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rama D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y 11. 2021

<팔콘 앤 윈터 솔져>방패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일신하다

디즈니+ <팔콘 앤 윈터솔져>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타노스와의 결전 이후 친구이자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물려받은 '샘 윌슨/팔콘(앤서니 매키)'. 차마 캡틴 아메리카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그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방패를 기증하고, 미 공군과 협업해 세계 각지의 빌런들을 처리하며 지낸다. 한편 샘이 스티브의 후계자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실망한 '버키(세바스찬 스탠)'는 그와의 연락을 끊은 채 자신의 윈터 솔져 시절을 속죄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미 정부는 그간 뛰어난 공적을 세운 군인 '존 워커(와이엇 러셀)'를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임명하고, 전 세계적인 테러 조직 '플래그 스매셔'와 리더인 '칼리(에린 켈리먼)'의 처리를 그에게 맡긴다. 이에 당황한 팔콘은 분노한 윈터 솔져와 함께 방패를 되찾고 진정한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의 이름에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름부터 '아메리카'가 들어간 히어로가 정작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권력기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포로들을 구출하더니, 2편에서는 소속된 첩보 기관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3편에서는 UN의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2.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가장 미국적인 영웅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로 매우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해 놓을 만큼 개개인의 신념과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국가다. 따라서 그 어떤 권력과 사상이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굳건함은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방어용 무기인 방패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령 잘못되거나 소수의 의견으로 보이더라도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을 인도한다는 믿음은 그에게 있어서 70여 년 간 나치, 하이드라, 타노스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패였던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스티브 로저스가 대변하는 미국적 가치의 효용성과 정당성에 금이 갔다는 점이다. 끝내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루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스티브는 본질적으로 1940년대에 묶여있는 캐릭터다. 이는 지난날 자신의 악행과 과오를 되돌려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버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와 공적과 별개로, 과거에 속한 이들은 나날이 변화하는 2020년에 지켜야 할 가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를 스스로 무너뜨릴 뻔하고, 흑인과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터져 나오는 등 자유가 방종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인 스티브 로저스가 상징하는 가치는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어울리지 않는다. 



3. 그래서 <팔콘 앤 윈터 솔져>는 MCU의 두 번째 캡틴 아메리카로 스티브 로저스의 친우인 버키가 아니라 팔콘을 선택하고, 그가 방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두 측면에서 조명한다. 우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인종차별을 드라마 전면에 부각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이사야다. 스티브 로저스와 동일한 혈청을 맞고 한국 전쟁에서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이사야는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방패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방패는 흑인들이 흘린 땀과 피로 만들어졌으며 빛에 가려진 그림자로 존재하는 또 다른 미국의 역사, 어벤져스의 일원인 팔콘마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낮의 길거리에서 체포당하는 현실까지 보호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미국 정부에서 임명한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가 끝내 U.S. 에이전트에 만족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는 또 다른 스티브 로저스가 되고자 노력한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이자,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질 정도의 정의감을 지닌 그는 스티브의 유니폼을 입고, 그의 방패를 들고, 그처럼 혈청을 맞아 신체적으로도 강해진다. 그러나 이미 변화한 세상과 현재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명확한 과거의 상징을 쫓아기에 그의 노력은 헛되고, 그는 방패의 무게감에 짓눌려 자신을 망칠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등장인물의 서사를 통해 드라마는 방패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일상과 경험, 역사까지도 공유하는 히어로만이 새로운 시대에 진정으로 그 방패를 들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팔콘의 ost 제목이 'Lousiana Hero'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4. 그러면서도 팔콘이 억압받는 개인들을 어떻게 감싸 안는지를 면밀하게 제시하며 그가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주목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마치 팬데믹 때문에 현실에서도 개인들이 그러했듯이 하나같이 타노스가 남긴 혼란의 여파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당한다. 쉴드와 CIA를 거치며 국익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모두에게 잊히고 버려진 샤론 카터, 3개의 명예훈장을 받고도 군에 의해 장기짝처럼 조종당하고 소모품처럼 쫓겨나는 존 워커, 국제송환협의회(Global Repatriation Council)로부터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기는 난민들이 반발해 만든 빌런 집단 플래그 스매셔까지. 비록 타노스의 등장 그 이전에 겪은 일이지만 여전히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사야와 세뇌당한 상태에서 죽인 이들을 기억하며 악몽으로 밤을 지새우는 버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을 샘은 스티브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호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퇴역군인 심리상담사로 처음 등장했었던 샘은 좀처럼 현재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스티브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듯이 다른 이들도 지켜준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의 그림자에 짓눌리던 존 워커로 하여금 자신을 옥죄는 방패를 버리고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범죄의 온상인 도시 마드리푸어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샤론의 사면을 정부와 거래하며, 비록 방법은 정당하지 않았더라도 플래그 스매셔가 왜 폭력으로나마 자신들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준다. 더 나아가 버키가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도록 용기를 불어넣고, 스티브의 전시관 옆에 이사야에 대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오래된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팔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질들을 120%로 활용해 2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다.



5. 사실 <팔콘 앤 윈터 솔져>의 짜임새는 결코 뛰어나지 않다. 지난 시리즈에 비해 박진감이 덜한 액션씬, 일관성을 잃은 슈퍼 솔져 혈정의 설정, 카리스마가 다소 부족해진 듯한 윈터 솔져의 묘사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무엇보다도 빌런인 플래시 스매셔에 대한 묘사나 전개가 유난히 허술하다. 루머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래 플롯에 포함되었던 바이러스 공격이 삭제되었다고도 하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조차 빌런들의 목적에 어떤 당위성이 있는지, 어떻게 국제적인 테러 조직이 되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플래그 스매셔의 서사가 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당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플래그 스매셔의 목적과 당위성, 역사가 잘 드러날수록 샘이 플래그 스매셔의 취지를 옹호하는 선택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노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질서와 체제는 붕괴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샘 역시 5년간 먼지가 되었다가 돌아왔고, 그간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다른 인물들보다 플래그 스매셔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어떻게든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가 정의와 선함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데 큰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였으며, 드라마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팔콘 앤 윈터 솔져>라는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로 바뀌는 순간 벅차오르는 가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팔콘 앤 윈터 솔져>는 이미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그려낸다는 본래의 취지를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완벽히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종영 후 들려온 <캡틴 아메리카 4>의 제작 소식은 그 어떤 속편보다도 마블 팬들의 기대감을 키워 버린다.



A(Acceptable, 무난함)

과거와 현재의 무게가 깃든 방패를 들고 진중히 날아오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면 울리는 2> 이토록 깊고 다채로운 삼각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