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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05. 2019

아르고

첩보 영화의 형식과 도상을 부수다

1.  특정 장르의 영화는 내리티브 상의 공통점과 도상적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공유하곤 한다. 예를 들어, 판타지 영화들은 선과 악의 대립 끝에 선이 악을 해치우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사랑과 우정의 가치를 깨닫는 식의 내러티브적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다양한 크리쳐, 마법, 그리고 중세시대 복장과 건축 등 보이는 것과 관련된 도상적 측면에서의 공통점도 나타난다. 이는 <반지의 제왕>이 판타지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가지 공통점을 모두 갖는 장르 영화는 관습적인 작품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규칙에서 벗어났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평을 듣곤 한다. 벤 애플랙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아르고>는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전형을 파괴한 '참신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을 받기도 했다.

2. <아르고>의 가장 큰 트징은 관습적인 스토리와 낯선 도상이다. <아르고>의 스토리는 전형적이고 규칙적이며 예상이 가능하다. 첩보 스릴러 영화이니 우선 첩보 요원과 인질 구출작전이 등장한다. 관련된 분야의 에이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창의적인 계획을 제시한다. 이 계획을 통해 주인공은 여러 역경을 뚫어내고 목표를 달성한다. 주인공의 개인사적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되는 것은 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스토리의 창의성을 제한할 뿐이다. 그렇기에 스토리적인 면만 놓고 보면 다른 첩보 영화 대신 <아르고>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대신 <아르고>는 도상적인 측면에서 관습을 파괴했다. <아르고>에는 CIA가 등장하고 배경인 이란은 혁명이 발생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작중 액션이나 총격씬은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웨스턴 영화에서 카우보이가 양복을 입고 다니거나, 재난 영화에서 랜드마크가 파괴되는 묘사가 없는 수준의 놀라운 선택이다. 근래 첩보 영화들의 액션이 더 화려해지고, 액션씬이 극의 전개 상 결정적인 씬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르고>는 편집을 통해 낯선 도상적 특징을 강조하고 영화의 서스펜스를 조성하는데 성공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퀀스가 테헤란 시장과 공항에서 펼쳐지는 시퀀스다. 시장에서 이란 사람들과 주인공들의 눈빛과 표정을 빠르게 오가는 씬들과 적극적으로 삽입된 낯선 이란어의 활용은 관객과 극중 인물들의 입장 차이를 심화시킨다. 그 결과 영화는 자연스럽게 극도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공항 시퀀스는 CIA 본부와 공항을 오가는 씬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불안과 우려를 극대화하는 편집을 보여준다. 총과 액션이 없어도 인물들과 공간의 편집만으로도 첩보 영화라는 장르에 맞는 서스펜스를 조성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아르고>는 뻔한 재료가 훌륭한 셰프와 색다른 레시피를 만나 먹음직스럽게 태어난 요리나 다름 없다.



3.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만 <아르고>가 실화를 충실히 따라간 영화는 아니다. 실제로 탈출 작전의 경우 취소된 적이 없기도 한데, 이렇게 실화를 무시하면서도 <아르고>는 실제 과거 영상들을 계속 삽입해서 이 스토리가 실제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작품의 메시지에 힘을 싫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60여명의 대사관 직원이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도 CIA는 6명의 실종된 직원들도 포기하지 않고 본국으로 송환시키고자 한다. 계획의 성공가능성과 CIA 내부 사정이 겹쳐서 계획이 취소되었을 때도, 주인공 '토니 맨데스'의 입을 빌려서 영화는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며 작전 실행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메시지이고, (어떤 면에서) 미국적이기까지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리 당연하지만은 않은 메시지라는 생각도 든다.



4. 하지만 이러한 <아르고>의 메시지작위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느낌도 있다.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습격은 카터 정부 당시 발생했는데, 이는 미국이 이란의 혁명을 쫓겨난 '샤'를 받아주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당시 카터 정부는 도덕과 인권을 강조한 외교노선을 강조했고 그 결과 이란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인질로 붙잡혀 있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강경 외교 노선을 내세운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서야 간신히 석방되기도 했다. 따라서 '아르고' 작전은 작전 그 자체로는 성공일지 몰라도, 거시적인 범위에서 보면 캐나다 정부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카터 정부의 실책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르고>는 민주당 정부였던 카터 정부의 실책이나 공화당 정부인 레이건 정부의 외교 정책 성과를 거의 안급하지 않는다. 실화를 다루는 작품임에도 전체적인 배경과 결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의문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억측일수도 있지만) 감독과 제작진이 모두(할리우드는 본래 민주당을 지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것이 영화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일까. 아르고는 분명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형식을 지닌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정이 가는 영화는 아니다.


A (Acceptable 무난함)

평범한 재료도 셰프를 잘 만나면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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