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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Nov 25. 2021

두 번째 기회라는 <엔칸토>의 마법

<엔칸토: 마법의 세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마법이 가득한 마을 ‘엔칸토’에는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즈)’만큼은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괴력이나 치유력 같은 힘을 지닌 가족과 달리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미라벨은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지만, 할머니 '아부엘라(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를 비롯한 가족들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평범한 자신이 오히려 가족과 엔칸토를 구할 마지막 희망일 것이라 생각하며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인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이 총망라된 영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가족'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키워드가 여전히 중심을 잡는 가운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과 넷플릭스의 <틱, 틱.. 붐!> 등을 제작하며 가장 핫한 뮤지컬 음악가로 떠오른 린-마누엘 미란다의 라틴풍 음악은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준다. 이에 더해 폴리네시아 문화를 녹여낸 <모아나>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뒤를 이어 콜롬비아의 마을 엔칸토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보편적인 감성에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그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를 재확인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 전형적인 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토피아>로 소수자와 약자의 정의와 진정한 역차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겨울왕국 2>에서는 노르웨이의 '알타 분쟁'을 재해석해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했던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답게 <엔칸토>도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칸토> 속 마법은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든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엔칸토>는 가족 중 본인만 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 아부엘라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중요한 일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이며, 가족이 아닌 이들로부터는 동정과 위로를 산다. 무엇보다도 능력의 유무가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또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미라벨의 아픔은 나날이 커져간다. 그래서 사촌동생인 안토니오가 능력을 받는 날 그녀는 실패로 끝났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동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은 안토니오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함께 끼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절정에 달하고, 엔칸토의 마법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때 미라벨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로 사진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과거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와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이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디테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작중 사진기는 현실 속 인스타그램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이전까지의 SNS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텍스트가 아닌 사진과 짧은 영상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문제는 사진과 이미지에 가득 담긴 자랑거리나 화려함이 여과 없이 전달되다 보니, 절망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들이 열등감과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그 화려함이 마치 마드리갈 가족에게 주어진 능력처럼 우연 혹은 선천적인 이유로 가능한 것이라면, 인스타그램을 보는 이들은 미라벨처럼 더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접점은 결국 <엔칸토>가 미라벨을 통해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라벨의 깊은 좌절감을 보여준 후, 영화가 일반적인 전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엔칸토>는 미라벨을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숨은 능력을 찾기 위한 여정에 떠나보내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매개로 다른 가족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이를 통해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이들도 능력이 없는 미라벨 못지않게 깊은 흉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라벨의 두 언니인 루이사와 이사벨라는 자신의 솔로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누구보다도 강한 괴력의 소유자인 루이사는 마을의 모든 사람을 돕고 다가오는 그 어떠한 위험도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기대에 지쳐가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이사벨라는 설령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한다 해도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영화는 미라벨의 입을 빌려 이러한 가족들의 상처가 엔칸토를 만든 마법을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러운 침략자들의 공격으로 인해 살던 집을 잃고 남편인 페드로와 사별해야 했던 그녀는 항상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받아야만 하고, 그 능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이 낳은 기대와 의무감 때문에 능력을 받지 못한 이는 무시당하고, 능력이 있는 이들도 실패해해서는 안 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진다고 미라벨은 말한다. 또 능력이 없는 자신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할머니에게 과도한 부담이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억누르는 사이 공동체의 유대, 곧 마드리갈 가족의 유대와 가족을 감싸고 있던 마법의 힘이 무너진 것이라고도 항변한다. 



사실 미라벨의 지적과 항변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보이고 들리지는 않는다. 미라벨과 두 언니의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따르면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실패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불안증, 강박적 완벽주의, 취약한 자부심"에 시달린다. 한편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은 "극심한 사기 저하와 함께, '나는 실패자야'라는 굴욕감"에 시달린다. 전자가 미라벨의 두 언니라면 후자는 미라벨이라 볼 수 있고, 이 경우 세 자매가 속한 마드리갈 가족은 결국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나 다름없다. 즉, <엔칸토>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쟁 체제와 이를 지탱하는 담론인 능력주의, 그로부터 배제되어 분노한 이들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이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한 작품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엔칸토>는 실패한 이들을 위한 재도전의 기회와 서로 다른 개인 간의 연대 의식과 책임이라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라벨의 삼촌인 예언자 브루노가 있다. 불길한 예언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의 미래를 잘못 보면서 할머니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가족과 마을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처럼 가족 내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미라벨을 만난 후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잡기로 결정하고, 미라벨의 조력자가 되어 마법이 약해지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다른 이들의 모습도 비춘다. 미라벨에게 능력을 얻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다시금 위기에 처한 마드리갈 가족이 그간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역으로 도움을 받으며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왜 <엔칸토>에서 미라벨이 집과 엔칸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지, 왜 다른 디즈니 작품 속 주인공과 달리 여정을 떠나 성장하는 원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지 않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미라벨의 할아버지가 침략자들에게 맞서다가 사망했을 때 할머니는 주어진 마법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엔칸토라는 마을과 그 마을을 만든 마법은 자체로 두 번째 기회다. 따라서 미라벨이 마주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모두 엔칸토 안에 있다. 그래서 엔칸토에 깃든 마법과 그 마법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단순한 시청각적 즐거움보다 더 깊고 큰 감흥과 통찰, 더 나아가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 


물론 <엔칸토>가 결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마드리갈 가족에 속한 인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각 능력의 조합이 보여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 뮤지컬 애니메이션인데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 결국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암시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디즈니스러운 결말이 내포한 근본적인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거나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충분한, 어쩌면 충분함 이상의 위로를 건네는 디즈니다운 매력이 가득한 우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함)

배제당하거나 완벽해지는 것에 이골이 난 모두를 위한 두 번째 기회의 땅, 엔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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