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노 타임 투 다이> 리뷰
<007 카지노 로얄>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수십 년의 전통을 지닌 캐릭터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 왔다. 냉전이 끝나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스파이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가 상대할 시대에 맞는 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했다. 그래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는 적절한 답을 찾을 때면 호평을 받고, 그렇지 못할 때면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주식시장을 악용해 자본주의 질서를 망치려는 테러조직을 상대하거나(<카지노 로얄>), 국가의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 및 피해자의 역습에 맞서 과거를 성찰하고 새롭게 거듭난 본드는(<스카이폴>) 극찬을 받았다. 반면에 거대 비밀 조직 퀀텀과 스펙터와의 구시대적 대결 구도라는 첩보물의 클리셰를 답습한 <퀀텀 오브 솔러스>와 <스펙터>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007 시리즈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둘 중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편에서 애인인 마들렌과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기기로 결정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스파이가 다시 한번 영웅으로 복귀해야 하는 이유와 그의 퇴장까지 애정을 듬뿍 담아 성공적으로 제시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이때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포착한 시대의 변화는 '위기의 국가'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속 세상은 혼란스럽다. 본드의 코드네임 007을 물려받은 노미가 그에게 작금은 변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 변화가 혼란의 동의어로 보일 정도다. 테러리스트의 습격으로 빼앗긴 생화학 무기 '헤라클레스'를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MI6와 CIA가 강한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둘 중 누구도 해당 테러를 어둠 속에서 조종한 사핀의 정체와 목적을 파악하지 못한다. 감옥에 갇힌 전편의 빌런이자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트도 사핀이 어떻게 자신을 위협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M은 끊임없이 부하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찾고 사라진 정보를 복구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그조차도 자신이 지닌 힘과 권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모습을 숨기고 있는 새로운 적과 싸울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국가가 자신의 소관 밖에 있는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는 영화 속 세상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가 포착한 현대 사회의 알레고리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들은 공동 저서인 <위기의 국가>에서 국가가 권력의 상당 부분을 초국가적·전지구적 자본과 기술, 조직 등 국가 정치 기구의 소관 바깥에 있는 존재들에게 빼앗겼다고 말한다. 국가가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의 강력한 중재자, 경제 규제의 주체, 안전의 보장자로서 행동할 능력을 상실했고, 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의 부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혼란과 변화는 빌런인 사핀의 대사와 그가 탈취한 생화학 무기 '헤라클레스'의 묘사에서도 암시된다. 너나 나나 폭력을 쓰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일갈하는 본드에게 사핀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제거할 방법도 없이 DNA 정보를 이용해 정확히 개인이나 집단을 노릴 수 있는 자신의 방법이 더 깔끔하다고 답한다. 이 장면은 정체를 숨길뿐 아니라 평범한 모습으로 일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악과 본드와 첩보원으로 상징되는 국가가 주도권을 잃은 현실을 간단히 압축시켜 보여주기 때문에 특히 인상적이다. 또한 무기의 이름인 헤라클레스가 그 자체로 힘을 상징하는 영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MI6가 사핀에게 생화학 무기를 빼앗긴 것은, 국가 기관이 독점하던 권력과 힘이 사핀과 같은 개인 혹은 조직에게 넘어간 현실에 대한 비유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닌 장소에 위치한 그의 기지 역시 어떤 국가도 누가 중재자이고 적대자인지 알지 못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기는 제임스 본드가 내려놓았던 살인 번호를 다시 되찾고 영웅적인 활약을 선보이게 될 장을 마련한다. 두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정부와 정치 대신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사회보장을 담당하게 되었을 정도로까지 국가가 무능해졌"다. 그 결과 "시민에 빌붙어서 오로지 스스로의 생존에만 신경을 쓰는 ‘기생충’"이 되어버린 국가는 역으로 생존을 책임져 줄 시민, 곧 은퇴한 스파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CIA는 프리랜서가 된 본드를 MI6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작전에 투입시키려 하고, M 역시 전직 요원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며, 머니페니도 본드에게 위기 극복을 도와달라고 거듭 요청한다.
동시에 영화는 본드가 007로 복귀하게 되는 동기로써 국가의 보호막이 없는 시대에 개인이 마주해야 할 위험을 제시한다. 그 위험은 두 캐릭터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바로 블로펠드와 마들렌이다. 블로펠드를 만나 그와 그의 조직인 스펙터를 이용해 사핀을 찾는 데 활용하려던 본드는 역으로 자신을 이용해 스펙터를 무력화하려는 사핀의 음모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는 한 개인의 각종 정보와 존재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조종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암시한다.
한편 마들렌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위기를 간접적으로 비춘다. 호색한 스파이였던 본드는 마들렌과 함께 가족을 이루는데, 영화는 세계를 구해낸 스파이조차 가족을 지킬 도리가 없는 상황에 그를 던져 놓는다.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진 개개인의 삶을 사랑과 부성애를 매개로 직관적으로 전달하다 보니 본드와 마들렌의 멜로드라마는 예상보다 큰 비중과 많은 분량을 가져가고, 그만큼 진하고 애틋하다. 또한 본드의 든든한 동료였던 펠릭스와 본드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제목처럼 아직 국가와 영웅에게 희망을 갖는다는 점이다. 당장 본드만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테러리스트에게 추격당하자 앞뒤 재지 않고 MI6의 도움을 요청하며, 추격전에서 좌절을 맛본 후에는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던 나미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힘이 없는 개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면 결국 국가만이 비빌 언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깔끔한 방식이 많아진 세상에서 비록 힘과 통제력을 잃은 과거의 존재라고 해도 국가는 살아있는 동안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 보여야 하며, 이는 제임스 본드라는 한 영웅을 통해 이루어진다. 새로운 적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M의 모습처럼 본드 역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체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미션에 나서며, 그의 007 복귀는 자연히 보호라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한 줄기 희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영화는 시작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와 본드를 연결시킨다. 본드를 숱하게 죽음과 삶의 경계상에 위치시키며 하강과 상승의 운동을 반복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본드를 배와 함께 바다 아래로 가라앉힌다. 베스퍼의 묘지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후 그는 장례식을 알리는 종소리 아래에서 애스턴 마틴 DB5를 타고 가장 007스러운 카체이싱 액션을 이어간다. 수많은 테러리스트가 깔린 계단을 올라가며 그들과 처절하게 싸우고, 기어코 미션을 완수한다. 이렇게 본드를 하강시켜 위기에 처하게 하고 또 그가 위로 올라가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존재 가치를 잃어가는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상황도 환기시킨다.
이처럼 반복되는 연출은 영화가 더할 나위 없는 헌정사를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본드는 마들렌의 과거가 사핀이라는 위험을 만들어낸 것처럼, 과거의 영웅인 자신의 존재가 위험이 될 수 있기에 마들렌이라는 현재와 딸의 미래가 꽃필 수 있도록 퇴장을 선택한다. 이는 오프닝에서 서로의 과거를 태워야만 현재가 있을 수 있다는 본드와 마들렌의 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기에 본드가 마지막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에서 상술한 장면에 담긴 의미는 전복되고, 더 이상 삶을 의미하지 않는 본드의 상승은 그의 결연함과 비장함, 그리고 숭고함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본드의 의미와 상징, 진심이 완벽하게 전달된 결과 마지막까지 의연한 본드의 모습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시리즈의 마무리로 손색없다.
한 작품으로서 비교적 단단한 완성도 역시 영화에 담긴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고, 제임스 본드라는 한 인물에게 몰입해 그와의 작별을 고할 길을 적절히 터준다. 특히 근래 많은 작품이 선택하는 빠른 템포와 짧은 숏으로 구성된 액션 대신 본드의 등 뒤 시점에서 원테이크로 찍는 액션이 효과적이다. 마치 다양한 로케이션 현장에서 함께 싸우고 다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단지 액션을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드의 감정선까지도 따라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무기를 보여주면서 007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도 하고, 감독의 전작인 공포영화 <그것>처럼 서스펜스를 영리하게 조절하며 카 체이싱, 총격전, 맨몸 격투 등의 다양한 액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시리즈를 총정리하는 작품이라서 다루어야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왕도적인 첩보 영화 구조를 토대로 주인공들이 단계별로 단서를 추리하여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큰 비중을 두고, 불필요하다 싶은 장면은 모두 쳐내면서 담백하게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팔로마처럼 중간중간 새로운 캐릭터를 수혈해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도 일품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16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농축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늘어진다는 생각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빌런인 사핀은 가면을 벗고 영화 전면에 나서자 오히려 위압감과 카리스마를 잃기 시작한다. 최초의 계획을 이루고도 더 크고 위험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만 반복하며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 결과 뻔하고 익숙한 캐릭터는 단지 라미 말렉이라는 배우 개인의 존재감 외에는 큰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한다. 이에 더해 별다른 설명 없이 일본풍 소품이나 배경이 과하게 두드러지고 주인공들이 일본식으로 행동하는 장면도 순간적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추가적인 상황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일본계인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선택이든 일본을 배경으로 했던 1967년작 <007 두번 산다>의 오마주든 간에 극의 흐름과 동떨어진 간격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위의 단점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건네는 작별인사의 감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전 시리즈의 내용을 함축하고 영화 본편 내용을 암시하는 오프닝 시퀀스가 관객을 압도하는 가운데, 오프닝 시퀀스와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엔딩이 대구를 이루며 관객들을 영화 안에 가둬 버린 결과다. 오프닝은 사핀과 마들렌의 과거사와 베스퍼의 죽음부터 본드의 숱한 역경과 은퇴,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노리는 숙적 스펙터의 존재, 마지막 사랑인 마들렌에 이르기까지 4편에 달하는 전작의 내용을 한 데 압축시키며 감정적으로 휘몰아친다. 그런데 빌리 아일리쉬의 목소리가 더해진 007 특유의 오프닝 크레디트 이후 영화가 이미 나온 이야기들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에, 또 한 번 달라진 세상에서 본드가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 펼치는 사투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으로 강렬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제임스 본드는 돌아온다(James Bond will return)'는 자막을 스크린에 띄운다. 이미 007 시리즈가 시간 순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진행되는 상황인 만큼, 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닌 또 다른 제임스 본드가 등장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라는 암시일 수 있다. 또 할리우드이기에 그 외에 수많은 방법으로 제임스 본드를 다시 불러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제목과 달리 역설적으로 왜 본드가 멈춰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여섯 번째 제임스 본드는 또 다른 시대의 아이콘인 로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처럼 장중하고 심금을 울리는 작별 인사를 건넬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