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틱, 틱... 붐!>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루 가필드)'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8년 간 준비한 뮤지컬의 워크숍을 앞두고 마지막 작곡 작업에 몰두한다. 그런데 서른 번째 생일과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십)',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의 모습을 한 수많은 사건은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틱틱(tick, tick...)'거리는 시계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가운데 존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은 천재 뮤지컬 제작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린-마누엘 미란다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렌트>로 잘 알려진 조너던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 <틱틱붐>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1인극으로 만들어졌다가 라슨의 죽음 이후 3인극으로 각색되어 관객에게 공개된 바 있는 이 록뮤지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미란다 감독의 영화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존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정감 있고 심플한 발라드와 빠르고 직선적인 선율이 흐르는 록 음악의 만남에서는 청춘의 목소리만이 지닐 수 있는 남다른 호소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틱, 틱... 붐!>의 매력은 음악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보이듯 끊임없는 시계 소리가 존을 시간의 압박 속에 던져놓는 가운데 그 압박에 대처하는 존의 이야기는 음악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의 감동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영화는 존의 일상 속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이라는 시계 소리를 보여준다. 존이 애써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불현듯이 현실을 일깨우는 연체된 공과금 고지서가 대표적이다. 이 고지서는 'Sunday'라는 제목의 넘버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노래는 더 빨리 음료와 음식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손님들의 제스처와 카운터의 소란, 레스토랑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예약 전화가 울리는 벨소리의 압박을 유머스럽고 판타지스럽게 풀어낸다. 달리 말해 존의 일상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간의 압박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실제로 마이클의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시간의 압력과 지각의 위험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
이에 더해 존의 대인관계도 시계의 강박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현대 무용가인 여자친구 수전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댄스 학교로부터 강사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그녀는 어찌해야 할 찌 깊은 고민에 빠지고, 존에게도 그의 의견을 알려달라며 뮤지컬 워크숍 공연 외에 또 다른 기한을 존의 캘린더에 추가한다. 또한 사랑만큼이나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의 문제마저 존을 더 옥죄어 온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프레디가 응급실에 응원해 생사의 기로에 서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배우와 뮤지컬 제작자의 꿈을 공유해왔던 절친 마이클이 에이즈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계의 강박에 시달리며 피폐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지속과 포기 사이에 선 존의 커리어 역시 시계 소리에 에워싸여 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인 존은 아직 작곡조차 다 마무리하지 못한 자신의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성취와 견주며 심한 좌절과 절망감을 맛본다. 이러한 존의 모습은 마치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자신의 나이를 비교하며 좌절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다. 그러다 보니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인 존도 내심 배우였다가 경력을 포기하고 잘 나가는 광고 마케터로서의 삶을 누리는 마이클을 부러워한다. 마이클의 아파트와 자신의 집을 비교하는 'No More'이라는 노래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보잘것없는지 그 처절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때 일상, 대인관계, 그리고 커리어까지 시계 소리에 의해 통제되는 존의 삶은 결코 낯설지 않으며 남일 같지 않다. 이미 현대인의 일상과 우리의 삶도 인간 본연의 생체 리듬과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춘 시간이 아닌 시계가 정의한 시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시계 밖의 시간>의 작가인 제이 그리피스에 따르면 시계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시계 시간'은 철저히 만들어진 개념이다. 산업화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노동력을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시계가 적극 활용되었고, 그 결과 시계가 정밀해지고 시계 소리가 자주 들리면 들릴수록 사람들의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전적인 예술가와 안정된 회사원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에게 시계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관객 입장에서도 그의 삶을 옥죄는 수많은 기한과 마감은 자연히 각자의 아침을 깨우고 스케줄을 일깨우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존의 예술가로서의 도전, 열정, 그리고 노력에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존의 귓가에 스치는 시계 소리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하며,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이의 바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노래에는 시계의 권력에 종속되기를 거부한 채 보헤미안으로서 자유로이 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절실한 소망이 가득하다. 이는 뮤지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악상을 떠올리는 수영장에서의 노래, 뮤지컬의 여주인공인 '카레사(바네사 허진스)'과 현실 속 여자친구인 수전이 같이 부르며 삶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노래, 무력함과 외로움이 극에 달해 홀로 무대에서 부르는 넘버까지도 모두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다.
이처럼 시계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채워나가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서른 번째 생일을 대하는 존의 태도 변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생일이 그저 엄청난 부담감을 간기는 마감 기한일 뿐이었다면, 영화의 끝에서 마주하는 생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다. 존 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모인 특별한 순간이자, "시계를 멈춰. 시간을 잡아"라고 말하는 첫 노래 가사의 내용을 직접 실천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워크숍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덕분에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대신, 늘 그랬듯이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작곡을 해야 하는 존의 인생을 보여주는 전개 역시 인상적이다. 기계적인 시간과 기한에 맞춘 작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그 끝 이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자고 말하며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조너던 라슨의 뮤지컬을 영상화한 <틱. 틱... 붐!>은 그와 동시에 전기 영화이기도 하며, 그러다 보니 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때 시계 소리에 시달리던 존이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이야기에는 더 큰 힘이 실린다. 라슨은 자신의 이름을 브로드웨이에 알린 뮤지컬 <렌트>의 초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은 그를 시간에 종속시키는 한계가 될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작품들은 시간을 초월해 지금까지도 멋진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라슨의 인생은 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틱. 틱... 붐!>은 언제나 우리 귀를 괴롭히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며 누리자고 노래한다. 그 소망과 메시지 덕분에 <틱. 틱... 붐!>은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건져 올린 수작이자, 동시에 유독 뮤지컬 영화가 많은 올해 초겨울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뮤지컬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