 웅장한 OST가 아니라 80년대의 서정적인 팝 음악으로 대변되며 <범블비>만의 독특한 감성의 결을 이룬다. 이처럼 <범블비>의 드라마는 둘의 교감을 중심으로 찰리의 일상고민과 범블비의 임무가 맞아 들어가면서 탄탄하게 완성된다.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후반부 액션 시퀀스다. 물론 이 시퀀스는 액션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완성시킨다는 점에서 뛰어난 시퀀스다. 찰리가 범블비를 구하는 장면처럼 각각의 씬들이 이처럼 깊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액션 시퀀스가 트랜스포머 영화에서 등장했다는 점은 사실 상당히 의외이고 놀라우며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 시리즈의 액션은 단지 도시를 철거하기 바빴던 것들이지만, <범블비>는 액션으로도 스토리텔링을 하는 발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트랜스포머> 1편의 또 다른 장점인 훌륭한 CG도 환성적으로 구현된다. 무엇보다도 '트랜스포머'라는 이름에 걸맞은 변신 장면이 차고에서 찰리와의 첫 만남부터 레이싱 시퀀스, 마지막 엔딩 시퀀스까지 1편처럼 세밀하고 다양하게 묘사되며 전편들이 번번이 놓쳤던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또한 작중 섹터 7의 등장, 엔딩을 장식하는 1972년 산 카마로처럼 1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범블비>는 환상적인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범블비>가 프리퀄, 스핀오프, 리부트의 성격을 모두 지닌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선택은 상당히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4. <범블비>는 기존 시리즈의 단점들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도 했다. 싸우는 대상조차 불분명하던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은 각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현실적인 액션으로 대체되었다. 범블비가 꿀벌침을 연상시키는 짧은 칼을 활용한 액션이라든가 현실의 무예 기술을 활용한 액션들이 그 예시다. 그렇다고 스케일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다. 초반부 사이버트론 전투 시쿼스처럼 기존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밀리지 않는 거대한 스케일도 보여준다. 


구분조차 못할 정도로 매력이 없던 오토봇과 디셉티콘은 그 숫자를 최소화해서 각 캐릭터의 비중을 확보했고, 입체적인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선보이는데도 성공한다. 무조건적인 미군 찬양은 성조기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취를 감췄으며, 무절제한 섹스어필과 유머도 사라졌다. 대신 그 빈자리는 끈끈한 가족애와 우정, 1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민들이 들어서며 찰리와 범블비를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를 더욱 다채롭게 꾸며준다. 



5. 물론 전체적인 스토리는 매우 평이하며, 성인들이 보기에는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오로지 말초적인 자극만 넘쳐났던 지난 시리즈들 덕분에 순수한 감성의 결을 가진 <범블비>는 어디서 많인 본듯한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시 한번 질주하는 카마로를 보며 피로한 눈과 아픈 귀가 아닌 흥분으로 가득한 심장박동을 느끼고 싶다면, <범블비>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영화다. 


A (Acceptable 무난함)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초심을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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