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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Nov 11. 2021

<프렌치 디스패치>기자가 사는, 기자가 쓰는 삶에 대해

<프렌치 디스패치> 리뷰

*본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 블라제에서 다양한 사건을 가감 없이, 또 깊이 있게 담아낸 기사를 발행하던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매거진의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매거진의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 4명인 '새저랙(오웬 윌슨)', '베런슨(틸다 스윈튼)', '크레먼츠(프란시스 맥도먼드)', '라이트(제프리 라이트)'가 한 자리에 모인다. 아서의 유언대로 매거진의 폐간을 준비하던 이들은 그와 함께 고민하고 준비했던 4개의 특종을 마지막 발행본에 싣기로 결정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문라이트 킹덤>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을 연출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10번째 작품으로, 제74회 칸 영화제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 초대되는 등 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못지않은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기자로 분한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맥도먼드, 제프리 라이트는 잡지의 각 섹션을 맡아 자신들이 관찰한 세상을 보여주며, 화가와 그의 뮤즈가 된 베니시오 델 토로와 레아 세이두, 세상을 바꾸려는 대학생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등은 취재원이 되어 그들의 세상을 소개할 기회를 잡는다. 이에 더해 항상 독특하고 예술적인 영상미를 보여줬던 앤더슨 감독만의 디테일하고 다채로운 연출과 편집도 시선을 붙든다. 다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까? <프렌치 디스패치>는 정교하고 사랑스러운 앤더슨의 작법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물음표를 남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기본적으로 각 기자들의 내레이션을 따라 매거진을 함께 읽어가는 구성을 취한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의 간략한 인생사를 짚어주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4개의 특종 기사가 자리한다. 가장 지저분한 동네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자전거를 탄 기자 새저랙의 여행기로 시작하여 감옥에 갇힌 천재 화가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와 그의 교도관이자 뮤즈 '시몽(레아 세이두)', 그리고 미술 거래상 '카다지오(애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를 취재한 베런슨의 ‘콘크리트 걸작’ 기사가 그 뒤를 따른다. 세 번째는 마치 프랑스 68 혁명을 함축한 듯 보이는 학생 혁명을 이끄는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가 크레먼츠와 함께 혁명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이야기이고, 마지막으로는 라이트가 ‘경찰서장 전용 식당’의 유명 셰프 네스카피에를 취재하다 벌어진 범죄에 휘말린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실 이 이야기들은 얼핏 보기에 한 지면에 실려도 되나 싶을 만큼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관성을 부여한다. 우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기자와 작가의 정신이라는 테마 안에 각 이야기를 이어 붙인다. 작중 모든 기사의 끝은 편집장과 기자의 대화와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편집장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의 이야기는 기자가 가져야 할 열정, 곧 글을 만드는 작업에 내재한 긴장과 흥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 타인의 인생과 삶을 몇 개의 글자와 그림 안에 옮기는 일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삶을 옆에서 지켜본 기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작중 모든 기자는 끊임없이 내용을 더하거나 빼기 위해 타협을 거듭하고, 감탄도 마지막 순간을 위해 아껴둘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네 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 이는 왜 잡지를 구성하는 기자와 편집자가 그토록 무거운 책임감과 큰 고민을 안고 일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전혀 연관점이 없는 네 개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엄청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결국 모든 일의 시작은 개인의 삶을 향한 열망과 욕구, 삶에 대한 의지와 생명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각각의 기사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다”는 대사처럼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비밀인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여다본다는 공통점을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기자가 그 누구보다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비밀을 찾아내어 보고 듣고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 비밀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동네의 일상을 가볍게 담아내고 있는 듯한 기사 너머에는 산업화되고 자본화되어감에 따라 파편화되고 물질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감춰져 있다. 정신병원에 갇힌 화가의 이야기에서는 대중들과 괴리되고 수치화되어가는 예술에 대한 비판을, 혁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대학생들의 대의로부터는 그 대의를 움직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마지막으로 셰프의 이야기에서는 사회에 동화되고자 노력하는 소외되어 있는 이들의 분투와 동질감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전반적인 블랙 코미디이기에 새어 나오는 웃음 밑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몇몇 순간과 대사에서 숨겨지지 않는 그 존재감은 이 이야기들이 왜 한 편의 영화, 한 권의 잡지에 함께 실려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더 나아가 에필로그에 가서 뭉클함이 밀려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총합이 만들어내는 앙상블과 하모니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이러한 구성은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나 <파라다이스>를 읽은 듯한 아쉬움을 필연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다양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몇몇 개인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다. 작중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에게 주어진 공간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많은 인물들은 입체적이기보다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상징이자 하나의 체스 말처럼 묘사된다. 그러다 보니 미처 스크린에 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대사와 내레이션이 되어 그들 주위를 바쁘게 떠돌아다니고, 깊은 공감이나 통찰 내지는 감정적인 인상을 주지도 못한다. 그 결과 각 캐릭터의 온전한 사연을 독립적인 작품들로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다만 누가 보더라도 앤더슨의 영화구나 싶은 독특한 비주얼 덕분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미련과 아쉬움은 일정 부분 상쇄된다. 특히 제각각 내용과 주제에 걸맞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웨스 앤더슨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화면을 이분할해서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키는 유머가 한 숟갈 섞인 통찰력이라거나, 컬러와 흑백을 오가면서 한 예술가가 영감을 얻는 찰나와 그 영감의 결과를 다채로운 색감으로 완성해 전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영화 <페르세폴리스>를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이 삽입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또한 특유의 동화적 세계를 구축하고 전체 주제를 환기시키는 영화 전반의 이미지도 의미심장하다. 앤더슨은 대칭적인 화면 구성과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영화 속 공간을 깊이감 있게 구성함과 동시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의 세계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프렌치 디스패치>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작품은 메인 포스터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네모난 이미지를 활용해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가상의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꾸민다. 체스판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기도 하고, 네모반듯한 쪽지들이 파스텔 톤 벽에 열 맞춰 있는 편집장실의 모습이나 한 예술가의 역작을 담은 비행기의 내부가 네모난 칸으로 표현되는 것까지 영화는 네모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37:1의 화면비 역시 이러한 인상을 더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틀 덕분에 그 안에 갇혀있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움직임이 대비되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네모난 창문과 문, 계단과 방들로 가득한 신문사 건물의 내외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기자들의 작업방식을 훑는 오프닝 장면만 봐도 앤더슨이 성취한 시각적 요소와 리듬감 있는 스타일이 어떻게 영화의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항상 대중들에게 선택받아 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컬트적 인기라고 표현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더욱 환영받고 기대받는 반면, 일반 대중에게는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너무 뽐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도 마찬가지다. 전체 형식만 하더라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강연과 인터뷰 내용이 기사 내용이 되는 이중, 삼중의 구조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눈을 뗄 수 없는 현란한 기교이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산만하고 과하게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다. 수많은 스타 배우가 끝없이 등장하는 것도 한 작품 안에 너무 많은 내용과 상이한 스타일을 억지로 이어 붙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에 서 있게 만들기에,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모두의 시선을 붙잡을 진짜 슈퍼스타이자 화제작처럼 느껴진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눈에는 즐거움, 입꼬리에는 만연한 미소,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에는 끝내 아쉬움



*본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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