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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08. 2019

엑스맨: 아포칼립스

추억을 연상시키거나, 시대착오적이거나

1. <엑스맨>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는 방식은 인종, 성별, 성 정체성, 난민 등 모든 집단에서 온건하거나(찰스/프로페서 X) 과격한(에릭/매그니토) 형태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두 방식 사이에서 선악을 나누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과연 찰스가 선이고 에릭이 악인가. 마틴 루터 킹이 옳고 말콤 X는 틀렸는가.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은 옳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듯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소수자 집단이 지배적인 사회에 맞서 살아가는 방식을 비교적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는 것은 <엑스맨> 시리즈만의 고유함이자 이 시리즈가 다른 영화들보다 사회적인 히어로 영화로써 기능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엑스맨>의 전체적 내러티브의 전개에는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가 감독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엑스맨: 최후의 전쟁>, <더 울버린>, <엑스맨의 탄생: 울버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중에서 매튜 본의 <퍼스트 클래스>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악평에 직면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다만 싱어 감독 버전의 엑스맨은 에릭, 찰스, 울버린에게 너무 많은 비중이 몰려 있으며 히어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액션의 분량이 적다는 것, 그리고 원작 팬 한정으로 원작의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이러한 <엑스맨> 시리즈만의 장단점이 극대화된, 그렇기에 호불호 역시 극단적으로 나뉠 영화다.



2. 작중 차별받는 돌연변이의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전작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결말에서 암시된 부분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모든 일이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돌연변이들의 사회적 위치 또한 마찬가지다.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전작에서 보였던 돌연변이에 대한 공공연하고 노골적인 증오와 적대는 사라진, 그러나 여전히 별이 만연한 사회와 이로 인해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돌연변이들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실상을 가장 잘 부여주는 캐릭터가 에릭/매그니토다. 가정을 이루고 안착했던 그는 돌연변이를 향한 인간들의 적대감이 발현되자 다시 한번 빌런으로 각성하며, 덕분에 역사 속에서 각인된 돌연변이의 불안한 심리는 스크린에 효과적으로 펼쳐진다. 이렇듯 <아포칼립스>는 <엑스맨> 시리즈의 장점을 일정부분 재현한다.


문제는 이러한 에릭의 스토리가 영화에 진부함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아포칼립스>는 시리즈의 6번째 영화인데(스핀오프를 모두 제외하더라도), 6번씩이나 에릭과 찰스가 대립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사상 및 논리가 항상 도돌이표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작용인 셈이다. 물론 작중 에릭의 감정이나 행위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으며, 특히 감정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단지 에릭과 찰스가 <데오퓨>에서 화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또 대립하고 다시 화해하는 지겹고 식상한 묘사가 반복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3. 더 심각한 것은 에릭/매그니토의 서사가 '아포칼립스'의 서사마저 침해하며 전체적인 영화의 서스펜스를 해친다는 점이다. 에릭의 비중으로 인해 그를 제외한 나머지 포 호스맨에 대한 설명이 줄어들면서 영화의 개연성이 무너지고(특히 엔젤과 사일록) 영화 후반부에는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는 장면들을 대부분 에릭이 만들어내다 보니 스토리 상 아포칼립스의 영향력과 능력을 관객들은 체감하기 힘들다. 이는 전작의 빌런인 '센티넬'이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무력함과 공포심을 잘 심어준 것과 '오스카 아이작'이라는 배우의 이름값을 감안했을 때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뛰어난 히어로 영화에는 항상 인상적인 빌런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다크나이트>의 조커, <어벤져스>의 로키 등) 악역이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지니 영화의 긴장감도 살아나지 못하고 흡입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아포칼립스와 에릭이 동행하는 서사는 <엑스맨> 시리즈의 전통을 파괴하기도 한다. 사실 에릭은 시리즈 내내 선과 악이 모호한 인물로 찰스와 때로는 대립각을 이루고 때로는 협력한다. 이러한 그의 예측 불가능한 면모는 <엑스맨> 시리즈만의 재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에서는 아포칼립스라는 절대 악의 등장으로 선악의 구도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이 아닌 (모호한) 선과 악 중의 선택이라는 <엑스맨> 시리즈의 핵심적인 메타포가 사라지고, 영화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줄어든다. 이처럼 <아포칼립스>의 전체적인 플롯은 시리즈 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부족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4. 한편 빌런인 아포칼립스가 실망스러운 것에 비해 기존 캐릭터들이나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등 엑스맨 측의 인물들은 인상적이다. <아포칼립스>에서는 우리가 알던 <엑스맨> 1편에 등장하는 바로 그 돌연변이로 성장해 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리즈를 본 팬들이라면 꽤나 흥미로울 부분이다. 진과 싸이클롭스의 만남, 스톰의 과거, 조금 일찍 등장한 나이트크롤러, 진과 울버린의 만남, 기존 등장인물인 퀵실버, 미스틱, 찰스의 내적 성장까지. 모든 캐릭터들은 각자의 서사를 부여 받고 그 안에서 변화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이전까지 받은 특정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비판을 본 작과 다음 시리즈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문제는 한 작품 내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새롭게 등장하며 심지어 이들의 사연을 하나씩 전부 설명하다 보니 극이 속도가 붙지 않고 늘어지는 것이 문제다. <아포칼립스>에서 나름의 비중을 부여받아 활약하는 캐릭터들은 합쳐서 10명이 넘어가는데, 그들 간의 관계 형성 및 감정 구축과 같은 자비에 영재학교 관련 에피소드가 너무 많다 보니 아포칼립스의 등장이나 포 호스맨의 각성 같은 씬들은 그 사이의 텀이 너무 길어서 영화의 긴장감을 전혀 조성하지 못한다.



5. 여기에 더해 지난 시리즈들에서 본 듯 익숙한 액션씬들(퀵실버나 매그니토)은 예전과 같은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다. 또한 번개를 쏘든 광선을 쏘든 다 비슷비슷한 형태의 정적인 액션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사실 <아포칼립스>에서 작중 액션씬만큼 심심한 장면도 없다. 반면에 울버린이 등장할 때만큼은 영화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박진감과 육체적인 힘이 느껴지면서 액션이 살아나기도 한다. 이는 <아포칼립스>가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한 액션 연출에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포칼립스>는 영화의 특정 대목에서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그리고 극명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존 브라이언 싱어 버전의 엑스맨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포칼립스>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데오퓨> 이후 새로운 미래가 보이지 않아 진부하다고 느끼거나, <엑스맨> 1,2 속 캐릭터들의 과거가 등장하는 오마주로 보이거나.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찰스와 에릭이 끝없이 대립하고 언제나 울버린이 고통받는 그런 과거의 엑스맨은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따라서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시대착오적인, 도전이 부족하고 익숙한 재현에 그친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P(Poor, 형편없음)

변화의 타이밍이 왔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곧 개봉할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직면한 과제도 <아포칼립스>와 다르지 않다. 같은 갈등 구도, 같은 캐릭터, 같은 철학적 논리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감독과 함께 새로운 엑스맨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피닉스'라는 소재 자체도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한 차례 사용한 것이기에 자칫 재탕에 그칠 위험도 있다. 다만 예고편이 공개된 현시점까지,  <다크 피닉스>도 과제를 잘 해낸 영화는 아닌 듯싶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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