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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11. 2019

타이타닉

바다를 가로지르는 <오만과 편견>

1. 배가 두 동강이 났다. 갑판 아래로부터 차가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공기 중에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비명소리와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음악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고, 갑판은 돌연 미식 축구장처럼 몸싸움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돈도, 협박도, 욕설도 질서를 부여하지 못하는 아비규환. 이 아비규환 속에서 '극적으로' 명예, 고결함,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는 의인들의 품격과 아름다움. 반대로 그러지 못한 이들의 속물스러움과 추잡함. 제임스 카메론의 눈에 보인 '타이타닉'은 인간 이성과 본성의 대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 기본적으로 <타이타닉>은 드라마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선남선녀의 로맨스고, 많은 이들의 욕구가 투영된 판타지이고, 슬픈 마무리를 보여주는 비극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패턴이며, 따라서 감정이입의 여지도 많다. 또한 <타이타닉>은 자수성가형 남자 주인공이 상류층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얻어내는 이야기로 할리우드 로맨스의 전통을 유지하는, 남성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다.



다만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로즈"라는 캐릭터가 사회의 관습을 파괴하고 거부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부분에서 <타이타닉>은 관습과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로즈는 계층 차이를 크게 개의치 않으며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자각한 인물로, 그의 특징은 로즈의 어머니와 약혼자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상류층 인물을 형성 및 연출하는 방식과의 대조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환기된다. 이는 여성들의 잠재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목이며, 개인적으로 메리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실제로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 10대 관객들의 반복 관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잭"을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모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타이타닉>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다이아몬드 탐사정의 모습, 작중 타이타닉 침몰 원인 시뮬레이션 등의 묘사와 실제 배와 비슷한 수준의 세트를 짓고 재개봉할 때 잘못된 별자리까지 수정하는 등의 노력을 보면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적 요소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강렬한 이미지로 느끼도록 하며, 그렇기에 잭과 로즈의 로맨스에 더욱 큰 무게감을 부여하며 비극성을 강조한다.



3.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각색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 사건 그대로를 영화화할 경우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적어질 수도 있으며, 감독에 따라 사건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대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이타닉>에서 카메론 감독은 2가지 요소에 주목한 듯하다. 하나는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상류층의 비인간적인 자세다.


<타이타닉>은 타이타닉 호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영화는 세계 최대의,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배라는 점을 주변 인물들의 대사, 배의 운행상황을 잡아주는 숏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거듭 환기시킨다. 이는 타이타닉의 기술력을 믿고 구명정을 적게 배치해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는 광경, 배가 빙산과 부딪히고 무력하게 침몰하는 과정 등과 대비를 이룬다. 맹신에 가까웠던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산산조각 내는 것은 물론이다. 카메론 감독의 다른 작품들 <터미네이터>나 <아바타> 등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는 감독 본인의 의견이기도 할 것이다.


<타이타닉>은 로즈의 어머니와 약혼자 같은 상류층 인물들을 양심도 없고, 비도덕적이며, 속물스러운 인물들이고 배가 넘어가는 와중에서도 자신들의 목숨만을 챙기거나 계층 차이를 드러내는 식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타이타닉의 선장 및 몇몇 선원들, 4중주 연주자들은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서도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면서 강한 대조를 이루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도 제공한다.  살아남기 위한 본성과 살리기 위한 이성의 대결인 셈이다. 현재 시점의 한국에서는 유독 가슴 아픈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4. 광대한 바다의 웅장한 선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원경의 와이드 샷, 로즈와 잭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주는 클로즈 업 샷, 인물들의 셔레이드와 사건을 대하는 영화의 담담하고 품격 있는 태도 등 <타이타닉>은 모법적인 화법을 지닌 영화다. 이러한 화법은 모범적이기에 관객들을 안정적으로 휘어잡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뭔가 특출 난 측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타이타닉>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거듭 회자되는 고전이며, 그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판타지/히어로/SF/액션 영화들이 <타이타닉>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에 전자의 장점을 지닌 영화임이 분명하고, 고전미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E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정말 다 좋은데 단지 로맨스가 취향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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