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게임> & <틱, 틱... 붐!>
2021년 4월 19일, 밤을 새워가며 유럽 축구 중계를 챙겨보던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친숙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를 포함한 유럽의 빅클럽 12팀이 모여 현재 유럽 축구의 최상위 리그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를 대체하는 새로운 최상위 대회, ‘슈퍼리그(ESL, European Super League)’의 출범을 알렸기 때문이죠.
슈퍼리그에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이 약 46억 파운드(약 7조 2,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알려졌었죠. 덕분에 UCL 우승 상금(약 254억 원)의 10배가 넘는 상금과 팀당 4,000억 원의 참여비와 영구적인 리그 출장이 보장됐습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재정 타격을 입은 구단들의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했죠. 또 빅클럽 간의 수준 높은 대결은 축구보다 게임에 관심이 많은 젊은 팬들을 유입할 플랫폼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이유가 없는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슈퍼리그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출범 2일 만에 좌초되었습니다. 단지 슈퍼리그에 참여한 각 구단의 팬들과 선수들만 반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유럽의 정치권도 반대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SL이 축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고, 잉글랜드축구협회 회장인 윌리엄 왕세손도 "축구 커뮤니티 전체와 경쟁·공정성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슈퍼리그는 연대와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었죠.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슈퍼리그의 창설과 출범, 그리고 실패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의 근간에는 한 가지 일관된 테제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낭만’이죠. 슈퍼리그 사태가 자본을 위시한 숫자에 잠식당해가는 현대 사회의 비유라면, 그 실패는 현대사회의 압력에 고통받는 개개인에게 남은 마지막 저항의 보루, 낭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낭만의 가치는 대체 왜 모든 게 자본화된 듯 보이는 현대사회에서도 유의미할까요? 이에 대해 넷플릭스 시리즈 <잉글리시 게임>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 각기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전자는 낭만의 역사성에 주목합니다. 한편 후자는 자유에 깃든 낭만을 노래하죠.
노동자 팀으로는 드물게 FA컵 준준결승에 진출한 다웬 FC는 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규정 위반인 유급 선수 영입을 결정한다. 스코틀랜드에서 다웬에 합류한 '퍼거스 수터(케빈 거스리)'와 '지미 러브(제임스 하크니스)'는 FA(잉글랜드 축구협회) 협회장과 간부들이 즐비한 올드 이토니언스와의 준준결승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상대팀 올드 이토니언스가 주장인 '아서 키네어드(에드워드 홀크로프트)를 중심으로 규정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악용한 결과, 다웬 FC는 재경기에서 완패하고 탈락한다. 이에 수터와 다웬 FC는 임금 삭감과 파업, 폭동 등의 여러 악재들 속에서도 설욕을 다짐한다.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었고, 가장 많이 사랑받는 스포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상업성이 뛰어난 스포츠이면서도 자본의 유입을 가장 경계하는 스포츠라는 사실이죠.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우 특정 기업이 한 클럽의 주식을 49%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축구연맹도 FFP룰을 제정해 빅클럽들의 과도한 지출을 규제하고 있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잉글리시 게임>은 1860년대 영국의 다웬 FC 소속 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의 축구가 유달리 자본을 경계하고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를 들려줍니다.
축구는 종교다
우선 드라마는 축구가 단순한 놀이 혹은 스포츠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작중 1주일에 6일씩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다웬 사람들은 매주 축구 경기를 보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습니다. 그라운드에 녹아든 역사와 선수들이 새롭게 써나가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한 주를 버틸 새로운 힘을 얻죠. 사회적으로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 살던 그들에게 축구는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마치 매주 한 번씩 성당, 절, 교회 등을 가서 지난 한 주간의 어려움을 위로받고,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종교나 다름없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공격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축구가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생을 지탱하는 근본의 자리에 축구가 당당히 서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웬 마을 사람들은 공장의 임금 삭감에 저항해 파업하는 와중에도 축구팀이 교통비 문제로 FA컵 대회에 나가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줍니다. 미사나 예배가 없는 주말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축구도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는 다웬 fc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수의 유럽의 축구 클럽들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탄생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죠. 예를 들어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으로 잘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에 본부를 둔 ‘랭커셔&요크셔 철도회사(Lancashire & Yorkshire Railway)’의 화물차 창고 노동자들이 1878년에 자발적으로 조직한 ‘뉴튼 히스 LYR(Newton Heath LYR)’라는 축구팀이 기원입니다. 지금의 유럽 축구 시장은 ‘동네 사람들의’, ‘동네 사람들을 위한’, ‘동네 사람들에 의한’ 축구팀이 성장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인들에게 미국, 중동, 중국 등 거대 자본의 투자로 이루어지는 축구팀의 변화는 그들의 삶과 역사를 자본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축구가 자본의 영향력 밑에 놓인다는 것은 종교로서의 본질과 역할이 침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슈퍼리그의 실패는 이 낭만이 아직 유효하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축구 클럽을 사랑하는 팬 한 명 한 명의 낭만이 모였을 때 현실에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되는 것이죠.
자본과 스포츠의 관계
이에 더해 <잉글리시 게임>은 축구를 통해 공정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짚어 봅니다. 작중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유급 선수의 출전 허용이죠. FA를 창설하고 축구 규칙을 만든 올드 이토니언스 팀 선수들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유급 선수 기용을 막습니다. 순수한 열정만이 동기인 아마추어들의 대회에 열정 이외의 동기부여를 지닌 선수가 뛸 경우 대회와 스포츠의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것이죠. 정해진 규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은 스포츠의 핵심 가치이므로 이는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규정과 규칙이 애당초 불공정함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떡할 것인지 의문을 던지죠. 올드 이토니언스 팀의 주장이자 FA 창립 회원인 아서는 퍼거스와 함께 FA가 주장하는 공정함의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풍족하게 밥 먹고, 좋은 시설에서 훈련에 집중하나 돈은 받지 않는 엘리트 계층 클럽 선수들이죠. 과연 공장에서 일하며 1주일 중 쉬는 유일한 날에 경기를 치르되 소정의 돈을 받는 노동자 계층 선수들보다 이들의 동기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산업화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웬의 미혼모, 과부, 그리고 노동자 가정의 모습은 아서와 퍼거스의 문제 제기에 힘을 실어줍니다. 사회적 출발선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스포츠 내부의 출발선만 따지는 것만으로는 진정으로 공정성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죠. 이렇게 <잉글리시 게임>은 단순히 축구라는 스포츠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 범주까지 스토리를 확장하며 공정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갑니다. 스포츠 산업에 자본이 밀려 들어오는 가운데, 그 자본에 속아 놓쳐서는 안 될 근본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키는 셈이죠. 그러니 축구 팬이라면 <잉글리시 게임>을 싫어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루 가필드)'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8년 간 준비한 뮤지컬의 워크숍을 앞두고 마지막 작곡 작업에 몰두한다. 그런데 서른 번째 생일과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십)',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의 모습을 한 수많은 사건은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틱틱(tick, tick...)'거리는 시계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가운데 존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은 천재 뮤지컬 제작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린-마누엘 미란다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렌트>로 잘 알려진 조너던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 <틱틱붐>을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이 록 뮤지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존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심플한 발라드와 빠르고 직선적인 선율이 흐르는 록 음악의 만남에서 청춘만이 지닐 수 있는 남다른 호소력이 느껴지는 이유죠.
그러나 음악 외에도 <틱, 틱... 붐!>의 매력은 차고 넘치죠. 특히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끊임없는 시계 소리는 존을 시간의 압박 속에 던져 놓습니다. 이 압박에 대처하는 존의 이야기가 음악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의 감동은 완성됩니다.
존을 휘감은 시계 소리의 위력
가장 먼저 영화는 존의 일상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이라는 시계 소리를 보여줍니다. 존이 애써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불현듯이 현실을 일깨우는 연체된 공과금 고지서가 대표적이죠. 고지서는 'Sunday'라는 제목의 넘버로 모습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더 빨리 음료와 음식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손님들의 제스처와 카운터의 소란, 레스토랑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예약 전화가 울리는 벨 소리의 압박으로 가득하죠. 달리 말해 존의 일상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간의 압박은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마이클의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시간의 압력과 지각의 위험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죠.
존의 대인관계도 시계 소리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습니다. 현대 무용가인 여자 친구 수전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댄스 학교로부터 강사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에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고, 존에게 의견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죠. 덕분에 존의 캘린더에는 뮤지컬 워크숍 공연 외에 또 다른 기한이 추가됩니다.
사랑 못지않은 삶의 근본 문제인 죽음마저 존을 옥죄어 옵니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프레디는 응급실에 입원해 생사의 기로에 놓입니다. 또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배우와 뮤지컬 제작자의 꿈을 공유해왔던 절친 마이클이 에이즈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계의 강박에 시달리며 피폐해지죠.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도전과 포기 사이에 선 존의 커리어도 시계 소리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인 존은 뮤지컬 넘버를 미처 다 만들지도 못했죠. 그는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성취와 자기 작업물을 견주며 심한 좌절과 절망감을 맛봅니다. 마치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자신의 나이를 비교한 후 좌절했다는 일화처럼요.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라 해도 한계점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도 배우 경력을 포기한 후 잘 나가는 광고 마케터가 된 마이클을 내심 부러워합니다. 마이클의 아파트와 자기 집을 비교하는 'No More'이라는 노래에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보잘것없는지 그 처절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시계 소리가 숨기고 있던 보헤미안의 낭만
일상, 대인관계, 그리고 커리어까지 시계 소리에 의해 통제되는 존의 삶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삶도 시계가 정의한 시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죠. <시계 밖의 시간>의 작가인 제이 그리피스는 시계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시계 시간'이 철저히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본연의 생체 리듬이나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죠.
산업화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노동력을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시계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계가 정밀해질수록, 시계 소리가 자주 들리면 들릴수록 사람들의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은 사라지기 시작했죠. 도전적인 예술가와 안정된 회사원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에게 시계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의 삶을 옥죄는 수많은 기한과 마감을 보다 보면 자연히 각자의 아침을 깨우고 스케줄을 일깨우는 알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존의 예술가로서의 도전, 열정, 그리고 노력은 오히려 더 빛납니다. 존의 귓가에 스치는 시계 소리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하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가운데 자유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의 노래에는 시계의 권력에 종속되기를 거부한 채 보헤미안으로서 자유로이 살고 싶어 하는 절실한 소망이 가득합니다. 뮤지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악상을 떠올리는 수영장에서의 노래, 뮤지컬의 여주인공인 '카레사(바네사 허진스)'과 현실 속 여자 친구인 수전이 같이 부르며 삶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노래, 무력함과 외로움이 극에 달해 홀로 무대에서 부르는 넘버까지도 모두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죠.
시간의 끝에서 낭만을 찾는 노래
시계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채워나가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특히 서른 번째 생일을 대하는 존의 태도 변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도입부에서 생일이 엄청난 부담감을 안기는 마감 기한이었다면, 영화의 끝에서 마주하는 생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죠. 존 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모인 특별한 순간이자, "시계를 멈춰. 시간을 잡아"라고 말하는 첫 노래 가사의 내용을 직접 실천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워크숍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덕분에 존의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대신 늘 그랬듯이 그가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작곡에 전념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기계적인 시간과 기한에 맞춘 작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죠. 시계가 정한 끝 다음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그 이후로는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자고 권유하며 공감을 끌어냅니다. 문자 그대로 낭만적인 삶의 방식이 아닐 수 없죠.
이처럼 <틱. 틱... 붐!>은 언제나 우리 귀를 괴롭히는 시계 초침 소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생을 사랑하고 또 누리자고 노래합니다. 이 소망과 메시지 덕분에 <틱. 틱... 붐!>은 유독 뮤지컬 영화가 많았던 2021년의 초겨울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었죠.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건져 올린, 또 한동안 뛰어넘기 어려운 수작이라는 생각이 과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