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꿰뚫다
1. 사회와 개인 간의 관계는 치열한 논쟁을 유발하는 오래된 주제다. 개인이 사회에 종속되는지, 사회를 이루는 주체인지, 사회가 개인을 타자화하는지 등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근래에는 사회가 여러 개의 체계로 분화되어 사회 내에서 이 체계들이 상호작용하며 개인들의 역할을 결정짓는 '괴물'이나 다름없다는 견해도 등장한 바 있다. 2015년에 개봉한 <빅쇼트>는 대공황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경제위기였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로, 현대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무력해진 개인을 발견하고 시스템 내부를 살아갈 삶의 자세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2. <빅쇼트>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러다 보니 경제와 금융 관련 전문용어로 가득하고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영화의 내용을 요약해 볼 수는 있다. <빅쇼트>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모기지를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은행들, 이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정책 당국,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상품 평가를 게을리 한 신용평가 회사들의 환상적 콜라보의 결과였음을 폭로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며 부동산과 금융이라는 영역에서 배제당하고 '사기당했다'고도 지적한다.
개인들인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구조의 문제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펀드 매니저와 같은 금융 전문가들이었고,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구조적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는 현대사회가 각 기능적 영역으로 분화되었기에 발생한 문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금융 시스템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능'에만 집중한 나머지 금융체계의 영향을 받는 복지, 교육 같은 다른 사회 체계들과 월 스트리트에 종사하거나 의지하는 개인들의 삶에는 무신경했고, 그 결과 세계 경제는 지금까지도 그 여파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사실 <빅쇼트>는 이 사태로 인해 처벌받은 사람이 사실상 없고, 은행들은 같은 상품을 다른 이름으로 다시 판매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로 끝맺는다. 이러한 결말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본질적 문제를 다시 일깨워준다. 금융기관의 리더(개인)들에게 분명 죄는 있겠지만, 그들도 이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빅쇼트>는 속절없이 집을 빼앗기고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각 개인을 보여주면 현대사회라는 괴물이 각 개인을 집어삼키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작중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제언하기도 한다.
3. <빅쇼트>의 주인공들은 경제위기의 전조를 알아차린 소수의 전문가들이다. 사실 이 영화는 주연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분량이나 비중이 엇비슷한데, 이는 영화가 특정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빅쇼트>는 주인공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이들이 세계 경제가 파탄날 것을 알고도 원인 해결보다는 이익을 위해 그 실패 가능성에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던 브래드 피트의 "벤 리커트"는 동업자들에게 독설을 하는 장면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전직 금융 전문가였던 그는 동업자들에게 그들이 번 돈이 누군가의 연금이자 안식처인 집일 수도 있었다면서, 인생이 무너진 이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기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가 기능적 영역으로 분화되면서 개인의 기본권과 사회의 도덕성이 전체적으로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 <빅쇼트>는 이러한 현실을 살아갈 삶의 자세에 대한 힌트도 제시한다. 영화는 개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중 펀드 매니저로 세계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점에 투자했던 "마크 바움"은 그 대가로 큰돈을 벌었지만, 마지막까지 돈을 벌지 말지 고민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이러한 경제적 붕괴를 알고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스스로의 삶의 자세를 반성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마찬가지로 무책임했던 모든 개인들의 자세를 비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월가를 점령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행동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비록 배는 떠났지만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시스템이 자신들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4. <빅쇼트>는 이러한 무겁고 어두우며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 소재,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일반 영화들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일반 영화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최대한 감정 이입해 극 중 인물들에게 '공감'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비해, <빅쇼트>는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못하도록 만들며 관객들이 외부에서 영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영화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실제로 <빅쇼트>의 등장인물들은 이른바 4차원의 벽을 넘어서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그들의 이기심과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호흡을 맞췄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유사한 연출 방식인데, 이 작품 역시 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등장인물들이 직접 관객들에게 전해주곤 했다는 점에서 <빅쇼트>는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 내지 패러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카메라는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초점의 변화를 심하게 가져간다. 흔들리는 카메라 초점과 줌 인과 아웃을 오가는 촬영 방식, 이 숏들을 빠르게 이어 붙이는 편집, 아이러니컬한 블랙 유머와 욕설 가득한 대사들... 우리는 이 영화에 도저히 감정 이입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전문적인 경제 및 금융 용어들의 설명을 도와주는 특급 카메오의 존재도 영화적 효과는 다르지 않다. 이들은 설명을 위해 등장하는 만큼(당연히) 관객들에게 직접 말하고, 이는 영화의 호흡을 정리하면서 감정선을 끊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영화의 형식적 특징으로 인해 <빅 쇼트>는 사건의 본질을 간파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냉소적이고 객관적인 태도의 유머로 담아내는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고, 블랙 코미디로서의 진가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생소한 소재와 형식으로 인한 막연한 거리감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쓰디쓴 냉소와 함께 여러 생각이 어지럽게 뇌리를 스치며 <빅쇼트>를 감상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