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y 04. 2019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복수심과 불편함의 그래프

1.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생존과 복수는 동의어나 다름없다. 복수를 원하는 사람은 생존해야만 하고, 생존한 사람은 복수를 원하기 때문이다. 생존으로서의 복수는 그 동기가 곧 목적이고, 그래서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쾌감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복수의 행위자는 과정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어떻게 생각하든, 철저히 그의 주관적 상황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타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철저히 바라보는 영화인 <시카리오>는 처절하고, 숨 막히고 당혹스러운 영화다.



2. <시카리오>는 극의 서사적 주인공과 시점 상의 주인공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지닌다. 작 중 서사적으로 가장 비중이 높은 캐릭터는 '알레한드로'다. 하지만 그의 행적은 '케이트'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소설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편하다. 이러한 스토리 진행과 전달 시점의 이원화는 <시카리오>의 소재인 '복수'의 양면, 곧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타인이 하면 불륜이 모습을 감성적으로 메마른 맥락에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봤을 때 우선 '케이트'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는 극 중 사건 전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알레한드로'가 속한 집단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철저한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케이트'의 시점을 자신들의 시점과 완전히 일치시킨다. '케이트'를 제외한 타 캐릭터들의 동기와 성격이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관객들에게 전혀 주어지지 않으므로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작품의 전개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히 영화의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3. 두 주인공의 대립에서 야기되는 <시카리오>의 기본적인 분위기는 의심과 낯설음이다. 이는 카메라가 전적으로 케이트의 시점에서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켜주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의 광활한 사막과 광야다. 존재만으로도 이국적인 이러한 자연 배경은 사막 특유의 고요함과 그 고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심장박동 소리를 닮은 사운드와 만나면서 영화의 내러티브가 펼쳐지기 이전에 관객들로 하여금 감각적으로 서스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자연 배경과 사운드의 효과는 영화 중/후반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도 해당되는 대목이다.  각각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제로 다크 서티>를 연상시키는 이 시퀀스들은, 차로 가득한 도로/해가 진 사막과 같은 공간적 배경과 별다른 음악 없이 스크린 속 사운드만으로 낯선 다수 속 파편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극대화된 긴장감을 전달하는 장면들이다. 이처럼 <시카리오>의 모든 구성요소는 케이트의 외롭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극대화하며 이를 관객들이 수용하게 만드는 데에 효과적인 도구들이다.



4. <시카리오>는 분명 복수극이다. 구체적으로는 가족을 잃은 남자의 지독한 복수극이다. 하지만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짜릿한 복수극은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결말부처럼, 복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진한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불편함과 죄책감은 작 중 결말부에서 극대화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 채 축구를 하러 가는 아들과 그 배경으로 깔리는 갱들의 총소리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복수극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결말은 알레한드로의 복수 과정에서 희생되는 개인들과 CIA의 작전 중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관객들에게 거듭 환기시키면서 중대한 국제적/사회적/윤리적 질문에 빠뜨린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더 큰 선(善)을 위해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타인의 목숨을 파리처럼 다루는 것이 과연 국제질서 상, 그리고 윤리적으로 합당하고 옳은 것일까?"
"국제질서에서 도덕과 윤리가 갖는 비중이나 의미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복수라는 것, 그 시발점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이 피해자만 거듭 생겨나는 사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결국 <시카리오>는 알레한드로의 복수극을 통해 알레한드로와 아빠를 잃은 어린아이의 비극의 시작점과 그 책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E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생존과 복수가 낳는 원칙과 정의의 유린

매거진의 이전글 엑스맨: 아포칼립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